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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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양 논란 되풀이되는 정상회담 동물 선물

[이학범의 펫폴리] 尹 대통령 받은 알라바이견, 동물복지 고려해 정중히 거절했더라면

  • 이학범 수의사·데일리벳 대표

    입력2024-07-0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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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반려동물과 행복한 동행을 위해 관련법 및 제도가 점점 진화하고 있다. ‘멍냥 집사’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반려동물(pet)+정책(policy)’을 이학범 수의사가 알기 쉽게 정리해준다.
    윤석열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중 투르크메니스탄 정상회담에서 선물 받은 알라바이견 두 마리가 6월 18일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알라바이의 정식 명칭은 ‘투르크멘 알라바이(Turkmen Alabai)’로 투르크 국견입니다. 성견이 되면 키 70㎝, 몸무게 80㎏까지 성장하는 대형견 품종이죠.

    윤석열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에서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최고지도자 겸 인민이사회의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알라바이견 두 마리.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에서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최고지도자 겸 인민이사회의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알라바이견 두 마리. [뉴스1]

    곰이·송강이 전철 밟을 수도

    6월 18일 한국에 들어올 때 알라바이견 두 마리는 생후 40일가량 된 상태였습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두 마리 알라바이견은 윤 대통령이 기르는 기존 11마리 반려동물(개 6마리, 고양이 5마리)과 함께 대통령 관저에서 생활하게 될 거라고 합니다.

    다만 대통령 관저에서 평생 행복하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형견답게 성장 속도가 매우 빨라 몇 달 만에 관저에서 기르기 어려워질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실도 “알라바이견은 모래가 깔린 외부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며 사실상 다른 곳으로 옮길 계획임을 간접적으로 밝혔습니다. 추후 알라바이견 사육기관으로는 서울대공원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니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2년 전 불거진 문재인 전 대통령의 풍산개 파양 논란입니다.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곰이, 송강이라는 이름의 풍산개 두 마리를 선물 받았습니다. 곰이와 송강이는 청와대에서 길러졌고 곰이가 낳은 새끼들은 일부 지자체에 분양됐죠.

    그러다 윤 대통령 당선 이후 논란이 발생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곰이와 송강이를 양산 사저로 데려갈 수 없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였습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이 직무 중 받은 선물은 국가기록물로 분류되는데, 곰이와 송강이 역시 국가기록물로 분류되기에 문 전 대통령 사저가 아닌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는 게 원칙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곰이와 송강이는 문 전 대통령이 기르지 못하고 전남 광주 우치동물원으로 가게 됐습니다.



    문 전 대통령의 풍산개 파양 논란 당시 윤 대통령(당시 당선인 신분)은 “반려견은 그들에게 정을 많이 쏟은 주인이 계속 기르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아마 이 말은 향후 알라바이견 두 마리를 외부 시설로 옮길 때 윤 대통령에게 되돌아올 것으로 보입니다.

    윤 대통령이 파양 논란을 겪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생후 60일이 지난 반려견은 반드시 동물등록을 해야 합니다. 윤 대통령이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알라바이견 두 마리에 대해 조만간 윤 대통령 이름으로 동물등록을 해야 하죠.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통령 취임식 날 삼성동 자택을 떠날 때 동네 주민들로부터 선물 받은 진돗개 희망이와 새롬이를 서울 종로구 한 동물병원에서 동물등록을 했습니다. 당시 동물등록증에는 소유자 ‘박근혜’,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1(세종로)’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 진돗개들을 두고 청와대를 떠나면서 파양 논란이 일었습니다. 한 동물단체는 박 전 대통령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동물유기)로 고발했습니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등록된 반려견을 버리는 행위는 100만~300만 원 벌금형에 처하기 때문이죠. 논란 끝에 진돗개는 모두 혈통 보존 단체로 가게 됐습니다.

    푸바오도 한중 정상회담 산물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땐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풍산개 두 마리를 선물 받았고, 이후 서울대공원으로 이관해 관리하다가 자연사해 논란이 된 적도 있습니다. 얼마 전 중국으로 돌아가 전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푸바오도 2014년 한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이 선물로 보내온 러바오와 아아바오가 낳은 판다입니다. 푸바오 반환을 두고 중국 판다기지 시설 수준과 사육사·수의사의 실력, 인성까지 언급할 정도로 논쟁이 됐습니다. 푸바오 반환 반대 운동도 벌어졌죠. 푸바오의 동생인 루이바오, 후이바오도 크면 중국에 반환해야 하고, 러바오와 아이바오도 2031년이면 중국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때 똑같은 논쟁이 반복될 겁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이번에 윤 대통령이 선물 받은 알라바이견도 비슷한 논란을 일으킬 게 분명합니다. 이렇게 대통령이 선물 받은 동물이 매번 분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정상회담 때 꼭 살아 있는 동물을 선물로 주고받아야 하는 걸까요. “동물 습성과 사육환경·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상회담에서 살아 있는 동물을 선물하는 문화야말로 사라져야 할 후진적 문화”라는 게 동물보호 활동가들 의견입니다.

    물론 상대국 정상이 동물을 선물한다는 데 이를 거절하는 건 결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이 매우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 윤 대통령이기에 이번 일이 개인적으로는 참 아쉽게 다가옵니다. 김건희 여사도 ‘개식용 종식’을 직접 언급할 정도로 동물복지 이슈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습니다. 투르크메니스탄에 국빈 방문했을 때 대통령 내외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선물은 무척 감사하지만 동물의 삶과 동물복지를 고려해 정중히 마음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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