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팬이 몰린 2009 정규시즌의 최대 화제는 뭐니 뭐니 해도 전통의 명문 KIA 타이거즈의 12년 만의 우승이다. 시즌 전만 해도 KIA를 우승후보로 꼽는 야구전문가는 드물었다.
2년 연속 하위권(2007년에는 최하위)에 머물던 KIA가 이렇다 할 전력 보강 없이 시즌을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KIA는 5월부터 상승세를 타더니 8월에는 20승 4패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고, 8월2일 이후 1위를 한 번도 내주지 않은 채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감격을 누렸다.
로페즈·구톰슨·양현종·윤석민으로 이뤄진 명품 선발진, 곽정철·손영민의 중간계투진, 그리고 마무리 유동훈이 버티는 철벽 마운드는 KIA를 ‘대권’으로 이끈 버팀목이었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지만 어디 그뿐인가. 최희섭-김상현 ‘CK포’는 69홈런, 227타점을 합작해내며 타율 최하위에 머문 팀 타선에 무게감을 실어줬다. 특히 36홈런, 127타점을 올려 시즌 MVP가 유력한 김상현의 활약은 올 시즌 KIA 우승의 가장 큰 동력이 됐다.
시즌을 멀리 내다본 조범현 감독의 전략과 용병술도 KIA 우승의 밑거름이 됐다. 조 감독은 시즌 초반 6선발 체제로 선발 투수진을 운영했는데, 이는 결국 시즌 중반 이후 투수들의 체력관리에 큰 도움이 됐다. KBS N SPORTS의 이병훈 해설위원은 “선수들을 많이 기다려주고 그들이 좋은 성적을 내게끔 격려를 아끼지 않는 조범현 감독의 ‘믿음의 야구’가 올 시즌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조 감독은 또 시즌 후반기에 장성호와 나지완의 대타 만루홈런을 연출해내는 등 적절한 선수교체로 귀신같은 용병술을 보여줬다.
9월24일 군산 히어로즈전에서 승리하며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한 KIA 선수들이 조범현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한편 지난 2년간 한국시리즈를 제패했던 SK는 프로야구 역사상 80승 고지에 오른 최초의 2위 팀이 됐다. 1위 KIA와는 승률이 7리밖에 차이 나지 않는 박빙의 승부를 시즌 막판까지 펼쳤다.
팀 평균자책점(3.67)과 타율(0.285)은 모두 1위. 시즌 종반 무서운 뒷심을 발휘해 19연승을 기록하며 정규 시즌을 마친 SK의 연승행진은 내년까지 ‘현재진행형’을 이어갈 수 있다.
지난 시즌 종료 후 주축인 홍성흔과 이혜천이 팀을 떠난 두산은 두 선수의 공백에도 시즌 전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뚝심을 발휘하며 3위에 올라 강팀의 면모를 과시했다.
지난해 8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가을 야구’를 경험한 롯데도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반면 포스트시즌 단골 진출팀인 삼성은 5위에 머물며 1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꿈이 좌절됐다.
대권을 안은 KIA … 타고투저 화끈한 경기양준혁
올 시즌 개인기록 부문에서는 ‘타고투저’ 현상이 심했다. 조정훈(롯데), 윤성환(삼성), 로페즈(KIA) 등 다승 1위(공동)가 거둔 승수는 고작 14승으로 역대 최저 다승왕이 됐고, 구원 부문에서도 2001년 이후 8년 만에 30세이브 미만 구원왕이 나왔다. 공동 구원왕 애킨스(롯데)와 이용찬(두산)의 성적은 26세이브. 지난해 정규시즌 MVP 김광현(SK)이 2관왕(평균자책점·승률)으로 그나마 투수 부문에서 가장 빛났다.
