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거주, 평생 지급’이라는 장점을 가진 국민연금. GETTYIMAGES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대안은 다운사이징이다. 자녀를 키우는 동안 필요했던 넓은 집을 팔고 은퇴 후 부부만 거주할 작은 집으로 옮기는 것이다. 주택 규모를 줄여 생기는 차액을 생활비로 사용할 수 있다. 거주 지역을 옮기는 방법도 있다. 그동안 직장생활과 자녀 교육을 위해 서울 도심에 거주했다면 은퇴 후에는 수도권 신도시 등으로 이사하는 것이다. 아파트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액을 노후생활비로 쓸 수 있다.
누적 가입자 13만 명
문제는 이론적으로 그럴싸하게 들리는 이런 방법들을 실행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은퇴자들이 가장 살고 싶은 곳은 ‘원래 살던 데’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낯선 곳으로 이사는 불편할 수 있다. 작은 집으로 옮기는 것 역시 쉽지 않다. 타인의 눈이 의식되기도 하고 심리적으로도 위축될 수 있어서다. 주택연금은 이런 단점들을 커버하는 또 다른 대안이다.주택연금 누적 가입자 수는 지난해 10월 기준 13만 명을 넘어섰다. 가입 조건 완화와 제도 개선이 이어지면서 주택연금이 노후 소득 마련의 중요한 대안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주택연금이란 주택 소유자가 담보로 제공한 집에 계속 거주하면서 평생 매달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한국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하는 제도다. 쉽게 말해 내 집을 팔지 않고도 집값을 활용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부부 중 한 명이라도 55세 이상이고 공시가격 12억 원 이하 주택 또는 주거용 오피스텔을 소유 중이라면 가입할 수 있다. 다주택자도 부부 소유 주택의 공시가격을 합산해 12억 원 이하면 가입이 가능하다.
주택연금의 가장 큰 장점은 ‘평생 거주, 평생 지급’이다. 부부 중 한 명이 먼저 세상을 떠나더라도 감액 없이 동일하게 지급된다. 이러한 평생 주거 보장과 함께 국가가 연금 지급을 보증하기 때문에 중단 위험이 없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또한 주택연금은 합리적인 상속 구조를 갖고 있다. 부부가 모두 사망한 이후에 집을 처분해 대출 잔액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연금 지급 총액이 집값보다 많으면 상속인은 그 차액을 부담하지 않아도 되고, 반대로 집값이 남으면 그 차액이 상속인에게 돌아간다.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매달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주택 가격과 가입 시점 나이에 따라 연금 지급액이 달라진다. 주택 가격은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인정하는 시세를 적용한다. 아파트의 경우 한국부동산원과 KB국민은행 시세를 순차적으로 적용한다. 주택과 오피스텔은 감정기관의 감정 평가를 통해 시세가 결정된다. 가입자 연령도 월 지급액을 정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연령은 부부 중 젊은 사람(연소자) 나이를 기준으로 한다.

가입 후 공시가격 상승분, 연금에 반영 안 돼
예를 들어 주택 가격이 3억 원, 가입 연령이 55세라면 매달 44만3000원을 받지만 70세라면 89만2000원을 받을 수 있다(표 참조). 만약 70세 가입자가 보유한 주택 가격이 10억 원이면 매달 297만5000원을 받게 된다. 주택 가격이 비싸고 나이가 많을수록 금액이 높아지는 구조다.물론 주택연금 가입을 검토할 때는 미리 알아야 할 점도 있다. 먼저 연금 가입 이후 주택 공시가격이 상승해도 월 지급액이 늘어나지 않는다. 주택연금 중도 해지 시에는 지금까지 받은 연금 지급액(월 수령액, 개별 인출금)과 보증료(초기 보증료, 연 보증료), 대출이자를 한꺼번에 상환해야 하고, 해지 후 3년간 동일 주택으로는 연금 재가입이 제한된다. 또 주택 공시가격이 12억 원 이하여야 해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공시가격은 ‘부동산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와 ‘한국부동산원 부동산정보’ 애플리케이션에서 조회할 수 있다. 공시가격이 12억 원을 넘을 때는 은행 등에서 취급하는 주택연금 상품을 활용하면 된다.
한국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인 40.4%에 달한다.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3배 가까이 높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주택연금은 단순한 금융상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 고령층의 노후생활 안정에 필요한 필수 제도인 동시에, 부동산 자산은 있지만 현금화가 어려운 이들이 효율적으로 자산을 활용해 경제적 자립을 도모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다. 자녀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고령층에게 이보다 효과적인 현금흐름 확보 수단은 드물다. 앞으로 더 많은 국민이 주택연금 제도를 활용해 풍요롭고 안정적인 노후를 맞이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