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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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中 로봇 산업 성장 비결은 정부 투자”

여준구 한국로봇융합연구원장 “사람 같은 로봇 만드는 기술이 글로벌 시장 승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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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입력2023-05-03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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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대우중공업은 최초 국산 로봇 ‘노바(NOVA-10)’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했다. 삼성중공업은 2000년대 용접로봇 등 몇몇 산업용 로봇 개발에 성공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두 기업 다 로봇 사업을 접었다. 당장 큰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대기업의 로봇 사업 구상과 방향성도 수익이 담보되지 않아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대기업이 로봇 중소기업 혹은 스타트업의 우수 인력을 영입하고 이들 기업을 인수합병(M&A) 했다가 단기간에 수익을 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업을 포기해버리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여준구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원장.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제공]

    여준구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원장.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제공]

    로봇 생태계 형성은 반갑지만…

    국내 로봇시장에 대한 여준구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원장의 우려 섞인 시선이다. 여 원장은 한국 로봇계 대부이자 수중로봇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평가받는다. 1986~2004년 미국 하와이주립대 기계공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미국국립과학재단(NSF) 로봇 프로그램 디렉터 및 동아시아·태평양 지역 디렉터를 역임했다. 2006년 국내로 돌아온 뒤에는 한국항공대 총장,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로봇융합연구소장을 거쳐 2019년부터 한국로봇융합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여 원장은 4월 19일 인터뷰에서 최근 대기업의 로봇 투자 움직임에 대해 “수요자가 직접 나섰다는 점은 발전적”이라면서도 사업의 지속성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로봇 사업에 삼성전자 등 대기업까지 관심을 갖고 뛰어드는 것 같다.

    “일차적으로 자사 생산시설, 제품 및 서비스에 로봇 기술을 접목하기 위함이다. 중소기업,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연구개발(R&D)돼온 기술들을 직접 상용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이전에도 건설, 의료, 재난, 주거 등 분야에 충분히 적용해볼 만한 로봇 기술이 존재했다. 실수요자가 그 필요성을 느끼고 투자하고 있다는 게 최근 변화다.”

    대기업이 로봇 기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다면.

    “사회 변화에 따라 여러 사업 분야에서 사람을 대체할 로봇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 얼마 전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함께 건설로봇 개발을 협력하겠다고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현장 인력 부족, 중대재해처벌법 실시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세계 주요 보고서들이 글로벌 로봇시장의 성장을 확신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로봇 개발로 기업 생산성을 제고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향후 로봇 수출을 통한 수익 창출도 가능하니 유망하다고 보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 인수 등 대기업의 로봇 투자를 어떻게 평가하나.

    “로봇 산업 생태계 형성이라는 면에서 반가운 일이다. 대량생산에 대한 품질 관리 경험이 축척돼 있다는 것, 해외 수출에 필요한 글로벌 판매망과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다만 과거 로봇 사업을 추진하다 중단한 전례가 있어 우려스럽다. 당시 로봇 사업이 중단되지 않았다면 한국의 로봇 생태계 형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늦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만 믿고 있을 게 아니라 중소기업, 스타트업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글로벌 청소로봇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 기업 ‘아이로봇’은 MIT(매사추세츠공과대) 졸업생이 창업했다. 스탠퍼드대 출신 창업가가 설립한 ‘인튜이티브 서지컬’은 현재 세계 수술로봇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기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두 번의 호재에도 수혜는 없었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2021 로봇산업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캡처]

    [한국로봇산업진흥원 ‘2021 로봇산업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캡처]

    로봇시장은 생산과 판매를 기준으로 크게 네 갈래로 구분된다. 생산시장은 다시 연구개발과 부품조달 부문으로, 판매시장은 산업용(제조용)과 서비스용(협동용)으로 나뉜다. 로봇 생산에서 가장 앞서가는 국가는 일본이다. 연구개발, 부품조달 모두 경쟁력이 뛰어나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일본의 로봇 생산량은 세계 1위다. 2021년 전 세계에 공급된 산업용 로봇의 45%를 일본이 만들었다. 로봇 판매 시장의 규모가 큰 나라는 미국과 중국이다. 각각 서비스용, 산업용 시장을 주도한다. 이들 국가에 비해 한국 로봇은 아직 ‘내수용’에 불과하다는 평이 많다.