반면 타자들은 펄펄 날았다. 박용택(LG)은 0.372로 1999년 롯데 마해영(0.372)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3할7푼대 타격왕이 됐고, 김상현은 127타점으로 2003년 삼성 이승엽(144개)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타점을 쓸어 담았다. 김상현은 홈런과 장타율 1위까지 차지하는 활약을 펼쳤으며, 이대형(LG)은 도루 3연패, 두산 김현수는 최다안타 2연패의 영광을 안았다.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롯데는 138만18명으로 역대 한 시즌 최다관중 신기록을 경신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선전(善戰) 여파가 바로 미친 개막전에는 전 구장이 매진되면서 9만6800명이 몰려 개막전 관중동원 신기록을 수립했다. SK의 19연승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1954년 난카이 호크스와 1960년 다이마이 오리온스가 세운 18연승을 뛰어넘는 아시아 신기록이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송진우는 두 가지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4월8일 두산전에서 43세1개월이란 나이로 최고령 승리투수가 됐고, 다음 날 두산전에서는 프로야구 최초로 3000이닝 투구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삼성)은 5월9일 LG전에서 통산 341번째 홈런을 쏘아올려 장종훈의 기록을 넘어 최다홈런 기록 보유자가 됐다. 전준호(히어로즈)는 9월25일 KIA전에서 1회에 2루를 훔쳐 전인미답의 고지인 통산 550도루에 성공했다. 5월21일 광주에서 열린 KIA-LG전은 5시간58분 만에 경기가 끝나 역대 최장시간 경기로 남았다.
해외파 선수들 2009 성적표는
‘20-20클럽’ 가입 추신수 최고의 한 해
| 올 시즌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한국 선수는 6명(마이너리그에서만 활동한 선수는 제외)이다. 이 가운데 ‘코리아’의 이름을 가장 드높인 선수는 2009시즌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하며 팀의 주전 우익수로 성장한 추신수(클리블랜드). 올 시즌 팀 내에서 가장 많은 156경기에 출전한 추신수는 3할 타율에다 20홈런과 21개의 도루를 기록, 아시아인 타자로는 최초로 호타준족의 상징인 ‘20-20 클럽’에 가입했다. 아메리칸리그에서 타율 3할에 20-20을 돌파한 선수는 추신수가 유일하다. 호타준족의 대명사인 데릭 지터(뉴욕 양키스)도 20-20을 달성하지 못했다. 홈런과 타점, 도루, 장타율도 모두 팀 내 1위. 또한 투수 출신인 추신수는 강한 어깨를 살려 보살(안타나 플라이성 타구를 잡고, 진루하려는 주자를 송구로 잡아내는 플레이) 11개(메이저리그 전체 외야수 중 11위)를 잡아내는 등 공·수·주를 통틀어 최고의 활약상을 보여줬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챔피언팀 필라델피아에서 올 시즌 새 야구 인생을 연 박찬호는 시즌 초반 선발로 7경기에 출전해 1승1패 방어율 7.29로 부진하다 불펜으로 강등됐다. 그로 인해 중간계투로 밀려났지만 결국 이 자리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중간계투로 나서 3승3패 평균자책점 4.43에 13홀드를 기록하며 필라델피아 투수진의 허리를 책임졌다. 그러나 9월17일 워싱턴전에서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 부상을 당한 박찬호는 이후 부상이 회복되지 않아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출전이 어려울 전망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가장 빛난 선수는 ‘야쿠르트의 수호신’ 임창용이다. 7월12일 경기 전까지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쾌속 질주하던 임창용은 시즌 중반 이후 구위 저하와 허리부상이 겹쳐 통타를 당하긴 했지만, 10월6일 현재 5승4패26세이브 평균자책점 2.03으로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다. 전반기 구원 부문 1, 2위를 다투던 임창용은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팬이 뽑은 올스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에 비해 ‘국민타자’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과 이병규(주니치)는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해 부상으로 45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해 올해 명예회복을 노리던 이승엽은 10월6일 현재까지 77경기에 출전, 타율 0.229 16홈런 36타점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7월13일 2군으로 내려갔다가 7월 말 잠깐 1군에 복귀했지만 허리 통증으로 다시 2군행을 통보받았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10월7일 1군 훈련에는 합류한 상태. 