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氏 귀신이 될지언정 李家의 신하는 못 한다”
경남 창녕에 가면 물계서원이 있다. 서원은 조선시대에 학문을 연구하는 사설 교육기관이자 명현(明賢)을 기리는 곳으로, 대체로 지역공동체의 유림이 주체가 돼 건립했다. 그런데 물계서원은 다르다. 한 가문이 주체가 돼 만들어졌다. 17…
200603212006년 03월 20일부귀권세 버리고 험난한 의리의 길
요즘이야 소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보기 어렵지만, 예전에는 말처럼 소도 타고 다녔던가 보다. 조선 초기 청백리로 알려진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은 소를 타고 다니기를 좋아해 그가 재상인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맹…
200603142006년 03월 13일세 아들 ·큰손자 잃고 멸문당할 뻔
파란만장(波瀾萬丈)이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일까? 양호당(養浩堂) 우현보(禹玄寶, 1333~1400)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살아서 얼마나 환호하고, 얼마나 절망하고, 얼마나 비통하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200603072006년 03월 06일태조가 내린 벼슬 다섯 차례 거절
송은(松隱) 박익(朴翊, 1332~1398)을 기리는 사당으로 경남 청도의 용강서원, 밀양 덕남사, 산청 신계서원, 거제도 송령사가 있다. 후손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에 그의 사당이 있는데, 독특한 것은 그 사당에 모두 초상화가 …
200602212006년 02월 20일고려 향한 일편단심 눈물과 그리움 한평생
광주 무등산 자락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동네로 성산계곡을 꼽을 수 있다. 조선시대 정원의 한 전형을 이루는 양산보(梁山甫)의 소쇄원과 임억령(林億齡)의 식영정이 있고 창평, 고읍에 이르면 오이정(吳以井)의 명옥헌, 정철(鄭澈)의 송강…
200602142006년 02월 13일죽음으로 지켜낸 ‘가문의 절개’
두문동 72현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는 죽음에 이르러 “내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은 무덤에 비석을 세우지 않고, 비석을 눕혀두었다. 김자수 묘는 경기도 분당 서현역에서 광주시 오포읍으…
200601312006년 01월 26일600년 한결같은 후대의 칭송
“조상은 후손을 낳고, 후손은 조상을 만든다.” 고려 말 불사이군 충신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면서 실감하는 말이다. 경북 영주시에 갔을 때다. 영주시 한복판 구성공원이 된 구성산 자락에, 조선 제일의 개국공신 정도전의 집터가 있다. …
200601242006년 01월 23일팔공산 전통마을 지킨 충신의 혼
부림 홍씨 집안에 전하는 귀한 보물이 한 점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친필이다. 1926년 문중이 입수해 세상에 알린 백원첩(白猿帖)이라는 필적(筆跡)이다. 왕건이 916년 궁예의 태봉국을 공격할 무렵에 유덕양(劉悳梁)에게 써준 이…
200601172006년 01월 16일고향에 묻혀 인재 양성 한평생
고려 말을 대표하는 충신으로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를 꼽는다. 여말 3은인 이들은 두문동 72현에 들지만 광덕산 두문동에 들어가지 않았다. 두문동 72현이 고려 말의 충신 …
200601032006년 01월 02일33살에 순절 택한 ‘두문동 三節’
임선미(林先味)는 누구일까? 두문동 72현을 찾아나서기 시작하면서부터 궁금했던 인물이다. 두문동 72현의 주동자로 임선미가 첫손에 꼽히기 때문이다. 마침 임선미의 후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임선미를 기리는 사당이 전북 순창에 있…
200512272005년 12월 21일‘광주의 혼’ 된 원나라의 명문가
광주광역시는 오래된 도시가 아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광주읍으로 승격되면서 승승장구한 신흥 도시다. 전라도라는 말을 낳게 한 전주나 나주에 가면 오래된 동헌이나 문루가 보이지만 광주에는 눈에 띄는 게 없었다. 그저 무등산 아래…
200512202005년 12월 14일정선아리랑에 담은 7賢의 충절
한치 뒷산의 곤드레 딱주기 임의 맛만 같다면 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구성진 정선아리랑의 한 가락이다. 정선아리랑의 유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두문동 72현과 만나게 된다…
200512132005년 12월 07일고려 신하 고집하다 ‘멸문의 禍’
고려가 망하면서 가장 피해를 본 집안은 개성 왕씨들이지만, 이 못지않게 멸문에 이른 집안이 연안(延安) 차씨(車氏)이다. “산악과 같은 그 분함은 천 년이 지나간들 가시겠는가? 하해와 같은 그 원한은 만 년이 된들 끝나겠는가?”…
200512062005년 11월 30일세상 부귀 등지고 불사이군 절개 지켜
흥망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하노라. 고려 말에 살았던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의 시조 회고가(懷古歌)다. 그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200511292005년 11월 28일忠 위해 목숨 건 고려 말 삼형제
공교롭게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대변인, 전병헌 씨와 전여옥 씨가 담양 전씨로 같은 문중 사람이다. 조선시대에는 문중이 곧 당파로 연결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세상이니 별스럽게 여길 필요는 없겠다. 담양 전씨는 조선시대에 이렇…
200511222005년 11월 21일고려 향한 父子의 충절
두문동 72현을 기리는 합동 제사가 최초로 치러진 것은 1751년(영조 27) 10월21일이다. 영조의 명에 의해 개성유수 서종급(徐宗伋)이 제사를 지냈는데, 그때 읽은 제문에는 “여기 고려의 백성 중에 72인이 있어 조선의 신하도…
200511082005년 11월 07일산속에 묻혀 절의 지킨 한평생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줄게 내 품 안에 잠자주오/ 잠자기는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가오”라는 남녀가 주고받는 농탕한 상주 민요가 있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그 공갈못이 상주시 공검면에 손바닥만큼 …
200510252005년 10월 24일고려의 처음과 끝을 지킨 문중
좌안동 우함양’이라는 말이 있다. 큰 인물을 배출한 땅에 대한 자부심이 담긴 말이다. 경북 안동은 퇴계와 그 후학들로 대표되는 성리학자가 많다. 그렇다면 경남 함양에는 누가 있는가? 대표적 인물로 정여창이 있다. 유학의 보급에 크게…
200510112005년 10월 10일잊혀진 충신들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는 우리 안에 영웅을 만들어낸 경험이 별로 없다. 우리를 세상의 중심이라 자처한 적이 없고, 공맹(孔孟)으로 대표되는 중화사상에 사로잡혀 영웅이나 성현은 모두 중국에서 나는 줄로만 알았다. 지금도 미국 중심의 사고방식이 강해 미…
200509202005년 09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