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임혜경
3월 호기롭게 서민생활 안정화정책을 발표했던 정부가 석 달도 안 돼 꼬리를 내렸다. 52개 생활필수품을 선정하고 ‘집중점검’ ‘대응’ 등 강한 어조를 구사했던 정부가 “관리라는 말은 안 했다”고 발뺌하는 모습은 최근 예상외로 급등하는 물가에 정부가 매우 곤혹스러워하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예상외 급등하는 물가에 정부 곤혹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서민’을 남다르게 챙겼다. 대선 때는 ‘서민생활비를 30% 절감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성장 중시 경제정책을 추진해나가면서도 서민 챙기기는 잊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52개 생활필수품이 선정된 며칠 뒤 “선진국은 물가는 비싸지만 생필품 값은 싸다”면서 “물가가 오르더라도 최소한의 물자는 값이 싸서 서민의 기본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3.6%, 생활물가는 4.6% 올랐다. 정부는 “소비자물가나 생활물가는 실제 서민이 느끼는 물가 수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서 소득 2분위 이하(전체 가구의 하위 40%) 계층이 자주 구입하고 지출 비중이 높은 품목에서 쌀 양파 휘발유 고등어 쓰레기봉투 등 52개를 추렸다(38쪽 표 참조). 그리고 기획재정부는 “열흘 주기로 가격동향을 집중 모니터링하고, 물가상승을 유발하는 유형에 따라 수급 및 가격 안정을 위한 대응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5월1일,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년8개월 만에 처음으로 4%대로 진입한 것으로 발표되자 정부는 다급해졌다. 당초 6일로 예정된 최중경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의 서민생활안정태스크포스팀(이하 서민TF팀) 회의가 이튿날인 2일로 앞당겨졌고, A4 용지 9장 분량의 대책안이 발표됐다.
그러나 관리든, 관리가 아닌 대응이든 정부가 하는 서민생활 안정화정책은 그다지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국제유가가 계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원-달러 환율까지 가파르게 오르는 이때 어떤 정책이 물가를 끌어내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러한 정책이 서민을 위한 정부의 노력으로 포장돼 전달된다는 점이다. 빈 깡통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셈이다.
대표적인 예로 석유제품 관련 정책을 꼽을 수 있다. 국제유가가 고공행진하는 현실에서 석유제품의 원가를 낮출 도리는 없다. 이에 정부는 유통구조 개선으로 중간 마진을 줄이고 경쟁 촉진으로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전략을 택했다. 기획재정부는 석유제품에 붙는 할당관세를 3%에서 1%로 인하하고 대형마트 등 신규사업자가 자기 상표를 내건 주유소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즉 관세인하로 석유제품 수입을 촉진하고,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에 주유소를 만들어 4대 정유사에 의한 과점체제를 해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은 생색내기용에 불과하다. 먼저 2006년 이후 지금까지 수입된 휘발유가 전혀 없다. 국제 휘발유값이 국내 휘발유값보다 비싸기 때문에 아무도 휘발유를 수입해다 팔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사오는 휘발유가 더 비싼 이때, 할당관세가 낮아졌다고 석유제품이 국내로 들어올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7월에도 정부는 석유제품에 붙는 할당관세를 5%에서 3%로 낮춘 바 있다. 물론 그 이후에도 휘발유는 전혀 수입되지 않았다.
‘이마트 주유소’ 예전에도 가능했던 일
또한 일명 ‘이마트 주유소’를 위해 정부가 규제를 철폐하거나 새로운 허가를 내줄 것은 하나도 없다. 이번 정부 방침 발표 이전에도 이마트든 개인사업자든, 누구나 원하면 자기 상표를 내걸고 주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