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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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복닥거리는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솔푸드’

해장 음식

  •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8-06-26 10: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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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묵 김치찌개와 의정부 부대찌개, 전주식 콩나물국밥(왼쪽부터).

    어묵 김치찌개와 의정부 부대찌개, 전주식 콩나물국밥(왼쪽부터).

    내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때가 있다면 당연히 2002년 6월이다. 나뿐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좋은 기억을 안겨준 한 달이었을 테다. 그때만큼 올해 6월도 참 오래 회자될 것 같다. 1950년 동생을 업고 피란을 다녀야 했던 엄마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나는 장면을 보고, 2002 한일 월드컵 키즈로 태어난 선배의 아들이 오락기를 낀 채 2018 러시아월드컵 개막식을 본다며 TV 앞에 앉아 있다. 또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으로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4위라는 예상 밖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묵직한 소식에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술안주는 만나는 사람, 동네, 시간대, 기분, 날씨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그리고 술자리 결과에 따라 다음 날 해장 노선도 바뀐다. 고기나 내장요리 같은 기름지고 묵직한 음식으로 배를 가득 채운 다음 날에는 김치찌개만 한 해장 음식이 없는 것 같다. 빡빡한 ‘짜글이’ 종류보다 국물이 넉넉하고 김치 특유의 시원하면서도 칼칼한 맛이 잘 우러나야 좋다.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 근처에 사각 어묵을 넣고 김치찌개를 끓이는 집이 있는데,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을 때마다 ‘캬~’ 하는 추임새가 절로 나온다. 

    막걸리를 한껏 마신 다음 날에는 을지로로 향한다. 막걸리와 같이 먹은 지짐이 안주 탓에 더부룩해진 속을 푸는 데는 평양냉면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시원한 국물을 먼저 한 모금 마시고 냉면을 조금씩 건져 천천히 먹는다. 속이 가만히 가라앉으면서 얼굴에 올랐던 열기도 내려간다. 

    날이 너무 춥거나 몸이 으슬으슬할 때면 칼국수로 대신한다. 멸치로 우린 깊고 시원한 국물에 고명은 단출할수록 좋다. 엄마와 자주 갔던 서울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 근처 은마상가의 칼국수 맛이 그립지만 거리가 멀어 충무로나 대학로 쪽 칼국숫집에 가곤 한다. 

    술을 마시다 보면 이 집 저 집 옮겨만 다니고 제대로 된 안주 한 접시 못 먹을 때가 종종 있다. 잠드는 순간 허기와 취기가 올라와 씁쓸한 꿈을 꾼 다음 날이면 의정부 부대찌개를 먹으러 간다. 갖은 햄과 소시지, 라면 사리, 통조림 콩, 간 고기, 떡, 두부가 들어간 찌개에 치즈까지 얹고 쑥갓이나 미나리를 듬뿍 넣어 자글자글 끓이며 먹는다. 기름지면서 매운 국물에 밥까지 말아 먹으면 전날 저녁밥을 먹지 못한 아쉬움이 말끔히 사라진다. 



    해장은 때론 마음에도 필요하다. 술자리에서는 사람 사이 경계가 허물어지고 말이 두서를 잃거나 감정이 앞서는 일도 많다. 당연히 다음 날 마음이 복잡하다. 이럴 때는 혼자 추어탕이나 순댓국을 먹으러 간다. 뚝배기 밖으로 국물이 튈 정도로 팔팔 끓여 내는 이 두 가지 음식은 먹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그릇에 덜어 식히고 조심조심 천천히 혼자 맛보면서 어제 나눈 말과 마음을 곱씹어 정리해본다. 단돈 8000원 내외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사색의 시간이다. 

    폭주한 다음 날에는 콩나물국밥 외에 답이 없는 것 같다. 육수에 토렴한 밥, 그 위에 고춧가루, 깨소금, 다진 마늘, 삶은 콩나물을 얹고 넉넉하게 국물을 붓는다. 마지막으로 쫑쫑 썬 김치와 대파를 얹어 낸다. 얇게 썬 청양고추와 김 가루를 넣고 급한 마음에 몇 숟가락 먼저 먹는다. 잘게 썬 삶은 오징어를 섞은 뒤 반숙 달걀이 든 그릇에 해장국밥을 덜어 후후 불며 다급하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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