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에 펼쳐진 여름 이야기
태양이 뜨겁다. 일손을 놓고 가만히 있어도 온몸에서 땀이 배어나온다. 딱히 돌보지 않아도 이즈음 논밭의 곡식은 저절로 도담도담 익어간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하나둘 마을 어귀 큰 나무 그늘 아래로 모여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아무렇…
201008162010년 08월 16일여름 내내 무궁화꽃 피었습니다
나라꽃 아니어도 사랑할 수밖에 없을 만큼 아름다운 무궁화꽃이 피었다. 한 송이 무궁화꽃이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나면 이튿날 아침에는 그 곁에 또 새로운 꽃이 핀다. 이렇게 여름 내내 한 그루에서 무려 3000여 송이의 무궁화…
201008022010년 08월 02일선비의 고고한 향기, 하늘에 닿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시를 지으며 삶을 노래하던 선비가 있었다. 500년 전인 조선 중기,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의 김광수였다. 그는 유난히 깊은 향에 사람의 소망을 담아 하늘 끝까지 피워 올리는 향나무를 심었다. 나무는 언제나 …
201007262010년 07월 26일두물머리 수호신…강물도 쉬어 간다
나무 한 그루가 강가에 우뚝 서 있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물이 만나는 곳, 두물머리다. 나무를 배경 삼아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영화를 찍고, 드라마도 만든다. 나무 안에 국난(國難)을 미리 알려주는 거대한 구렁이가 산다는 이야기도…
201007192010년 07월 19일구름처럼 피어나 바람처럼 향을 뿜다
하얀 꽃,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났다. 자잘한 꽃송이 가운데 꽃술은 좁쌀이 알알이 박힌 조밥처럼 향긋하다. 조팝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노란 꽃술 때문이다. 꽃 이름에서 우리의 궁핍했던 삶을 엿볼 수 있다.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201006142010년 06월 14일하늘에 걸린 쌀밥 이팝나무
봄이 늦게 찾아온 탓일까. 쌀밥처럼 하얀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가 올해는 오래도록 환했다. 오래전 한 농촌마을, 흉년 들면 하릴없이 굶어 죽는 아이들이 생겼다. 아이의 시체를 지게에 짊어지고 아비는 뒷동산을 올랐다. 아이를 고이 묻은…
201006072010년 06월 07일‘황목근’ 어른이 부르는 생명의 노래
100년 전부터 마을 아낙들은 밥 지을 때마다 쌀 한 공기를 덜어내 따로 모았다. 어려울 때를 생각해서 그렇게 공동재산을 마련했다. 1939년 일본인들의 약탈이 극심해지자, 공동재산을 땅 1만2200㎡와 바꿔 나무에 물려줬다. 수백…
201005312010년 05월 31일꼬박꼬박 토지세 내며 살아요
홀로 만들어내는 그늘이 무려 1000㎡인 나무가 있다. 키는 11m밖에 안 되지만 동서로 뻗어나간 가지가 30m나 된다. 나무의 이름은 석송령(石松靈). 6600㎡의 땅을 소유하며 해마다 꼬박꼬박 토지세를 내는 신통한 나무다. 재산…
201005242010년 05월 24일비나이다 비나이다, 넉넉한 세상을
100년 넘게 이런 봄이 없었다고 한다. 꽃도 잎도 모두 고뿔에 들었다. 냉해로 농가의 한숨도 깊다. 풍년을 돌봐주는 나무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해마다 한가위 때면 지나온 날에 감사하고 이듬해 다시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던 느티나무다…
201005102010년 05월 10일하얀 목련은 내년에도 피겠지…
이른 겨울부터 꽃봉오리를 맺고, 봄바람 불어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목련이 하얀 꽃을 피웠다. 잎이 나기 전부터 피는 꽃이 목련만은 아니지만, 꽃송이가 화려한 까닭에 목련은 늘 슬픔을 머금는다. 한국 최초의 사설 수목원인 충남 태안의…
201005032010년 05월 03일잔인한 봄, 슬픔아 가거라!
