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주자는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주인공 전지현이다. 전지현의 첫 전성기는 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 개봉 당시다. 그때 나이가 스물한 살이었으니 앞길이 창창했다. 하지만 이후 그의 행보는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하는 CF퀸에 그쳤다. 꾸준히 활동했으나 기억에 남는 작품이 별로 없다. 그러다 2012년 10여 년 만에 영화 ‘도둑들’로 제2 전성기를 구가한다. 지금 그는 과거 인기를 능가하는 신드롬급 열풍 속에 출연하는 작품마다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전지현이 ‘도둑들’ 개봉 3개월 전 결혼했다는 점이다. 어느새 유부녀 3년 차가 된 그는 드라마에서 20대 톱 여배우를 연기하고 있고, 일곱 살 연하 배우 김수현과 커플이다. 결혼은 전지현에게 아무 제약이 되지 않았다. 결혼 이후 가전제품 CF를 줄줄이 꿰찬 걸 보면 도리어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됐다.
‘결혼이 새로운 기회’가 된 것은 전지현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축구선수 기성용과 결혼한 배우 한혜진도 그렇다. SBS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와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로 안방과 스크린을 동시 공략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운동선수 아내 대부분이 남편 내조에만 힘쓰는 것과 달리 한혜진은 배우로서의 자기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전지현·한혜진·이보영 대박 행진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열 살 연하 이종석과 멜로연기를 펼친 배우 이보영(위)과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 30대 싱글의 일상을 실감나게 연기하고 있는 배우 유진.
걸그룹 1세대 격인 S.E.S 출신 유진도 대표적인 ‘품절녀’ 스타다. 2011년 배우 기태영과 결혼한 유진은 현재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 이혼녀 역을 맡아 30대 싱글의 일상을 실감나게 그린다는 호평을 받는다. 그는 케이블채널 온스타일의 뷰티정보 프로그램 ‘겟잇뷰티’ MC도 4년 동안 맡고 있다. 결혼 후에도 배우로서는 물론 트렌드세터나 뷰티아이콘으로도 손색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다.
30대 ‘품절녀’의 활약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2월 이들의 안방 ‘컴백’이 줄을 잇는다. 앞서 언급한 이보영 외에 배우 김희선이 SBS 드라마 ‘신의’ 이후 2년 만에 KBS ‘참 좋은 시절’로 돌아온다. 한지혜는 KBS ‘태양은 가득히’를 통해 브라운관을 찾는다. 배우 이병헌과 결혼한 이민정은 MBC ‘앙큼한 돌싱녀’를 결혼 후 ‘컴백’작으로 확정 짓고 첫 촬영에 들어갔다. 김희애도 JTBC ‘밀회’(가제)로 2년 만에 다시 드라마에 출연한다. 특히 김희애는 열아홉 살 어린 배우 유아인과 멜로 열연을 펼칠 예정이라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30대 여배우가 이처럼 맹위를 떨치는 배경으로는 먼저 시청자 연령층 변화를 꼽을 수 있다. 드라마를 ‘본방사수’하는 주 시청자층은 30대 여성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이들의 삶을 다루는 드라마가 늘어났고, 30대 여배우가 주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
또 요즘 30대 여배우는 20대 못지않은 미모를 자랑한다. 20대 캐릭터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다. 철저한 자기 관리 덕분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30대 ‘품절녀’가 여성 사이에서 ‘워너비(wannabe)’ 스타가 되기도 한다. 이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일찍부터 미란다 커나 빅토리아 베컴 등 유부녀 스타의 자기관리 비법이 여성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일본에서도 추성훈 아내이자 추사랑 엄마인 야노 시호가 결혼과 출산 후에도 변함없는 미모를 유지하며 여성의 귀감이 되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일본에는 마마+탤런트 합성어인 ‘마마태레(Mamatare)’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결혼과 출산 후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자 스타가 많다. 자녀를 둔 탤런트가 브랜드 론칭, 사진집이나 요리책 출간, TV 활동 등 다방면에서 큰 활약을 보여주는 것이 최근 붐”이라고 귀띔했다. 이런 세계적 추세가 우리나라 엔터테인먼트 업계로까지 이어져 오늘날 30대 여배우는 스스로를 제약 속에 가두지 않게 됐고, 이들을 바라보는 대중 시선 역시 유연해졌다.
결혼 후 영화 ‘도둑들’과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등으로 제2 전성기를 구가하는 배우 전지현.
한때 결혼한 여배우는 은퇴를 택하거나 주부 캐릭터만 주어지는 현실에 순응해야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도 확실히 변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요즘 여배우에게 결혼은 새로운 기회다. 결혼은 여배우에게 편안하고 안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고 업그레이드된 느낌까지 준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좋은 결혼’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는 여배우가 재벌 2세와 결혼해 은퇴하는 것을 부러워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결혼 이후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응원해주는 남편과 시부모를 만나는 것을 ‘결혼의 좋은 예’로 여기는 추세다.
무엇보다 여배우 스스로 ‘유부녀’라는 틀 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보영이 데뷔 후 가장 주목받았던 지난해 주저 없이 결혼을 선택했다는 점은 결혼을 제약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다. 또 전지현은 ‘별에서 온 그대’ 촬영을 앞두고 결혼 이후 변화를 묻는 질문에 “결혼으로 인한 변화는 확실히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숙해지기도 했고, 스스로 ‘난 어른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결혼은 연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자신감을 줬고 일에 ‘올인’할 수 있게 해줬다”고 답했다. 결혼은 여성에게 더는 무덤이 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