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5

2023.11.17

다뉴브강의 진주 ‘부다페스트’로 떠나는 중세 시간여행

[재이의 여행블루스] 세체니 다리·마차시 성당·어부의 요새… 낭만과 설렘 선사하는 세계 문화유산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3-11-1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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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떠나는 여행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낯선 거리를 홀로 헤맨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다. 몸이 아프거나 위급 상황이 생겼을 때,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 할 때, 아름다운 풍경이나 잊지 못할 추억의 순간에 맞장구를 쳐줄 상대가 없을 때는 두려움을 넘어 외로움까지 밀려온다. 그러나 이 단계를 극복해내면 외로움과 두려움마저 여행의 재미로 느끼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혼자인 상황을 오롯이 누리는 요령도 생기고, 그 순간의 생각을 끄적이거나 엽서에 써서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기도 하며, 기차를 기다리면서 책을 읽거나 비슷한 처지의 여행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기에 여행에 대한 폭넓은 시야와 정보도 생긴다. 무엇보다 지친 일상 속 수많은 관계에 시달리느라 잊고 지냈던 나 자신을 만나는 ‘사색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이런 깊이 있는 시간은 여행 전의 삶을 돌아보고, 다가올 삶에 새롭게 도전할 ‘용기’를 선사한다. 만약 당신의 영혼이 출구 없는 미로에 갇혀 있거나,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낭떠러지로 하강 중이라면 어디론가 훌훌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 인생은 그저 그렇게 지내기에는 무척이나 소중하니까.

    중동부 유럽 교통의 요지

    부다지구와 페스트 지구를 잇는 세체니 다리. [GETTYIMAGES]

    부다지구와 페스트 지구를 잇는 세체니 다리. [GETTYIMAGES]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Budapest)’는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기에 참 좋은 곳이다. 사실 부다페스트는 유럽 여행자에게 고민을 안겨주는 곳 중 하나다. 서남쪽 유럽 도시들을 여행할 때 오스트리아 빈에 다녀온 뒤 동유럽 헝가리까지 돌자면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빼놓고 가기에는 아쉬워 결국 빈에서 당일치기로 잠시 부다페스트를 여행하곤 하는데, 막상 도착하면 하루라도 머물걸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사실 1박 2일로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말이다.

    부다페스트는 유럽 대륙을 동서로 가로질러 흑해로 흘러가는 ‘다뉴브강(도나우강)’을 끼고 펼쳐진 중동부 유럽의 허브 도시다. 헝가리는 서쪽 오스트리아를 시작으로 해 시계 방향으로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 7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오스트리아 빈까지는 기차로 약 2시간 30분 거리이고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남서부 유럽 국가들과는 자동차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가깝다. 북쪽으로는 폴란드와 체코, 동쪽으로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남쪽으로는 옛 유고 연방 국가들이 둘러싸고 있어 인접 국가에 접근하기 편한 교통의 요지다. 이런 지정학적 이점 때문에 헝가리는 동유럽 국가 중 가장 먼저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했다.

    부다페스트는 1987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목록에 올랐다. 도시 어느 곳을 향하든 유구한 역사와 다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어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 좋은 낭만과 설렘을 선사한다. 부다페스트는 원래 도시를 관통하는 다뉴브강을 분기점으로 ‘부다(Buda)’와 ‘페스트(Pest)’라는 별개 도시로 성장했다. 언덕이라는 의미의 동쪽 부다 지구는 13세기 이래 헝가리 왕이 거주하던 귀족과 부호의 영역이었고, 평지라는 의미의 페스트 지구는 중세 이래 상업과 예술의 도시로 성장했다. 19세기 중엽까지 각기 독립적으로 발전하던 이들 도시국가는 1873년 헝가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칭송받는 세체니 이슈트반 백작(1791~1860)에 의해 한 도시로 통합돼 오늘날 부다페스트가 됐다.

    두 지구를 잇는 ‘세체니 다리’도 백작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부다페스트의 명소인 세체니 다리는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다리다. 다뉴브강에 놓인 8개 다리 중 하나인데, 환상적인 야경이 일품이다. 다리 양 끝에 사자상이 위엄 있는 자태로 지키고 서 있어 ‘사자다리’로도 불린다. 세체니 다리는 부다페스트의 암울함을 그대로 전달한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지로도 유명하다. 세체니 다리가 생긴 사연이 참 애잔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새벽 세체니 백작은 페스트 지구에 살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침 일찍 배를 타고 건너가려 했지만 밤사이 불어난 강물 때문에 결국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 일을 계기로 세체니 백작은 사비를 들여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 건설을 추진했고 스코틀랜드 출신 건축가 애덤 클라크(1811~1866)가 공사를 담당해 1849년 완공했다. 다리 하나로 부다와 페스트는 지역과 계층, 신분을 뛰어넘어 하나가 됐다. 양쪽 지구를 연결하는 세체니 다리를 건너면 부다페스트 관광의 중심지인 부다 지구에 도착하게 된다.



