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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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대규모 공습 궁극 목표는 이란 정권 교체

핵시설·수뇌부 제거한 ‘족집게 공습’… 비밀은 모사드의 치밀한 준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5-06-17 13:5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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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이하 현지 시간) 이스라엘 텔아이브 상공에서 아이언돔 방공 시스템이 미사일을 요격하고 있다. [뉴시스]

    6월 13일(이하 현지 시간) 이스라엘 텔아이브 상공에서 아이언돔 방공 시스템이 미사일을 요격하고 있다. [뉴시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250㎞ 떨어진 나탄즈는 이란의 핵심 핵시설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선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이 생산되고 있다. 이스라엘 일간지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에 따르면 나탄즈에는 지하 우라늄농축시설(FEP)과 지상 시험용 핵연료농축시설(PFEP) 등 두 개의 농축시설이 있다. FEP는 지하 40~50m 깊이에 있는데, 원심분리기 5만 대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현재 1만4000대의 원심분리기가 가동 중이다. PFEP에는 원심분리기 1700대가 설치돼 있다. 

    나탄즈 핵시설은 2002년 이란 반정부단체인 ‘국민저항위원회(NCRI)’의 폭로로 존재가 국제사회에 알려졌고, 이스라엘의 공격 대상 1순위로 꼽혀왔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2010년 나탄즈 핵시설에 스턱스넷(Stuxnet)이라는 컴퓨터 바이러스로 사이버 공격을 가해 원심분리기 1000여 대를 파괴한 적이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4월 나탄즈 핵시설 인근에 배치돼 있던 S-300 대공포대를 파괴했고, 2021년 4월에도 나탄즈 핵시설의 전기 장치에 대한 사보타주(파괴 공작)를 감행한 바 있다.

    이란, 농축 우라늄 2달 만에 1.5배로 늘려

    이스라엘이 6월 13일(이하 현지 시간)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감행하자 이란이 미사일 보복 공격에 나서면서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습에서 나탄즈 등 이란의 핵 시설을 집중적으로 타격했다. 이스라엘은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한 이란이 조만간 핵무기 제조에 나설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6월 13일 새벽 공습 후 발표한 성명에서 “이란은 이미 핵폭탄 9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했고, 이를 방치할 수 없었다”고 이번 공격 의도를 밝혔다. 실제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4월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무기급 우라늄 농축 직전 단계인 농도 60%의 고농축 우라늄 408㎏을 보유하고 있다. 서방 핵 전문가들은 60%의 농축 우라늄을 90% 농축의 무기급 우라늄으로 전환하는 데는 1∼2주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이 보유한 농도 60%의 농축 우라늄 양으로 볼 때 추가 농축 시 핵폭탄 6~9개를 제조할 수 있다.

    벤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6월 13일 텔아이브에서 이란 타격에 대한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벤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6월 13일 텔아이브에서 이란 타격에 대한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IAEA는 2월 보고서에서 이란의 60% 농축 우라늄 재고량이 274.8㎏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란은 불과 2개월 만에 1.5배 수준의 60% 농축 우라늄을 보유한 셈이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당시 보고서에서 이런 수준으로 우라늄을 농축한 비핵무기 국가는 이란이 유일하다면서 고농축 우라늄의 빠른 축적은 심각한 우려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란은 미국과 5차례나 핵협상을 벌였지만 미국의 우라늄 농축 시설 폐기 요구를 거부했다. 이란은 또 IAEA의 자국 핵 프로그램에 대한 사찰 결의도 무시했다. IAEA는 6월 12일 이사회를 열고 이란이 핵학산금지조약(NPT)에 따른 핵 비보유국의 안전조치협정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다면서 사찰에 응할 것으로 요구하는 결의를 통과시켰다. IAEA가 이란의 안전조치협정 의무 불이행을 결의한 것은 이란 핵 위기가 고조했던 2005년 이후 20년 만이다. 

    벙커버스터도 속수무책인 새 핵시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란이 기존의 나탄즈 핵시설 인근에 새로운 지하 핵시설을 건설해 왔다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국제과학안보연구소(ISIS)에 따르면 이란은 2021년 또는 2022년부터 자그로스 산맥의 콜랑 가즈 라 산(해발 1600m)기슭에 신규 핵시설을 건설하고 있는데, 이 시설의 깊이는 80~100m나 된다는 것이다. 나탄즈 핵 시설에서 남쪽에 있는 이 시설엔 첨단 원심분리기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ISIS는 이란의 새로운 핵시설은 미국이 보유한 그 어떤 벙커버스터(지하 콘크리트 구조물을 뚥고 들어가 터지는 폭탄)으로도 파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스티브 데라 푸엔테 ISIS 연구원은 “새 시설의 지하 깊이는 기존 벙커버스터 같은 재래식 무기를 사용해 파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국은 초대형 벙커버스터인 ‘GBU-57 MOP’을 개발했는데, 이 폭탄은 최대 60m 깊이의 콘크리트나 암벽 등을 뚫고 들어가 폭발할 수 있다. 이 폭탄으론 지하 100m 깊이에 구축된 이란의 새로운 핵시설을 무력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이란은 앞으로 나탄즈의 지하 핵시설을 이곳으로 이전할 계획을 추진해 왔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군은 이란의 이전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 나탄즈 핵시설을 집중적으로 공습했다. 이번 공격으로 나탄즈 지상의 시험용 핵연료농축시설이 완전 파괴되고 지하의 우라늄 농축 시설 일부가 작동 불능 상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또 이스파한의 우라늄 변환시설과 연료판 제조 공장 등 핵 시설 4곳도 파괴했다. 

