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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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AI 반도체 전쟁… 엔비디아- TSMC·SK하이닉스·삼성전자 합종연횡

삼성전자 HBM 테스트 불발 논란… 설계 결함 여부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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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4-06-0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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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역폭메모리(HBM)는 기존 메모리 반도체와는 많이 다르다. 기존 메모리 반도체가 범용 제품인 반면, HBM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기반한 인공지능(AI) 반도체에 최적화됐다. 삼성전자의 경우 1위 업체다 보니 ‘잘하는 것을 하자’는 보수적인 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9년 HBM 개발팀을 해제한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형수 HSL파트너스 대표가 5월 29일 삼성전자의 HBM 개발에 시간이 걸리는 상황을 이같이 분석했다. AI 반도체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글로벌 반도체업계는 엔비디아와 TSMC, SK하이닉스가 이른바 ‘GPU 동맹’을 꾸리는 등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한 승부를 펼치고 있다.

    엇갈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3개 기업은 엔비디아, TSMC, SK하이닉스다. 엔비디아가 ‘AI 산업의 쌀’로 불리는 GPU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며 슈퍼갑으로 자리매김했고, TSMC와 SK하이닉스도 일찌감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HBM이라는 각자의 영역을 수성하고 있다. 여타 기업들이 엔비디아의 GPU 동맹에 맞서거나 반대로 들어가려 노력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 삼성전자 역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로이터통신은 5월 24일(현지 시간)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기 위한 테스트를 아직 통과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전자 HBM이 발열과 전력 소비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즉시 “다양한 글로벌 파트너와 HBM 공급을 위한 테스트를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는 입장을 냈지만 시장 평가는 냉혹했다. 당일 주가가 3.07% 하락한 것이다. 특히 외국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는 이날에만 삼성전자 주식을 각각 5661억 원, 3001억 원 순매도했다.

    현재 엔비디아에 대한 HBM 납품은 SK하이닉스가 꽉 쥐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3사 가운데 가장 먼저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했으며, 3월부터 5세대 HBM(HBM3E)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인포그래픽 참조). 권재순 SK하이닉스 수율담당 임원은 5월 22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HBM3E 칩이 목표 수율인 80%에 거의 도달했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시장 예상치인 60~70%를 웃도는 수준이다. SK하이닉스는 3분기에 HBM3E 12단 제품을 본격적으로 양산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HBM 시장 리더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현 상황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을 수 있다. SK하이닉스와 GPU 동맹을 맺었다지만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도리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첨단 HBM을 독점 납품하면서 ‘슈퍼을’ 자리를 차지하면 GPU 판매에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이른바 ‘솔 벤더(sole vendor: 독점 협력업체) 리스크’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만으로 대응하기에는 (GPU) 물량이 많고, 솔 벤더 방식은 위험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통상적으로 솔 벤더 방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이 구축될 경우 가격 결정력 등 다방면에서 시장 우위가 희석될 수 있다.

    이미 엔비디아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TSMC에 GPU 공급을 사실상 통제받고 있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TSMC의 첨단 패키징 공정인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가 필요한데, TSMC가 주요 기업의 물량을 소화하느라 엔비디아 주문을 모두 처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산하 연구기관 블룸버그인텔리전스(BI)는 엔비디아가 AI 반도체 주문 물량을 모두 소화하려면 TSMC의 CoWoS 생산능력 가운데 절반가량을 사용해야 하지만, 현재 3분의 1만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GPU 품귀 현상’의 중심에 TSMC가 있는 셈이다. 물론 TSMC가 생산 공장을 늘려 GPU 주문에 대응할 수도 있지만 수요 예측에 실패하거나 시장 상황이 변하면 큰 손실을 입게 된다. TSMC가 수요 예측 리스크를 엔비디아에 전가한 셈이다.

    “엔비디아, 솔 벤더 리스크 싫을 것”

    업계에서는 엔비디아가 내심 삼성전자의 HBM 납품을 바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마이크론의 HBM 생산능력이 한국 양사에 크게 못 미치는 만큼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HBM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뿐인데, 마이크론은 생산 물량이 적어 한계가 있다”면서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SK하이닉스의) 솔 벤더 체제로 리스크를 지고 싶지 않은 만큼, 삼성전자가 HBM 납품에 뛰어들기를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3월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GPU Technology Conference) 2024’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12단 적층 HBM3E에 ‘젠슨이 승인함(Jensen Approved)’이라는 사인을 남긴 것이 같은 맥락이 아니냐는 것이다.

    문제는 납품 시점이다.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1위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HBM 시장점유율은 2022년 50%에서 2023년 53%로 증가했다(그래프 참조). 같은 기간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점유율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분위기 반전을 위해 엔비디아에 HBM 납품이 절실한데, HBM 테스트 불발 논란으로 점유율 반전이 다소 지연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설계 결함 여부가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반도체업계 한 전문가는 “원인이 설계 결함일 경우 재설계를 해야 해 시간이 꽤 걸릴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2025년 초까지 테스트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설계 결함이 아닐 경우 어렵지 않게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삼성전자는 나노공정으로 베이스 다이도 제조 가능한 만큼 TSMC에 의존하는 SK하이닉스보다 경쟁력 측면에서 우위에 설 것이고, 공급량도 압도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전력 소모 문제가 핵심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5월 29일 열린 삼성증권 반도체 세미나에서는 “삼성전자 HBM 문제는 발열보다 전력 소모가 많다는 쪽”이라며 “SK하이닉스 제품보다 30% 정도 전력이 더 소모된다고 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또한 “전력 소모 문제는 개선이 쉽지 않은 만큼 납품단가를 낮추는 식으로 협의해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각 사 제공]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각 사 제공]

    구원투수로 등판한 전영현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위기의식이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5월 21일 DS부문장을 경계현 사장에서 전영현 부회장으로 교체하는 원포인트 인사를 발표했다. 전 부회장은 삼선전자 메모리사업부에 입사해 2014~2017년 메모리사업부장(사장)을 지내며 ‘반도체 신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5월 30일 사내 게시판에 올린 취임사를 통해 “우리가 처한 반도체 사업이 과거와 비교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직원 사이에서는 경영진의 반성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현국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부위원장은 5월 24일 2차 단체행동 후 기자들과 만나 “김기남 전 고문이 DS부문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HBM 개발을 미루라고 지시했다”고 지적했다. 이 부위원장은 “직원들은 이 지시만 듣고 (HBM 개발을) 후순위로 넘겼는데 결국 DS부문 영업이익은 마이너스가 됐으며, 김 전 고문은 지난해 172억 원을 받고 회사를 떠났다”고 덧붙였다. 이 부위원장은 이어 “전 부회장은 2018년 삼성SDI 노조 설립을 무산시킨 전례가 있어 노조는 이번 인사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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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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