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0월 28일 ‘미·일 핵심 광물 및 희토류 확보를 위한 채굴·정제 프레임워크’에 서명했다. 뉴시스
미국 국방부는 라이너스를 필두로 희토류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 라이너스가 텍사스에 건설 중인 중희토류 정제 공장에 2억5800만 달러(약 3700억 원)를 지원했고 이 공장은 내년부터 생산에 들어간다. 일본 국영 에너지·금속광물지원기구(JOGMEC)와 종합상사인 소지쓰도 2억 호주달러(약 1900억 원)를 라이너스에 투자했다. 라이너스는 마운트 웰드 광산에서 채굴해 정제한 디스프로슘과 터븀의 최대 65%를 일본에 공급할 계획이다.

호주 희토류 광산기업 라이너스의 마운트 웰드 희토류 광산 전경. 라이너스 제공
일본 대미 투자액 일부 희토류에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관세 전쟁에서 최대 약점으로 부상한 희토류 공급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호주·일본 등과 ‘희토류 동맹’ 구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10월 20일(이하 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핵심 광물과 희토류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위한 미국·호주 프레임워크’ 협정에 서명했다.양국은 협정문을 통해 “방위산업과 첨단기술 제조업을 뒷받침하는 데 필요한 핵심 광물 및 희토류의 안정적 공급을 가속화하기 위한 공동 협력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또 보증, 대출, 지분 투자,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양국 정부 및 민간 부문 자금을 동원하고, 이를 통해 핵심 광물과 희토류의 채굴·가공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본 및 운영비용을 조달한다는 내용을 협정문에 담았다. 미국은 중국이 방위·첨단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 수출을 통제해 ‘전략무기’로 활용하자 호주와 협력에 나선 것이다.
백악관에 따르면 양국 정부는 향후 6개월간 총 30억 달러(약 4조3100억 원) 이상을 희토류 등 핵심 광물 프로젝트에 공동 투자할 예정이다. 특히 미국 수출입은행은 호주 내 7개 광물 프로젝트에 대한 22억 달러(약 3조1600억 원) 규모의 금융 지원 의향서까지 발행했다. 미국 국방부는 서호주에 100t급 첨단 갈륨정제소를 세우기로 했다. 갈륨은 반도체와 군수용 전자부품 제조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로, 현재 세계 생산의 90% 이상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호주의 희토류 매장량은 570만t으로 중국(4400만t), 브라질(2100만t), 인도(690만t)에 이은 세계 4위 수준이다.
희토류 공급망 확보를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다급한 행보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 진행된 일본 등 아시아 순방에서도 관찰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10월 28일 도쿄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은 ‘미·일 핵심 광물 및 희토류 확보를 위한 채굴·정제 프레임워크’라는 협정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180일 이내에 광업·광물·금속 투자 장관 회의를 갖고 희토류 관련 투자를 촉진하기로 했다. 또한 양국 정부와 민간기업이 보조금, 보증, 대출, 지분 투자 등으로 희토류 채굴·가공 사업을 지원한다. 조지 글래스 주일본 미국대사는 “미·일 관세협상에서 합의된 일본의 5500억 달러(약 795조 원) 대미 투자 중 일부는 희토류가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해 태국·말레이시아 정상들과 2개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희토류 등 핵심 광물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새로 발견된 희토류 매장지에 미국 기업의 우선적인 접근을 허용하고, 이러한 자원을 시장 가격으로 투자, 추출 또는 구매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미국 기업에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세안 순회의장국인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말레이시아는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의 대미 수출을 차단하거나 한도(쿼터)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무기화된 희토류, 美 속수무책
미국이 ‘희토류 동맹’ 구축에 나선 이유는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사실상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4월 4일 미국의 초고율 관세 부과에 맞서 희토류 원소 17종 가운데 중희토류 7종에 대해 수출 허가제를 도입했다. 7종은 사마륨(Sm), 가돌리늄(Gd), 터븀(Tb), 디스프로슘(Dy), 루테튬(Lu), 스칸듐(Sc), 이트륨(Y) 등이다.희토류는 크게 중희토류와 경(輕)희토류로 구분되는데, 경희토류는 매장량이 풍부하고 중국 외에서도 생산할 수 있다. 반면 중희토류는 중국 이외 지역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는 데다, 정제와 가공이 상당히 까다롭다. 이 때문에 미국은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중국과의 고위급 협상에서 상호관세율을 115%p 낮추기로 했다. 6월 영국 런던에서 이뤄진 고위급 협상에선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를 해제하는 대신, 미국은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인공지능(AI) 칩 H20의 수출을 허가하고 중국인 유학생 비자 취소를 철회하기로 했다. 중국은 또 10월 9일, 해외에서 생산되는 전략 광물 제품 중 자국산 희토류가 0.1% 이상 포함됐거나 자국 기술이 적용된 경우 자국의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수출 통제 조치를 12월 1일자로 내리겠다고 밝혔다. 통제 품목은 4월 발표한 중희토류 7종과 이들 합성 제품들이었다.
이에 격노한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10일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고 핵심 소프트웨어의 대중(對中) 수출을 통제하는 조치를 11월 1일부터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미국은 또다시 중국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10월 30일 정상회담에서 추가 관세 부과 유예 등과 희토류 수출 통제 등을 1년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데이비드 색스 미국외교협회(CFR) 아시아담당 연구원은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큰 양보 없이 미국으로부터 관세 인하 등을 얻어냈다”며 “무기로서 희토류는 향후 몇 년 동안 위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 대비해 희토류 공급망 확보가 최우선 과제가 됐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전쟁 와중에 희토류를 협상 무기로 활용한 것은 중국의 실수”라면서 “희토류를 이용한 미국에 대한 레버리지(지렛대)는 12∼24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선트 장관은 “앞으로 희토류를 놓고 ‘중국 대 세계(China versus the world)’ 구도가 될 것”이라며 “이제 서방 민주국가들, 아시아 민주국가들, 그리고 인도까지 함께 공급망을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골드만삭스 “광산 개발 최소 8년 걸려”
실제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 7개국(G7)은 10월 31일 중국의 희토류 등 핵심 광물 통제 조치에 대응하고자 ‘핵심 광물 생산 동맹’을 출범했다. G7 에너지장관들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핵심 광물 생산 동맹 협정’을 체결하고 이행 계획을 공개했다. 이번 협정 내용은 중국이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의 과잉 공급과 수출 통제로 시장을 조작하는 행태를 억제하고 핵심 광물의 생산 및 정제 등에서 협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가 오히려 미국 등 서방의 희토류 등 핵심 광물 산업을 되살리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하지만 미국이 희토류 등 핵심 광물 공급망을 구축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보고서에서 단순히 희토류 채굴 확대만으론 중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를 낮추긴 힘들다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희토류 광산 개발에는 8~10년이 소요된다”면서 “희토류 정제·가공에도 고도의 기술 등 전문성과 인프라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제시설 구축에만 보통 5년이 걸린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이 희토류를 놓고 앞으로 건곤일척의 경쟁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