[조영철 기자]
-1961년 광주광역시 출생
-서울대 항공공학과 졸업, KAIST(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석사·동 대학원 항공우주공학과 박사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지구환경센터장·환경복지연구단장, 한국실내환경학회장 역임
-現 미세먼지 국가전략프로젝트 사업단장
마스크 착용 일상화, 공기청정기 필수화, 야외활동·외출 자제령,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초유의 경기 취소…. 대한민국 라이프스타일마저 확 바꿔놓은 미세먼지 오염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수년째 기승을 부리는 탓에 국민의 불안감은 가히 포비아(phobia·공포증) 수준에 이르렀다.
당연히 정부의 적극적 대처를 촉구하는 아우성이 빗발친다. 3월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오른 ‘미세먼지의 위험 그리고 오염 및 중국에 대한 항의’라는 제목의 청원글에 동의한 이는 27만8128명(4월 23일 청원 마감). 이 청원은 5월 8일 현재 답변 대기 상태다.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선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변을 하게 돼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에 대한 정부의 상황 인식이나 적절한 저감 대책은 미세먼지로 뒤덮인 하늘만큼이나 뿌옇다. 정녕 ‘미세먼지 공습’을 극복할 해법은 요원한 걸까.
지난해 5월 1일 임명돼 취임 1년을 맞은 배귀남(57) 미세먼지 국가전략프로젝트 사업단장을 5월 3일 서울 성북구 화랑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만났다.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과 국민 눈높이 간 크나큰 괴리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다. 미세입자 거동(擧動) 연구 전문가인 배 단장은 30여 년 동안 미세먼지 분야에서 다양한 논문 및 정책보고서를 집필해온 국내 최고 전문가. ‘귀남(貴男)’이라는 이름처럼 ‘미세먼지 해결사’로 꼽힐 만한 ‘귀한 남자’랄까.
‘그림자’ 같은 미세먼지
미세먼지 사업단(사업단)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국가 성장동력 확충과 국민 삶의 질 제고를 목적으로 지난해 5월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축이 돼 발족한 3개 국가전략프로젝트(인공지능·미세먼지·탄소자원화) 사업단 중 하나다. 2023년까지 활동하는 범부처 단일사업단으로, 예산은 지난해 120억 원을 비롯해 3년간 총 469억 원이 투입된다.‘미세먼지 해결사’로서 기대가 크다.
“‘대기환경 설계사’란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현 단계에선 국가 차원에서 미세먼지 문제 자체를 제대로 설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서다. 그래야만 적합한 해법이 나온다. 축구에서도 골키퍼가 공만 멀리 ‘뻥’ 찬다고 골이 들어가는 건 아니지 않나. 선수 간 긴밀히 패스를 해나가야 한다. 연구사업도, 정부 정책도 정교히 설계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거의 나열식에 그쳤다. 구체적인 설계도가 없는 상태에서 단편적 논의를 통해서만 문제를 풀려다 보니 어떤 대책을 내놔도 국민은 ‘그게 겨우 답이냐’고 반응해온 것이다. 그래서 사업단이 추구하는 건 미세먼지 해법을 제대로 제시할 수 있도록 문제 해결 방안을 짜임새 있게 설계하는 일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기본적으론 미세먼지 문제를 첨단과학과 기술로 해결하려는 목적을 띤 연구사업의 설계다. 미세먼지 해법이 초미의 국민적 관심사인 만큼, 긴요한 4개 분야별 과제를 설정했다. 과학기술을 기반 삼아 미세먼지의 △발생·유입 규명 △정확한 측정·예보 △효율적 집진·저감 △국민건강 보호·대응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해법 제공이 그것이다. 이들 분야는 서로 긴밀히 얽혀 있으므로 해당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어 하나로 연계하고 과학적 자료를 생산해 그것을 국민적 합의를 거쳐 수용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게 가장 큰 목표다. 그 전까지는 정책과 과학기술이 따로 놀았지만, 과학적 분석과 기술 개발이 녹아들어야만 정책에 실효성이 생긴다.”
단장 취임 후 1년이 됐다. 그동안 성과는.