    중후한 부다 왕궁

    부다페스트는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 지하철, 트램이 도시 곳곳을 누비며 거미줄 같은 교통망을 자랑한다. 양쪽 지구를 오갈 때는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이 좋고, 관광명소가 밀집된 곳들을 방문할 때는 도보나 트램이 편하다. 높은 언덕이 이어진 부다 지구는 왕이 살았던 곳이라 어딘가 중후한 분위기를 풍긴다. 가장 먼저 가볼 곳은 13세기 이래 헝가리 왕들이 거주했던 ‘부다 왕궁’이다. 왕궁은 세치니 다리 건너편에서 비탈길을 걸어 올라갈 수도 있지만, 산악열차인 ‘강삭철도(Funicular)’를 타면 편하다. 요새처럼 높은 언덕에 자리한 부다 왕궁은 13세기 몽골 침입으로 피란을 온 벨라 4세(1206~1270)가 최초로 지었다. 이후 20세기까지 외세 침략과 50여 년간 이어진 공산주의 통치로 건물 대부분이 파괴됐지만, 오랜 기간 복원 작업을 통해 현 모습을 갖췄다. 부다 왕궁은 네오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아치형 창문과 이슬람 고유의 아라베스크 무늬가 새겨진 돌기둥이 특히 화려하다. 현재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역사박물관, 국립미술관, 국립도서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첨탑과 타일 지붕, 모자이크 장식이 환상적인 마차시 성당. [박진희 제공]

    첨탑과 타일 지붕, 모자이크 장식이 환상적인 마차시 성당. [박진희 제공]

    부다 왕궁을 중심으로 반드시 들러봐야 할 ‘마차시 성당’과 ‘어부의 요새’는 도보로 2~5분 거리에 모여 있다. 거리 곳곳에 100년 넘은 역사적 건축물들과 중세 도시의 매력을 담은 카페, 레스토랑이 즐비해 한참을 걸어도 지루할 겨를이 없다. 역대 왕들의 대관식이 거행된 마차시 성당은 1470년 헝가리의 전성기를 이끈 왕 마차시 1세(1458~1490)의 명령으로 세워졌다. ‘마차시 교회’ ‘마차시 사원’으로도 불리는데 헝가리 역사에 따라 어느 때는 교회로, 또 한때는 이슬람 사원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이후 네오고딕 양식이 결합해 더 아름답고 화려한 교회가 됐다. 이 교회는 88m 높이 첨탑과 예쁜 색깔의 타일들로 꾸며진 지붕, 화려한 원색 모자이크 장식이 볼만하다. 성당 안에는 프레스코 벽화, 역대 사제들이 입었던 의상, 성당 장식품, 십자가 등이 전시돼 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부다페스트 야경. [GETTYIMAGES]

    감탄이 절로 나오는 부다페스트 야경. [GETTYIMAGES]

    마차시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돌아 나오면 마치 성당을 보호하듯 좌우로 길게 세워진 ‘어부의 요새’를 만나게 된다. 중세 때 이곳에 어시장이 있었는데, 다뉴브강 어부들이 강을 건너 기습해오는 적을 막고자 성벽처럼 요새를 만든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어부의 요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은회색 원뿔 형태의 7개 탑이다. 이 탑은 헝가리를 세운 마자르족 영웅 7명을 상징한다. 7개 탑을 연결하는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혼재된 긴 회랑은 물론, 요새에서 마차시 성당까지 길게 연결된 성벽과 계단이 무척이나 이채로워 천천히 걷기에 좋다. 높은 언덕에 자리한 요새는 다뉴브강과 페스트 지구의 국회의사당, 영웅광장, 성 이슈트반 대성당 등 주요 명소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야경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수많은 불빛이 반짝이는 환상적인 야경은 상상을 초월하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세계 3대 야경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촉박하게 일정을 짜다 보면 야경까지 챙겨볼 만한 체력이 남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부디 부다페스트에서만큼은 온몸의 피로를 말끔하게 풀어줄 야경을 꼭 즐기자.

    세계 문화유산 M1 라인

    부다 지구와 분위기가 사뭇 다른 다뉴브강 동쪽 페스트 지구에서는 헝가리인의 활기찬 일상과 함께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인 국회의사당, 영웅광장 등을 만날 수 있다. 페스트 지구로 넘어오면 부다페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체험인 노란색 지하철 M1 라인에 꼭 탑승해보자. 1896년 개통된 M1 라인은 런던과 이스탄불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지하철이자,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전철화된 유서 깊은 지하철이다. 2002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M1 라인은 여전히 이 도시의 지하세계를 달린다. 오래된 낡은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지하철을 타고 헝가리 건국 천년을 기념하는 ‘영웅광장’(회쇠크 광장)으로 향해보자.

    ※주간동아 다음 호(1417호)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줄 ‘다뉴브강의 진주, 부다페스트로 떠나는 중세 시간여행’ 두 번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 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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