불온의 기미가 끊임없이 귓전을 지싯거리는 봄, 수선화 한 송이가 왜장치며 봄을 노래한다. 꽃잎 한가운데 나팔 모양의 부관(副冠)을 한껏 부풀린 수선화의 봄노래가 안쓰러운 사월이다.목동 나르키소스를 사랑한 요정이 있었다. 그러나 목동…
201005042010년 04월 26일나그네 그 소망 내가 꼭 전해줌세
고갯마루에 소나무 한 그루가 땅을 뚫고 솟아올라 푸른 하늘을 이고 서 있다. 줄기 껍질에는 세월이 켜켜이 덮였다. 껍질 조각들 사이에는 천년의 이끼가 살며시 내려앉았다.영남 지방에서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젊은이들이 반드시 지나쳤…
201004202010년 04월 14일“뭐가 그리 바쁜가?” 800살의 가르침
개나리, 진달래 꽃바람이 들녘의 큰 나무줄기에 살금살금 내려앉았다. 나무는 꿈쩍하지 않는다. 처음에 나무는 이 길을 지나던 노(老)스님의 지팡이였다. 우물가에서 마을 처녀에게 물 한 바가지 얻어 마시면서 고마움의 뜻으로 꽂아두었던 …
201004132010년 04월 08일피바람 지나간 자리 황금빛 봄노래
그때는 선홍빛 피바람이 일었지만, 지금은 황금빛 봄노래가 피어나는 곳. 지리산 피아골 초입의 연곡사다. 신라 때 연기조사가 세운 연곡사는 이 땅을 할퀴고 간 피바람을 한순간도 피하지 못했다. 임진왜란이 시작이었다. 승병을 일으킨 연…
201004062010년 03월 31일순백의 꽃송이 욕심 없이 살라 하네
전남 순천의 조계산 선암사 무우전 돌담 곁으로 향긋한 봄이 올라온다. 예부터 번거로운 것보다는 희귀한 것, 젊은 것보다는 늙은 것을 아름답게 여긴 매화이기에 오래된 산사의 한적한 뒤란에서 고요하게 꽃대궐 이룬 매화가 더 좋다. 선암…
201003302010년 03월 24일그곳엔 언제나 소망이 우뚝 서 있다
한 그루 소나무가 하늘 향해 노래한다. 대지의 기운을 끌어올릴 듯 우렁차게 노래하건만 우리는 몸으로만 들을 수 있다. 동백꽃 마중하려 찾은 선운사, 봄기운 완연해도 동백은 아직 이르다. 산사 뒤편 도솔암 오르는 오솔길, 호젓이 걷노…
201003232010년 03월 17일어느새 차려입은 하얀 봄 드레스
눈송이처럼 하얀 꽃이 봄 길잡이에 나섰다. 숲 속 한가로운 길섶, 기우듬하게 솟아오른 연초록 줄기 위에 한 송이 예쁜 꽃이 피어났다. 순백의 하얀색이 도드라지는 꽃, 설강화(雪降花)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익숙지 않은 봄꽃이지만, …
201003162010년 03월 10일기특하고 아름답다, 생명의 전주곡
얼음땅 밑에서 뿌리만으로 겨울의 혹한을 버텨낸 작은 생명들이 가만가만 기지개를 켠다. 겨울 숲, 원추리 새싹이 언 땅을 뚫고 나와 봄을 불러온다. 작지만 여돌찬 함성이다.봄 되면 자연스레 돋아나는 것이지만, 이즈음 나는 새싹이 경이…
201003092010년 03월 04일사람의 향기, 편백나무에 실려왔다
산그늘 깊은 곳, 찬바람 사이로 스며드는 봄볕이 따사롭다. 나무 심은 한 사람의 뜻을 따라 숲길을 걸어 오른다. 편백나무 이파리의 푸름을 따라 걸음걸이가 가벼워진다. 편백 향 맵싸하게 코끝에 머무를 즈음, 아침 안개 걷히고 바람 더…
201003022010년 0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