“기존에는 관계 부처별로 산발적으로 나뉘어 있던 미세먼지 문제의 기본 철학과 방향성에 대한 밑그림을 그렸다. 사업단은 미세먼지의 새로운 원인 규명 방법과 대응체계를 만들기 위한 연구개발(R&D) 사업, 관련 포럼 개최 등을 통해 미세먼지 해법 모색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4월 17일 KIST 국제협력관에서 한국, 중국, 일본, 몽골 전문가들이 ‘동아시아 대기오염과 건강포럼’을 열어 동아시아 주요 국가의 미세먼지 관련 연구 결과 및 정책적 시사점을 공유한 것도 그 맥락이다. 지난해부터 3년을 목표로 ‘미세먼지 파수꾼’ 1000명도 양성 중이다. 일반인의 이해를 도와 생활 속에서 미세먼지 노출을 줄일 수 있는 실천 능력 향상을 위한 기본 교육이다.”
사업단은 우수 기술을 발굴해 실증하는 과정도 지원한다. 대기오염 주범인 질소산화물을 저온 처리할 수 있는 촉매를 개발해 보급한 게 그 사례다. 질소산화물은 고온에서 연료 등이 산화할 때 만들어지는 화합물. 호흡기질환을 일으키는 대표적 물질로 꼽힌다.
해법은 가치 판단의 문제
4월 20일 미세먼지로 가시거리가 짧은 가운데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옆을 헬기가 지나고 있다. [동아일보]
미세먼지 발생 원인에 대해 정부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데….
“그렇지 않다.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등 오염원은 이미 밝혀졌다. 다만 문제는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때 오염원에서 배출된 기체가 입자(먼지) 형태로 바뀌는 양을 제대로 추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민 처지에선 생활방식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2013년 이후 갑작스레 고농도 사례가 빈발하니 미세먼지 생성 과정을 속 시원히 알려달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 답답하니까. 그러나 아직 그 과정을 정부도 잘 모르니 당장 석탄화력발전소를 일시 가동 중단(셧다운)하는 게 효과적일지, 저감 기술을 먼저 적용하는 게 나을지 등 자신이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미세먼지 오염은 과거 대표적 대기오염 사태인 영국 ‘런던 그레이트 스모그’, 미국 ‘LA형 스모그’와는 또 다른 ‘제3의 스모그’라고 보면 된다. 한마디로 미지(味知)의 것이다. 우리가 아는 현 지식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으니 해법 또한 명확히 내놓지 못한다. 사업단을 주축으로 R&D에 나서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미세먼지 해법엔 정답이 없다?
“미세먼지의 생성과 소멸도 사람의 일생과 흡사하다. 태어나고 움직이다 비 맞으면 가라앉기도 하고…. 온갖 곳에 다 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 대다수는 고농도일 때만 큰 관심을 두지만, 미세먼지는 생활 속 어디에서나 생성된다. 디젤자동차를 운행할 때나 음식을 조리할 때, 심지어 바닷가 포말을 통해서도…. 에너지를 쓰는 모든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만큼 발생 원인이 다양하고 종류도 많다. 쥐, 고양이, 호랑이 모두 동물이다. 강약 차이는 있되 이들을 미세먼지라고 치자. 그런데 미세먼지 얘기만 나오면 죄다 제일 강한 호랑이부터 연상해 공포에 떠는 게 현재의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미세먼지 해법은 강약 조절과 선택을 바탕으로 한 가치 판단의 문제인데, 선악의 문제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아쉽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미세먼지와 관련해 사춘기를 겪는 과정이라고 본다.”
“‘보험료’ 안 낸 결과”
중국에선 미세먼지가 감소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하느냐는 비판도 나온다.“중국 정부는 미세먼지 문제가 시진핑 정권에 큰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강력한 저감 대책을 추진해왔다. 워낙 오염도가 높으니 어느 정도만 조치해도 가시적 성과를 낸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2년까지는 미세먼지 연평균 농도가 떨어졌는데, 2013년부터 정체 상태이거나 조금씩 높아졌다. 특히 고농도 사례가 부쩍 증가해 국민이 체감하는 경우 또한 늘었다. 우리나라는 편서풍대에 자리해 중국으로부터의 유입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중국의 대기오염 상황과 에너지 소비 트렌드 추이 및 향방에 대한 툴(tool)이 있어야 우리가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이면 어떤 효과를 얼마나 낼 수 있는지 예측이 가능하다. 단순히 중국발 미세먼지가 몇 %인가에 급급할 때가 아니다.”
