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면 해안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밴쿠버불꽃축제. GETTYIMAGES
밴쿠버국제공항에서 도심까지 스카이트레인을 타면 30분 남짓 걸린다. 밴쿠버 중심은 다운타운이지만 도시에 대한 감도(感度)는 걸음의 결에 따라 달라진다. 바다와 이어지는 잉글리시 베이부터 마치 하나의 섬처럼 녹음이 가득한 스탠리 파크, 예술가와 상점이 모여 있는 그랜빌 아일랜드까지 길마다 결이 다르고, 계절마다 빛이 다르다. 그 변화는 여행자에게 도시의 여러 얼굴을 선물한다.
빨간 트롤리버스 타고 즐기는 도심 여행
밴쿠버를 대표하는 볼거리는 다운타운에 거의 몰려 있다. 밴쿠버 명물인 빨간 트롤리버스를 타면 주요 명소를 편안히 둘러볼 수 있다. 트롤리버스는 다운타운 동쪽 끝에 위치한 가스타운에서 출발한다. 밴쿠버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인 가스타운은 빈티지한 벽돌 건물과 증기시계, 소박한 카페들이 과거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곳을 걷다 보면 마치 오래된 유럽 골목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스탠리 파크의 해안 산책로인 시월은 산과 바다, 도시와 하늘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걷기 명소다. 야외 조각과 수목, 템플 벨 같은 잔잔한 물소리가 걷는 이의 발걸음을 부드럽게 이끈다. 볕이 좋은 날에는 바다 건너 웨스트밴쿠버의 풍경과 눈 덮인 노스 쇼어 산맥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도시의 일상과 대자연의 웅장함이 한 프레임에 공존하는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걷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다. 해안을 따라 돌면서 자연의 평온함을 만끽해보자.
이른 아침부터 분주히 다니느라 출출하다면 그랜빌 아일랜드의 마켓에 들러 신선한 해산물과 빵, 커피 한 잔으로 여유로운 브런치를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한적한 오후엔 갤러리와 공방들을 돌아보며 도시의 문화적 깊이를 경험하는 것도 좋다. 특히 다운타운 중심부에 위치한 밴쿠버 미술관은 그리스풍 외관을 지녔는데,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해도 좋을 만큼 근사하다. 캐나다 출신 대표 화가 에밀리 카의 작품을 비롯해 지역 작가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밴쿠버 다운타운. GETTYIMAGES
도시 전체가 작은 지구촌
밴쿠버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다문화 도시다. 전 세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과 그들의 음식, 언어, 문화가 거리 곳곳에 섞여 있다. 중국계 커뮤니티는 리치먼드에 밀집해 있고, 한국인과 일본인, 인도계 인구도 도심 전역에 분포한다. 도시 전체가 작은 지구촌처럼 느껴진다. 이국적인 맛을 찾는다면 퀸엘리자베스 공원 근처 레스토랑 거리나 리치먼드의 야시장을 추천할 만하다. 여행자는 국경과 언어를 넘어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저녁 무렵에는 간단한 피크닉 도시락을 준비해 퀸엘리자베스 공원 전망대에 올라보자.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석양이 질 때쯤이면 붉은 노을이 도시 전체를 포근히 감싼다. 보헤미안 감성이 돋보이는 키칠래노도 빼놓을 수 없는 곳. 밴쿠버의 여유로운 일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동네다. 해변을 따라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과 개성 넘치는 서점·카페, 오가닉 마켓이 어우러져 도시의 또 다른 리듬을 선사한다.
밴쿠버의 매력은 이뿐 아니다. 매년 다양한 축제가 열리는데 여름이면 해안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밴쿠버불꽃축제, 가을에는 밴쿠버국제영화제가 도시의 밤을 수놓는다. 특히 영화제 기간에는 작은 극장이 된 거리 곳곳에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세계의 시선을 만날 수 있다. 바다 건너 노스밴쿠버는 대자연 속에서 야외 음악축제가 열리고, 겨울이면 크리스마스 조명과 겨울 마켓이 도시를 환하게 밝힌다. 이외에도 프라이드 퍼레이드, 드래건 보트 페스티벌, 국제 와인 페스티벌 등 지역 커뮤니티가 중심이 된 활기찬 행사가 사계절 내내 이어진다.
밴쿠버는 ‘살고 싶은 도시’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한다. 자연과 도시가 연결된 일상은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여백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산을 오르면서 자신에게 묻고, 바다를 바라보다가 묵은 생각을 흘려보낸다. 북적이는 카페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다이내믹한 해양스포츠를 즐기며 삶의 에너지를 누리는 것도 밴쿠버에서는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 도시를 떠날 즈음이면 알게 된다. 밴쿠버는 그냥 스쳐 가는 여행지가 아니라, 일생에 한 번쯤은 살아봐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