    미국, 일본, 중국의 로봇 산업이 성장한 비결은 무엇인가.

    “공통점은 정부 투자다. 중국은 20년 전만 해도 ‘로봇 불모지’였다. 로봇 분야 국제학회에 발표된 논문도, 잘 알려진 로봇 기업도 없었다. 그러다 정부의 저돌적인 재정 지원에 힘입어 유럽의 산업용 로봇 생산 기업을 대거 인수하더니 단기간에 비약적 성장을 이뤘다. 미국의 경우 정부가 2011년부터 ‘국가 로보틱스 이니셔티브(NRI)’ 등 로봇 관련 강력한 육성 정책을 펴면서 서비스로봇 시장을 개척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시작으로 미국 정부가 제조업 기업에 리쇼어링(생산시설의 자국 이전), 니어쇼어링(인접국 이전)을 독려한 것도 로봇 산업에 기회였다. 인건비 등 비용 절감을 위해 공장에 로봇과 자동화 설비를 설치하려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정부가 로봇 기술 개발과 우수 인력 양성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왔다.”

    한국 로봇 기업의 기술력은 현재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나.

    “미국, 중국의 로봇 산업이 성장하면서 두 번의 호재를 만들어냈을 때 한국 기업이 수혜를 보지 못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이 소위 ‘잘나가는’ 로봇 기업과 인수합병을 타진하던 시기 한국 기업에도 문의는 있었지만 실제 성사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로봇, 자동화 분야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도 한국 기업이 혜택을 봤다는 사례는 듣지 못했다. 이 말은 즉 한국 로봇이 성능과 가격 경쟁력 면에서 모두 뒤떨어진다는 뜻이다. 부품조달력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로봇 부품의 해외 의존도가 57%에 달한다. 하모닉드라이브 등 부품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한다. 일부 국내 기업에서 부품을 생산하기는 하지만 성능이 일정치 않아 한국 로봇 생산 기업도 사용을 주저한다.”

    한국이 서비스로봇 개발에 열심인 이유

    국내 기업이 서빙, 배송(배달) 등 서비스로봇 개발에 열심인 것도 관련 있나.

    “산업용 로봇시장은 이미 다른 나라들이 선점한 상태다. 이런 ‘레드 오션’에서 선택받으려면 아주 고성능이거나 저가인 로봇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 해도 이미 한 기업의 산업용 로봇을 사용하고 있는 생산시설이라면 굳이 다른 기업의 로봇을 써서 비효율을 발생시키는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비스로봇 시장은 아직 성장 초기다. 그러면서도 가까운 미래에 급속도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 진입하기 더 수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비스로봇 또한 기술적·기능적 우위가 없다면 가성비를 앞세워 서비스로봇 시장에 본격 진출하고 있는 중국산에 또다시 밀려날 것이다.”

    향후 글로벌 로봇시장의 승부처가 될 것으로 여겨지는 원천 기술이 있나. 이를 육성하기 위한 정부 정책은 어때야 하나.

    “사람 같은 로봇을 만들 수 있는 원천 기술이 핵심이다. 자율주행 기반으로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는 ‘자율 이동형 협동 로봇(AMMR)’, 2개 이상 자율 로봇을 결합해 성능을 향상시킨 ‘다중 로봇 시스템(MRS)’, 사람과의 인지적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c-HRI’ 등이 그것이다. 이 세 기술은 국내외에서 오랜 기간 연구됐으나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상용화할 수준만 되면 로봇 산업의 성장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기술들이다. 이를 위해서는 로봇 산업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투자는 물론, 투자수익률(ROI)을 최대화할 수 있는 전문가 중심의 거버넌스가 보장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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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아 기자

    이슬아 기자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슬아 기자입니다. 국내외 증시 및 산업 동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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