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 집에 오기로 했으니 늦게 들어오라고 요구하는 아내.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남편. 이러한 광경도 낯선데 더 황망한 일이 벌어진다. 애인이라고 찾아온 사람이 다름 아닌 남편인 것이다. 하지만 옷도 다르게 입었고, 분위기도 180도 다르다. 여기서부터 관객은 헷갈리기 시작한다. ‘쌍둥이인가? 환상인가? 아니면 배우가 일인이역을 하는 건가?’ 애인이 집을 빠져나가면 다시 양복을 갖춰 입은 남편이 들어온다.
사건의 진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난다. 두 사람은 역할놀이 중이었다. 오후가 되면 부부가 아닌 정부 사이로 천진난만하면서도 음탕한 놀이를 벌여왔던 것이다. 이러한 반전은 권태로운 결혼생활을 그린 앞 장면과 대조를 이루며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공연은 통속적인 코미디가 아니다. 극은 결국 웃음이 아닌 묵직한 페이소스로 막을 내린다. 즐겁게만 보이던 역할놀이는 시간이 갈수록 절박하고 절망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아내는 병적일 정도로 집착을 보인다. 남편이 이제 아이들을 위해 문란한 역할놀이를 그만하자고 제안하지만, 아내는 정말 애인에게 실연당한 듯 울부짖는다. 아내에게 역할놀이는 살기 위한 발버둥처럼 보인다. 결국 남편은 그의 판타지를 밀어내지 못하고, 그렇게 부부의 이중생활은 계속된다.
200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해럴드 핀터는 부조리극 작가로 알려졌다. 부조리극에는 양차 세계대전 후의 혼란스러운 세계 인식이 드러나 있다. 사뮈엘 베케트, 장 주네, 외젠 이오네스코, 아르튀르 아다모프 등의 작가가 이에 속한다. 이들은 세상을 의문시하며 불확실성과 무의미함, 그리고 부조리함을 무대에 담았다. 종종 시공간적 배경이나 인물들의 정체를 알 수 없고, 논리적으로 들어맞지 않는 상황이 전개된다.
‘더 러버’는 일상적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영문을 모르겠는 상황들이 펼쳐지면서 비사실적인 느낌을 준다. 이때 끼어드는 환상성은 낯익었던 현실을 뒤흔들며 삶을 반추하게 만든다. 현실보다 판타지를 부여잡는 아내의 모습은 중년 부부가 영위하는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부부라는 통념과 가족이라는 제도 속에서 본능과 욕망이 소외되고 있지 않은지…. 짧은 시간 동안 비춘 전라 모습은 현실에서 누락된 욕망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일종의 충격요법처럼 보인다.
중산층 부부의 집을 깔끔하게 표현한 회전무대는 남편과 애인의 장면에서 각각 거실과 침실로 변하며 극 흐름을 돕는다. 공연 내내 열려 있던 집의 프레임이 내려오는 마지막 장면은 두 사람을 옭는 감옥을 연상케 한다.
이 공연은 뒤로 갈수록 깊이와 재미를 더한다. 무미건조하고 경직된 느낌을 주는 부부생활 장면이 애인관계로 접어들면서 희극적으로 변했다가, 다시 비애감이 뒤섞이면서 짙은 여운을 남긴다. 슬프면서도 우스운 희비극의 정서는 동시대 삶을 잘 담는다. 송영창이 남편 리처드, 이승비가 아내 사라를 맡아 열연한다. 그리고 김호진이 의미심장한 우유배달부로 잠시 등장한다. 8월 1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