하라 감독의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병규는 더욱 부진했다. 지난해 16홈런 65타점으로 외야 한 자리를 꿰찼던 이병규(주니치)는 올해 단 28경기에만 출전, 타율 0.218 3홈런 8타점에 그쳤다. 2군에서 시즌을 맞는 수모를 겪는 등 올 시즌에만 3차례나 2군으로 강등됐다가 어렵사리 1군으로 올라왔다. 올 시즌 처음 일본 무대를 밟은 이혜천은 야쿠르트 불펜의 한 축을 맡으며 1승1패 12홀드 평균자책점 3.75를 기록 중이다. 이혜천은 임창용과 함께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매 경기 불펜 대기 중이다. 일본 프로야구 2009 정규시즌은 ‘요미우리 천하’였다. 4월11일 1위에 오른 뒤 한 차례도 1위를 내주지 않은 요미우리는 정규시즌 종료를 20여 일 앞둔 9월23일 주니치를 꺾고 일찌감치 센트럴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3년 연속 센트럴리그 정규시즌 우승. 올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우승을 차지한 하라 감독으로서는 겹경사를 맞았다. 퍼시픽리그에서는 다르빗슈가 마운드에서 버티고 있는 니혼햄이 1위를 거의 확정지었다. 미국 프로야구에선 10월6일(한국시간) 현재 모두 7개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을 예약했다. 2004년 이후 첫 100승에 성공한 뉴욕 양키스는 올해 메이저리그 전체 최다승률(0.636. 103승59패)을 올리며 3년 만에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박찬호의 필라델피아도 93승69패로 3년 연속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확정지은 뒤 월드시리즈 2연패를 노리고 있다. 양키스의 거포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12년 연속 30홈런-100타점’을 기록한 두 번째 선수가 됐고, 시애틀의 일본인 타자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9년 연속 200안타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 |
2009시즌 프로야구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역대 최다관중 돌파다.
최다관중 동원 신기록 원동력은 여성팬올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 ‘회장님’ 송진우의 은퇴식 장면이다. 프로에서 210승 153패 103세이브를 기록한 최고령 투수 송진우는 9월23일 LG와의 대전 홈경기에서 자신의 21년 야구 인생을 기념하는 의미로 KBO 유영구 총재, 한화 김승연 구단주 등 21명의 야구 인생 동반자를 초청해 그들로부터 ‘레전트21 격려 사인볼’을 전달받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송진우는 고별사를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고, 그가 마운드에 입을 맞추는 순간 구장을 찾은 많은 팬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한화는 9월12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4회까지 0대 9로 뒤지던 경기를 11대 9로 뒤집는 역전쇼를 펼치며 대전구장을 찾은 팬들을 환호케 했다. 한화는 역대 9점차 경기를 뒤집은 두 번째 팀이 됐다.
5월21일 5시간58분이 걸린 ‘무박2일 혈투’에는 많은 에피소드가 서려 있다. 혈투의 주인공인 KIA와 LG 모두 한 차례씩 ‘무박2일’이라는 ‘전과’가 있던 팀이었으며, 선수자원이 부족하던 LG가 11회에 투수 최원호를 3루 대주자로 기용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5월22일 새벽에 경기를 마친 LG 선수단이 다음 날 잠실 한화전을 치르기 위해 서울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30분. 무려 6시간에 걸친 혈전이었음에도 1000여 명의 열혈 야구팬이 끝까지 남아 응원하는 장면은 더없이 인상적이었다. 역대 최다관중 돌파는 2009시즌 프로야구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올 한 해 야구장을 찾은 팬은 모두 592만5285명. 1995년 기록한 540만6374명을 51만명이나 뛰어넘고 올 시즌 KBO의 관중동원 목표치인 550만명도 돌파한 수치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야구 우승과 올해 초 열린 WBC 준우승 등 연이은 대표팀의 선전이 야구 열기에 불을 지폈고, 역대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시즌 막판까지 치열했던 순위 다툼에다 KIA, 롯데 같은 전국구 팀들의 선전이 열기에 부채질을 했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여성팬의 급증이다. 각 구단의 여성팬이 예년보다 40%가량 늘었는데, 국제대회 선전으로 야구에 대한 여성팬의 관심이 높아진 데다 ‘퀸즈데이’(두산) 등 각 구단이 여성 마케팅을 펼친 결과라 할 수 있다.