3월 29일 환경부는 그동안 수도권 공공부문에만 적용하던 미세먼지 비상 저감 조치를 수도권 민간 사업장과 전국 공공기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지난해 조치와 다를 바 없어 ‘재탕’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배출량 감소에 방점을 둔 미세먼지 저감 조치는 실효성과 강제성이 떨어지는 예전 방식이다. 그런 조치는 효과부터 예측이 가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당장 국민이 뭔가 하길 바라니 정교하게 설계되지 못한 1차원적 환경규제책을 내놓은 것이다. 정책이 너무 앞서가지 않도록 호흡 조절이 필요하다.”
정부의 미세먼지 통계 및 예보 시스템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예보 과정이 예보관 부족 등 인적·기술적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아 주먹구구식이라는 비판이 일례다. 실제로 예보 정확도도 70〜80%에 머문다.
“예보는 예측과 달리 정책적 판단이다. 당연히 예보관들이 토의를 거쳐서 한다. 관건은 얼마나 많은 정보를 취합해 판단하느냐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또 한편으로는 국민이 과잉 정보를 요구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예컨대 대기오염측정망 시스템을 자기 집 앞에 설치해달라는 식의 여론이 들끓는다. 하지만 비용 대비 편익을 따져야 한다. 지역별 편차도 감안해야 하고.”
배 단장은 2014년 미세먼지를 과학기술로 해결하고자 대기과학연구소를 설립하고 미세먼지 대응 국제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자는 정책 제안을 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제안은 별반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최근 미세먼지 생성·확산·이동·예보 등을 대기과학적 관점에서 종합 연구하고 장기 로드맵을 수립할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동안 환경정책에서 일종의 ‘보험료’를 안 낸 결과라고 본다. 그만큼 기초과학에 돈을 투자하지 않았다. 미세먼지가 이렇게까지 사회문제화될지 몰라 결국 사고를 당한 것이다. 미세먼지는 본질적으로 에너지 사용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중국의 에너지 사용량이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상승했는데, 2010년쯤엔 가장 불량한 연료인 석탄이 전체 사용량의 70%를 차지했다. 그런 부작용을 예측할 수 있는 연구를 하지 않다 보니 축적된 데이터가 없어 지금까지도 예측과 해법이 나오기 힘든 것이다.”
이미 국회엔 미세먼지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다. 하지만 미세먼지 관련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여당 측 주장에 야당은 기존 법률을 손보자고 맞서 진전된 게 없다. 이에 대한 견해는.
“미세먼지는 여러 분야와 결부된 복잡한 문제다. 이를 긴 호흡으로 차분히 총괄하면서 정책적 측면을 책임질 수 있는 일종의 지휘자가 있어야 법안 문제도 순조롭게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마스크 안 쓴다”
동북아 대기오염 현황을 설명하는 배귀남 미세먼지 국가전략프로젝트 사업단장(왼쪽). 초미세먼지(PM2.5)를 구성하는 물질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추적하기 위한 연구 장비인 ‘스모그 체임버(Smog Chamber)’. [조영철 기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제공]
“인생에 정답이 없듯, 미세먼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냉정하고 정확히 인식하는 게 급선무다. 무관심부터 버려야 한다. 미세먼지 문제는 국민의 관심과 참여, 사회적 합의가 없으면 해결할 수 없다. 무조건 모범답안을 달라며 정부와 기업에만 떠넘겨선 안 된다.”
배 단장 스스로는 미세먼지에 어떻게 대응하나.
“마스크는 안 쓴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아직 건강하니까. 공기청정기도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차량 운행 땐 내부 공기 순환만 한다. 가스레인지 후드도 좀 큰 걸 사용한다.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될 외출도 자제하는 편이다. 이렇듯 개인별 맞춤형 처방을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
30여 년의 연구 경력을 지녔다. 미세먼지에 관심 가진 계기는.
“석사학위를 받은 직후부터 미세먼지 관련 일을 접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미세먼지 청정 공간인 반도체 클린룸에서 시작해 어린이 아토피 피부염, 지하철 먼지, 자동차 배기가스 등 미세먼지의 다양한 측면을 찾아다니며 연구해왔다. 남이 하지 않은 분야에서 내가 직접 문제를 설계해 해결하고픈 성향이 강하다.”
사업단 업무를 ‘국민 안심 프로젝트’라 부르고, 대한민국이 대기환경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배 단장. 그를 인터뷰한 날 서울 성북구 미세먼지 농도는 ‘좋음’. 전날에 이어 내린 비 때문인지 대기가 자못 맑다. 반면 머릿속은 착잡하다. 미세먼지라는 대기환경의 ‘적폐(積幣)’를 언제쯤 해소해 국민 건강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매일같이 ‘뿌연 세상 건너기’를 감내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