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옥(46·사진) 조선옥요리연구원장은 일본 도쿄 신주쿠의 신오쿠보(新大久保·도쿄 한인타운)에서 한식 요리사를 양성하며 한국 문화를 알리는 대표적인 한국요리연구가다. 일본 방송에도 단골로 출연하고, 한국요리 이벤트나 한일 교류 행사에도 빠짐없이 초청받는 유명 인사다. 지금까지 그가 배출한 일본인 한국요리사만 1000명이 넘는다. 제자들과 함께 최근에는 떡볶이 등을 주제로 한 요리책을 출간했고, (사)일한농수산식문화협회 초대회장을 맡는 등 그의 한식 전파는 거침없다. 최근에는 함양산삼축제에 초대받아 일본 스타일의 산삼요리를 선보였으며, 9월 중순에는 일본에서 열리는 한 도자기 축제에서 한국요리를 소개할 예정이다. ‘올스톱’된 한일관계를 감안하면, 그는 양국을 오가며 민간 문화 교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는 셈이다.
손맛 좋기로 유명한 전북 김제 출신인 조 원장이 처음부터 음식과 인연을 맺었던 건 아니다. 일본 유학 중 만난 일본인과 결혼해 1998년 피부미용실을 차렸다. 피부관리법을 공부하다 보니 ‘도자기 피부’ 역시 섭생과 맞닿아 있다는 걸 깨달았고, 약선(藥膳)요리를 하나하나 만들면서 그의 요리 인생이 시작됐다.
“신기한 게 돌아가신 아버지가 제가 요리를 시작할 무렵 꿈에 자주 나왔어요. 언덕 위에 있는 큰 기와집에서 제게 나락을 쥐여주더라고요. 그런 꿈을 몇 번 꿨는데, 그때는 그 꿈이 무슨 의미인 줄 몰랐어요. 나중에 제가 기와로 된 음식점을 차리더라고요(웃음).”
한식소믈리에 과정 신설
약선요리에 심취한 그는 2003년 도쿄 롯폰기에서 기와를 얹은 한국 약선요리 레스토랑을 차렸다. 일본인 명사와 한국 저명인사가 약선요리를 먹으려고 줄을 섰지만, 그는 2009년 갑자기 ‘불나던’ 식당을 그만두고 ‘조선옥요리연구원’을 개원했다.
“레스토랑을 하면서도 주변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요리를 가르치곤 했는데, 그런 저를 보고 남편이 ‘레스토랑 말고 한식을 가르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어요. 어릴 적부터 가르치는 일을 좋아했거든요. 1년여 고민하다 요리를 가르치는 강사가 아닌 한국의 정(情)과 문화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처음에는 떡카페를 운영하면서 약선요리, 궁중요리, 가정요리, 전통 떡요리 교실을 열었다. 알음알음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일본인이 늘면서 커리큘럼을 넓혀 본격 한국요리가를 목표로 하는 양성교육 과정을 만들었다.
일본 도쿄 오쿠보 광장에서 열린 ‘한국전통식품홍보전’에서 한식을 소개하는 조선옥 원장(왼쪽). 일본 요리사들에게 떡 만들기를 가르치는 모습.
조 원장이 중심인 한식소믈리에 자격 1, 2급 과정은 현재 요리연구가들이 참여해 직접 한식을 만들어본다. 4급은 조리과정을 배우지 않고 한국 문화와 역사를 배우면서 한국음식을 먹는 과정인데, 일종의 입문과정인 셈.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프로양성 과정은 한국음식요리가가 되려는 사람이 참여한다는 게 조 원장의 설명이다. 일본 현지 출판사를 통해 한식소믈리에 교재도 출간했다.
한식소믈리에 과정이 자리 잡고 연구원 제자도 늘어나자, 조 원장은 제자들과 또 한 번 일을 벌였다. 일본에 있는 한국요리연구가들이 한식 본고장인 한국에 가서 역으로 바람을 일으키자는 뜻에서 ‘한(韓)바람’이라는 단체를 만든 것. 그의 바람대로 8월 초 그는 제자들과 함께 ‘제11회 함양산삼축제’에 초대받아 한국 산삼을 일본식 요리로 만들어 전시했고, 산삼홍보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함양산삼축제에서 선보인 함양산삼떡(위)과 함양산삼요리꼬치.
책에 나오는 첫 떡볶이 요리는 ‘명란젓 떡볶이 미역국’. 한국에서 산모가 먹고 생일날 누구나 먹는 미역국을 통해 엄마의 사랑을 일깨우고 한국 문화도 알리려는 뜻에서다. 책에는 일본 제자 12명이 각각 4~5종류의 떡볶이 요리법도 담았다.
“저는 제자에게 제 방식을 강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해주는 다양한 음식을 먹어 미각이 발달했다고 봐요. 음식 조미료는 무, 양파, 생강 등을 100일 정도 담가 진액을 뽑아낸 천연조미료를 사용하고, 우리는 그 깊은 맛을 잘 알죠. 그런데 일본 제자들은 ‘100일은 너무 길다’고 해요. 그러니 제 방식을 강요할 수만은 없죠. 화학조미료를 쓰더라도 밖에서 사 먹지 말고 집에서 직접 음식을 해 먹으라고 해요(웃음).”
나고야 도자기 축제 초대받아
한국음식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그이지만, 현재 일본 내 우경화 분위기 속에서 한식을 전파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경색된 한일관계 때문에 한식을 배우러 오는 일본인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연구원이 자리한 신오쿠보는 한때 ‘한류 메카’로 불렸지만, 최근 일본 아베 정부의 우경화와 대표적인 혐한단체 ‘재일(在日)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이 연일 집회를 여는 탓에 일본인의 발길이 뚝 끊겼다.
“제자들이 ‘한국음식을 배우고 싶어도 요즘에는 연구원에 3번 올 걸 1번 온다’고 해요. 주변 눈치가 보인다고요. 지금처럼 한일 양국이 외교적으로 불편하면 제자들이 한식을 배우러 오기 힘들어요. 저는 항상 ‘정치는 윗분에게 맡기고 한식을 사랑하는 마음만 생각하자’고 말하죠. 일본은 저에게 제2의 고향이니까요.”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그의 마음이 통했는지, 조 원장은 9월 19~23일 일본 나고야 타지미에서 열리는 도자기 축제에 초대받았다. 축제 기간 한국 문화와 음식을 관람객들에게 선보여달라는 요청이었다. 한국 팀이 이 축제에 참여하는 경우는 처음이라는 게 조 원장의 전언이다.
“나고야시장이 그러더라고요. ‘지금처럼 두 나라 사이가 어수선할 때 오히려 민간 차원에서 문화 교류를 더 활발히 해야 한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힘이 나요. 한식이 정치·사회 갈등을 풀 수 있으니까요. 말랑말랑한 떡볶이처럼 한일 양국도 말랑말랑한 좋은 이웃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부터 노력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