스포테인먼트(스포츠 + 엔터테인먼트)에 가장 적극적인 SK는 내외야에 ‘패밀리 존’을 만들고 편안한 좌석에서 삼겹살, 소시지, 바비큐 등을 즐길 수 있는 ‘바비큐 존’도 조성해 시민들에게 제공했다. 롯데의 홈구장인 사직구장은 어느 지방 사람에게나 부산에 가면 한 번쯤 들러보고 싶은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2009년 한국 프로야구, 뜨는 별과 지는 별
이용찬·홍상삼·안치홍↑ 송진우·정민철·이종열↓
| 송진우, 정민철 매 시즌 프로야구 그라운드에는 ‘뜨는 별’과 ‘지는 별’이 있게 마련이다. 올 시즌 두산에는 이용찬, 홍상삼 등 두 명의 ‘아기곰’이 누구보다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프로 3년차인 이용찬은 26세이브를 올려 세이브 부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타이틀 홀더라 신인왕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다. 5월부터 두산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맡은 홍상삼은 6월까지 7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지만 중반기 이후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9승(6패)을 얻는 데 그쳤다. 올스타전 MVP를 차지하며 중반기까지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오르던 안치홍(KIA)은 후반기에 잔부상에 시달리며 타율이 0.235까지 떨어졌다. 14홈런에 38타점 53득점이 그의 올 시즌 기록. 신인왕 부문은 이들 3파전으로 압축되지만 예년보다 전반적으로 하향 평준화됐다는 평가다. 반면 올 시즌을 끝으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는 선수들이 있다. ‘회장님’ 송진우와 정민철(이상 한화), 이종열(LG) 등이 선수로서 올 시즌 팬들과 작별을 고했다. 이들의 평균 현역선수 기간은 무려 19년. 이 가운데 송진우(21번)와 정민철(23번)의 등번호는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1989년 4월12일 롯데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송진우는 21년간 뛰어난 자기 관리로 한국프로야구 최다이닝(3003이닝) 투구, 최다승(210승), 최다탈삼진(2048개) 등의 기록을 남겼다. 모두 1만2708명의 타자를 상대로 무려 4만9024개의 공을 던졌다. 수상 경력도 만만치 않다. 1990년 시즌 최다 세이브와 함께 최우수 구원투수상(11승7패27세이브) 타이틀을 따낸 송진우는 1992년에는 최다승투수상(19승), 구원투수상(8구원승 17세이브)에 올랐으며, 2002년에는 투수 최고의 영예인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거머쥐었다. 올 시즌 플레잉코치로 뛴 정민철은 통산 161승을 올렸으며 1993년에는 승률, 1994년에는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따냈다. 1994년과 1997년에는 탈삼진 부문에서 타이틀 홀더가 됐다. 송진우에 이어 최다 이닝(2394와 2/3이닝) 투구, 최다 선발등판(370회) 부문 2위를 기록했는데, 통산 기록으로만 따지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2인자라는 평가다. 2000년부터 2년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1991년 입단 이후 19년 동안 줄곧 LG 유니폼만 입은 이종열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성실한 플레이로 LG 주축 내야수로 활약했다. 프로 통산 타율 0.247 1175안타 448타점을 기록했으며, 2군 육성군 코치로 내정됐다. 롯데 정수근은 불명예스러운 일로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지난해 음주폭행 사건으로 1년여 동안 쉬었던 정수근은 1군 복귀 후 한 달이 채 안 된 8월31일 또 음주 구설에 오르며 롯데에서 방출됐고 KBO로부터 ‘무기한 실격’ 징계를 받았다. 정수근은 결국 프로야구 선수협을 통해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