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소득주도성장 원안 만든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최저임금 너무 가파르게 올렸다”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9-04-22 10:56:2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내걸고 여러 정책을 시행했지만, 정작 국민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의 정책 가운데 가장 불만인 부분은 경제정책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4월 첫 주 국정여론 조사 결과 국정 반대 층이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문제 해결 부족’(38%)이었다. 

    문 대통령도 위기를 느끼고 4월 3일 원로 경제학자들을 초청해 조찬회를 가졌다. 이날 조찬회에 참석한 원로 학자는 대부분 정부 경제정책의 미비점을 짚었다. 친정부 성향의 학자들도 마찬가지. 정부 정책의 방향은 옳으나, 그 방법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도 이 자리에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약 처방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투약량과 방법이 잘못됐다”며 정부 정책 집행의 문제를 지적했다. 

    박 전 총재는 참여정부 시절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고, 문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경제정책 자문단으로 활동하면서 소득주도성장의 원안을 함께 만들었던 인물. 과연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가진 문제점은 무엇일까. 4월 18일 서울 평창동 자택 근처에서 박 전 총재를 만났다.

    “최저임금 인상 年 7~8% 적당”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현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방향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인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문제다. 최저임금 인상폭이 너무 컸다. 당초 내가 주장했던 것은 매년 7~8%씩 인상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2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29%가량이었다. 여기에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사용자의 부담은 50% 이상 올랐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일자리가 줄어 최저임금 근로자의 실직으로 연결됐다. 저임금 소득자를 도우려고 만든 정책이지만 외려 화를 입힌 셈이다. 일반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주도성장의 전부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때문에 소득주도성장 정책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이 생겼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의 여러 방안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소득주도성장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가계의 구매력을 높이는 정책이다. 임금 인상으로 가계 소득을 높이는 것도 한 방안이다. 하지만 정부가 더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가계의 고정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예가 복지정책의 확대다. 국민건강보험 보장 범위 확대, 노인 복지 예산 증액, 무상교육 범위 확대 등을 통해 가계 지출을 줄여 다른 곳에 돈을 쓰게 해야 한다. 정부가 경제정책에 쏟은 역량을 총 100이라고 한다면 이 중 70은 복지정책에 쓰였다고 본다.” 

    소득주도성장을 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제조업과 수출로는 더는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체 경제성장률이 한 자릿수에 머물 때도 수출 중심의 제조업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며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했다. 이 때문에 가계의 희생이 있더라도 경제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수출제조업 기업의 편의를 봐줬다. 대표적인 예가 전기요금이다. 기업은 저렴하게 전기를 사용하지만, 가계는 누진세로 상대적으로 비싼 요금을 내왔다. 하지만 2008년을 기점으로 수출·제조업 중심의 성장이 끝났다. 2008년 이후 수출 규모 성장은 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득주도성장밖에는 방법이 없다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계속 수출이 늘었다는 발표나 보도를 본 것 같다. 

    “수출 성장률은 2008년 이후 줄곧 감소세를 보이다 지지난해와 지난해 소폭 증가했다. 이 때문에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올해만 봐도 수출 성장률은 다시 감소세를 보일 것으로 점쳐진다. 전체 평균을 내면 수출로 이룬 경제성장은 사실상 없다. 바꿔 말하면 기존에 해왔던 대로 수출에만 의존해 경제성장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한국 경제도 성장을 멈추게 된다. 한국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내수 증대 정책을 펴야 하는 상황이다.” 

    기존의 제조업, 수출 기반의 성장 모델을 포기할 때가 됐다는 뜻인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펴면 수출 증대 정책은 필요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 기반의 수출시장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나 관심을 끊어서는 안 된다. 성장하지 않을 뿐이지 여전히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고, 많은 사람이 이 산업에 종사 중이다. 수출과 내수 두 날개를 모두 챙겨야 지속적인 수요 창출이 가능하다. 다만 경제성장의 핵심 축을 가계로 옮길 필요가 있다. 정부도 이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일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AI(인공지능), IT(정보기술) 같은 4차 산업과 금융, 의료, 교육서비스, 레저 등 소득이 늘수록 수요가 증가하는 이른바 고소득 수요형 서비스산업의 육성 노력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인상을 제외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경제성장의 핵심 축을 수출에서 내수로 바꿨다는 점에서 일부 성공적이다. 실제로 내수 소비 진작이 지난해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2015~2017년 3년간 민간 소비 성장률의 평균이 2.5%였다. 하지만 가계 소득이 진작돼 지난해 소비 성장률이 2.8%로 올랐다. 정부 소비 성장률은 더 가파르다. 같은 기간 2% 평균 성장률을 보였지만, 복지 확대로 지난해 소비 성장률이 5.5%로 대폭 증가했다. 두 섹터의 성장세를 합산하면 내수 소비가 3.5% 진작된 셈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7%니까 수출이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이 없다고 본다면 지난해 경제성장을 이끈 것은 내수 소비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수출 일변도의 정책을 폈다면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대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은 소득주도성장의 장점을 실감하지 못한다. 