    핵과학자·군 수뇌부 타깃한 암살 작전

    이란 테헤란 한 아파트 건물이 이스라엘 공습을 받다 파괴됐다. [뉴시스]

    이란 테헤란 한 아파트 건물이 이스라엘 공습을 받다 파괴됐다. [뉴시스]

    이스라엘이 이번에 이란 핵과학자들을 대거 제거한 것도 이란의 핵개발을 막으려는 의도다.  핵개발에 관여해온 모하마드 테헤란치 전 이슬람 아자드 대학 총장(물리학자) 등 핵과학자 및 전문가 9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는 이번 ‘일어서는 사자(rising lion)’ 작전에 앞서 핵과학자들의 자택 등을 면밀하게 조사하는 등 수년간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이번 이스라엘 공습은 모사드의 치밀한 준비 덕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모사드가 지금까지 암살한 이란의 핵 과학자들은 30여 명이나 된다.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에서 군 수뇌부와 핵심 의사결정권자 참수 작전도 펼쳤다. 모사드는 수개월 전 이란으로 대거 밀반입한 드론을 요인 암살에 동원했다. 이란군 수뇌부인 모하마드 바게리 참모총장, 호세인 살라미 혁명수비대(IRGC) 총사령관 등 군부 ‘투톱’과 지휘부 및 고위 장성 20여 명이 자택 등에서 잠을 자다 숨졌다. 모사드는 그동안 이란 군 수뇌부와 고위 장성들의 자택이 어디인지, 벙커 등 방호 시설은 어디에 있는지 등 관련 정보를 꾸준히 수집해 왔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아파트는 특정 층만 파괴되거나, 벽 한 곳만 드론 공격으로 뚫려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공격은 이스라엘이 그동안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와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고위 지도부를 상대로 벌여 온 참수작전과 비슷하다. 이스라엘은 높은 정보력, 정교한 첩보 작전을 기반으로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자들을 하나씩 죽이며 이들의 의사결정 체계를 파괴한 바 있다. 게다가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국가최고지도자의 최측근이자 정치·군사·핵 담당 고문인 알리 샴카니도 제거했다. 샴카니는 하메네이의 ‘이너 서클’ 일원으로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의장을 지내며 안보정책 수립에 핵심 역할을 수행해 왔다.  

    봉기 통한 내부 붕괴가 목적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13일(현지 시간) 테헤란에서 TV 연설을 하고 있다. 하메네이는 “시온주의자(이스라엘) 정권이 전쟁을 일으켰다”며 “그들은 큰 실수와 오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뉴시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13일(현지 시간) 테헤란에서 TV 연설을 하고 있다. 하메네이는 “시온주의자(이스라엘) 정권이 전쟁을 일으켰다”며 “그들은 큰 실수와 오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뉴시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서방 언론들은 이스라엘 공격의 광범위한 규모나 치밀한 대상 선정, 네타냐후 총리의 발언 등을 보면 이란의 정권 교체를 촉발시키려는 숨은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 국민을 향해 “사악한 정권의 탄압에 맞서야 한다”면서 “국가의 깃발과 역사적 유산 아래 뭉쳐 자유를 위해 일어서야 할 때가 왔다”며 봉기를 촉구했다. 

    영국 BBC는 경제 상황, 언론 자유·여성과 소수자 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이란에서 ‘신정(神政)통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돼 왔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하메네이의 이슬람 정권에 실질적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워싱턴 중동정책연구소의 마이클 싱 수석 연구원은 “이스라엘은 이란 국민이 들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수 있다”면서 “이번 공격에서 민간인 피해가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이스라엘의 이런 의도를 읽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연구소(INSS)의 대니 시트리노비치 선임연구원도 “중요한 점은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과거의 직접 충돌과는 매우 다른 국면”이라면서 “이번 공격의 결과는 이란의 미래와 중동 지역의 안정에 광범위하고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란은 이슬람의 형벌 원칙인 ‘키사스(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에 따라 같은 수준으로 이스라엘에 보복해야 하지만 방법은 마땅치 않다. 이스라엘을 제대로 응징하지 못할 경우 하메네이는 자국 내 지지층뿐만 아니라 역내 추종세력의 신뢰를 잃을 궁지에 몰릴 수 있다.서방 군사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앞으로 수 주간 핵시설과 미사일 기지 등에 대한 추가 공습을 계속 감행할 것이라면서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거나 피해가 누적돼 정권 기능이 아예 마비될 때까지 공습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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