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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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Z세대 키워드는 ‘낭만’

[김상하의 이게 뭐Z?] 10년 전 약속 지키려 안동역 모이는 청춘들 화제

  • 김상하 채널A 경영전략실 X-스페이스팀장

    입력2025-08-12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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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독 축축 처지는 올여름 날씨. 습도까지 높다 보니 돌아다니기보다 에어컨이 켜진 쾌적한 실내에 있는 게 더 좋다. 이 불볕더위에도 Z세대는 여름에만 즐길 수 있는 낭만을 찾아다니고 있다. 무더위가 싹 가실 Z세대 트렌드를 소개한다.

    #기억하니 10년 전 약속

    10년 전에 한 약속을 지키러 가도 되느냐고 묻는 ‘다큐멘터리 3일’ 감독의 게시 글. 인스타그램 @vj4001 계정 캡처 

    10년 전에 한 약속을 지키러 가도 되느냐고 묻는 ‘다큐멘터리 3일’ 감독의 게시 글. 인스타그램 @vj4001 계정 캡처 

    간지러운 멘트나 감동적인 장면만 낭만적인 건 아니다. Z세대에게 낭만은 오늘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추구하자는 의미에 가깝다. 여행처럼 오늘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경험을 직접 해보는 것이다. 과거 욜로(YOLO·You Live Only Once)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낭만을 오마카세, 호캉스 같은 이색 소비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비싼 돈을 들여야만 낭만을 손에 쥐는 건 아니다. 기억 저편의 일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낭만적일 수 있다.

    이번 주 Z세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낭만으로 달군 게시 글이 있다. 유튜브 채널 KBS 다큐가 ‘다큐멘터리 3일-안동역’ 편을 재편집해 올린 ‘2025년 8월 15일 7시 48분 안동역 앞에서 약속, 잊지 않으셨죠?’라는 영상이다. 당시 방송에서 대학생들은 카메라 감독과 10년 뒤 8월 15일 똑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다큐멘터리 꼭 찍으세요. 10년 후에”라는 대학생들의 말에 감독은 “그때도 제가 이 일을 하고 있을까요?”라고 대답했다.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는 지금, 감독 인스타그램에는 “10년 전 약속한 그날이 오고 있다. 가요? 말아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낭만 가득한 약속이 화제가 되자 공공기관과 기업들도 댓글을 달았다. 영상 속 한 대학생이 메고 있는 가방 브랜드 잔스포츠는 “안경 쓴 소녀, 아직 그 가방 해지지 않고 갖고 있어요? 잔스포츠도 10년 전 약속 함께 지키고 싶어요”라 했고, 그들이 들고 있던 과자 브랜드 오레오도 “안경 쓴 소녀, 아직도 오레오 좋아해요? 오레오도 안동역으로 갑니다”라고 했다. 두근거리는 8월 15일이 다가온다.

    #여름 감성 가득 ‘엑스레이 과일’

    여름 감성을 담아 Z세대 사이에서 화제가 된 작품. 인스타그램 @sarahmaffeis 계정 캡처 

    여름 감성을 담아 Z세대 사이에서 화제가 된 작품. 인스타그램 @sarahmaffeis 계정 캡처 

    X(옛 트위터)에서 조회수 100만 이상을 기록하며 입소문이 난 그림이 있다. 즙이 가득한 과일과 채소를 마치 엑스레이로 찍은 것 같은 그림이다. 보통 과일은 안에 들어 있는 씨나 과육 질감까지 생생하게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다. 이 그림은 속살까지 투명하게 드러나 여름 특유의 청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작가 사라 마페이스(@sarahmaffeis)다. 엑스레이로 과일을 스캔한 것 같은 섬세하고 투명한 표현 기법이 특징이다. 일명 ‘엑스레이 과일’로 불리는 이 그림은 X에서 “대체 어떻게 그린 걸까”라는 반응을 모았다.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는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릴스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따라 하기엔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림이 입소문을 타자 X에는 “비슷한 사진을 찍어본 적 있다”는 이용자들도 등장했다. 이용자 ‘오푸(@orangepuddingop)’는 투명 아크릴판 위에 과채를 올리고, 형광등과 휴대전화 플래시, 스탠드 조명을 사방에서 쏴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찍었다며 제작 후기를 공유했다. 사진 하나에 들어간 공만큼 결과물도 엑스레이 그림을 닮았다. 그 후 X에는 저마다 엑스레이 과일을 올리는 릴레이 인증이 이어지고 있다. 보기만 해도 쿨해지는 이 감성은 여름과 찰떡이다.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도 손색없다. 무더운 여름, 잠깐의 정성을 들여 나만의 ‘엑스레이 과일 사진’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지렁이 구하기 대작전

    홍익대 학생들이 주축이 돼 만든 ‘지렁이 구하기 대작전’. 인스타그램 @zeeroungeee119 계정 캡처 

    홍익대 학생들이 주축이 돼 만든 ‘지렁이 구하기 대작전’. 인스타그램 @zeeroungeee119 계정 캡처 

    한여름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 시간당 100㎜가 쏟아지는 폭우. 여름철 바닥을 기어다니는 지렁이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이들을 구하고자 홍익대에선 ‘지렁이 구하기 대작전’이 펼쳐지고 있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장마철이 되면 숨을 쉬려고 흙 밖으로 나오는 지렁이들을 구하고자 홍익대 학생들이 모여 결성한 프로젝트다. 실제 인스타그램 계정(@zeeroungeee119)도 운영 중이다.

    ‘지렁이 구하기 대작전’ 팀은 아스팔트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지렁이를 구출하는 키트를 만들었다. 지렁이를 구할 수 있는 전용 집게, 구한 지렁이를 올려놓을 수 있는 보호소 등도 교내에 설치했다. 특히 지렁이 구하기 키트는 학교에 버려진 목재 등을 재활용해 만들었다는 점이 포인트다. 누군가는 그냥 지나칠 작은 생명을 위해 학생들은 머리를 맞대어 아이디어를 실천하고 있다. 비록 지렁이 한 마리를 살리는 일이지만, 함께 더운 여름을 나는 생명을 떠올려보는 계기가 된다. 이 대작전이 더 많은 캠퍼스로 확산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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