    “소득주도성장의 두 번째 목표인 양극화 해소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계청 집계만 봐도 고소득자는 소득이 증가했지만, 저소득층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 매해 기업이 버는 돈은 크게 늘지만, 가계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왜 양극화가 심화됐나. 


    “수출 주도 성장론의 핵심인 낙수효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낙수효과에 따르면 기업이 돈을 벌면 국내 투자가 늘고, 국내 투자가 증가하면 고용이 늘어 가계 소득이 증가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의 이익이 늘어도 국내 투자가 증가하지 않는다. 계속 쌓이는 사내 유보금만 봐도 이 같은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이 국내 투자를 줄이니 기업이 번 돈이 가계에 닿지 못하는 것이다. 돌아야 할 돈이 못 도는 일종의 경제 동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금의 한국은 경제 뇌졸중에 걸린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과거처럼 정부가 기업을 직접 지원하기보다 가계에 돈을 풀어 돈의 흐름을 만들어야 했다. 내수 소비 진작으로 기업이 이를 회수하는 분수효과를 노리는 방식이다.”

    노동 정책 실패가 소득주도성장에 악영향

    하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유는? 

    “노동 정책이 전반적으로 실패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고, 저소득층의 경제사정을 악화시켰다. 최저임금을 올려서 돈을 더 받는 사람이 있지만, 최저임금을 받던 저소득층의 일자리가 줄었다. 근무시간 단축도 마찬가지다. 탄력근로제는 물론, 초과근로도 한시적으로 허용했어야 한다. 가령 향후 3년 동안은 60시간까지 본인이 원하면 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했다. 52시간으로 근무시간을 묶어놓으니, 초과 근무수당으로 돈을 벌던 저소득 임금 근로자는 외려 소득이 줄었다. 고소득 근로자나 전문직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이 증가했지만, 저소득층의 경제사정은 더 악화되는 모순도 이 때문이다.” 

    양대 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계가 탄력근로제나, 초과근로 허용을 막고 있다. 

    “이는 명백히 노동계의 실책이다. 노조도 기업을 생각해 양보할 건 양보해야 한다. 자신들의 주장만 관철하려고 계속 합의를 파행으로 이끄는 것은 문제다. 노사관계가 투쟁 일변도에서 상생으로 변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계는 자신들의 주장만 들어달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기업이 돈을 벌어야 근로자에게 줄 임금이 생긴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초과근로를 못 하게 한 것은 정부의 정책 실수라고 본다. 한시적 허용을 해줄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정책을 일부 수정하고 1~2년이 지나면 최저임금 인상 및 근무시간 단축이 몰고 온 부작용은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 

    어떤 방식으로 노동 정책을 수정해야 하나. 


    “일단 내년부터 최저임금 인상률을 낮춰야 한다. 기업도 납득할 수 있고, 최저임금 근로자들의 일자리도 위협받지 않는 적절한 인상폭을 찾아야 한다. 계속 최저임금 인상률이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가는 지금의 부작용을 해결할 수 없다.” 

    가계 소득 증대만으로는 경제성장을 이끌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당연하다. 경제는 수요와 공급 두 축 위에서 움직인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이 중 수요를 증대시키려는 방안이다. 당연히 공급 증대, 즉 기업 관련 지원에도 신경 써야 한다. 대표적인 정책이 규제개혁과 신산업 육성이다. 규제개혁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청와대에서도 규제개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현 수준이라면 정책적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하지만 규제개혁의 속도는 더디다. 승차공유만 해도 택시업계에 밀려 도입이 지지부진했다. 


    “사실 규제개혁은 매우 어려운 정책이다. 규제로 이득을 보는 기득권 세력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 각 부처도 이 중 하나다. 규제가 있어야 산업에 간섭할 수 있으니, 각 부처가 규제라는 권력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내부자인 정부 부처를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외에도 의료계, 법조계, 일부 기업 등 규제로 기득권을 유지하던 이들의 반발을 극복하고 개혁을 강행해야 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