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던 ‘한국호’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면서 고도성장의 막이 내렸고, 문화적 측면에서는 일부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한류(韓流)’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과거 선진국이 앞서나간 분야를 특유의 근면성으로 돌파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우리 것, 우리 상표, 우리 문화를 입히는 ‘킬러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모방은 기교로 해낼 수 있지만, 창의란 오랜 기간 축적된 지식과 문화가 숙성·발효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천 년에 걸쳐 고유의 문화를 쌓아온 지구상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한데 창발성 측면에서는 중국, 이탈리아, 프랑스, 심지어 고작 200년 역사의 미국마저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 축적한 성과들이 단절돼 있기 때문이다. 기록을 중시해온 특별한 문화를 지녔지만 계승에는 실패한 까닭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은 ‘조선왕조실록’, 고려조의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수많은 학자, 문인, 은둔거사가 문집이라는 형태로 남긴 글 등 엄청난 문화유산을 후대에 물려줬다. 그 안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사유가 담겨 있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에서 퇴계와 고봉, 율곡의 논쟁과 대화, 실학파의 이용후생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의 사유는 탁상공론이 아닌, 이치와 존재를 탐구하는 철학과 문화의 보고였다.
과학기술은 가설을 세우고 증명된 자료를 바탕으로 원리를 만든다. 하지만 과거 학자들은 단지 머릿속의 실험실을 운영했을 뿐, 자신의 생각과 사유를 증명할 수단이 없었다. 이 거대한 ‘머릿속 실험실’은 각기 당대를 뛰어넘는 사유를 통해 후학들에게 전해졌고, 그것은 고스란히 기록으로 우리에게 전승됐다. 안타까운 점은 이 문화와 철학의 보고가 우리말이 아닌 한자로 쓰였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것을 계승·발전하고 우리 문화를 농축하기 위해서는 선현들의 저작을 되도록 빨리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 하지만 이 작업을 소홀히 해왔다. 현대 과학기술문명의 습득에만 주력하느라 창발성의 바탕이 되는 사유의 거대한 숲을 방치한 것이다. 앞으로 우리만의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선현들의 사상과 철학을 체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지금도 각 문중에는 선조들의 문집이 쌓여 있고 그중의 절반, 아니 10분의 일도 우리말로 전승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바칼로레아를 치르며 놀라운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문자로 된 선학들의 지식을 쉽게 체득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북한의 연구는 꽤 앞서나갔다. 물론 이념적 목적이 개입된 부분이 적지 않다 해도 과거 북쪽의 완역 ‘리조실록’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후 고전번역원이 설립되고 고전에 대한 번역작업을 해나가고 있지만, 지금 와서 선인들의 지혜를 그대로 습득하기란 여전히 지난한 여정이다. 이 책, 연암의 ‘열하일기’(리상호 옮김, 보리 펴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연암은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단순한 기행문이 아닌 역사, 철학, 사회, 과학, 기술, 예술, 농업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안목으로 당시 선진문화를 접한 소회를 피력하면서 이렇게 일갈했다
“중국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장관, 무엇이 장관이라고 떠들지만 나로서는 똥거름 무더기가 장관이고, 깨진 기와 쪽과 버리는 조약돌을 이용하는 방법이 장관이더라.”
이 말은 26권의 ‘열하일기’ 가운데서 백미 중의 백미다. 사신을 따라 중국 황제의 고희 축하사절로 중국을 여행하면서 그는 자금성이나 만리장성을 부러워한 게 아니라 이용후생, 즉 민중이 잘 살고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있는 실용성을 부러워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이 책은 연암의 역작이자 우리 문화의 최고봉이다. 이런 책을 북한 학자들이 오래전에 먼저 완역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읽거나 들은 ‘열하일기’는 발췌와 해석을 바탕으로 한 편린일 뿐, 이렇게 완전한 번역을 바탕으로 전작을 읽는 기쁨은 가히 흥분과 전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왕복 만리의 여행 체험을 바탕으로 묶은 ‘열하일기’는 당대 지식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파브르의 ‘곤충기’나 다윈의 ‘진화론’에 앞서 우리 학생들이 통독해야 할 피요 살이다. 그 점에서 비록 북한 학자들의 번역이지만 이 책 안에서 연암은 살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독서 체험이 주는 자지러질 듯한 기쁨과 흥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 중의 책이다.
http://blog.naver.com/donodonsu
과거 선진국이 앞서나간 분야를 특유의 근면성으로 돌파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우리 것, 우리 상표, 우리 문화를 입히는 ‘킬러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모방은 기교로 해낼 수 있지만, 창의란 오랜 기간 축적된 지식과 문화가 숙성·발효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천 년에 걸쳐 고유의 문화를 쌓아온 지구상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한데 창발성 측면에서는 중국, 이탈리아, 프랑스, 심지어 고작 200년 역사의 미국마저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 축적한 성과들이 단절돼 있기 때문이다. 기록을 중시해온 특별한 문화를 지녔지만 계승에는 실패한 까닭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은 ‘조선왕조실록’, 고려조의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수많은 학자, 문인, 은둔거사가 문집이라는 형태로 남긴 글 등 엄청난 문화유산을 후대에 물려줬다. 그 안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사유가 담겨 있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에서 퇴계와 고봉, 율곡의 논쟁과 대화, 실학파의 이용후생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의 사유는 탁상공론이 아닌, 이치와 존재를 탐구하는 철학과 문화의 보고였다.
과학기술은 가설을 세우고 증명된 자료를 바탕으로 원리를 만든다. 하지만 과거 학자들은 단지 머릿속의 실험실을 운영했을 뿐, 자신의 생각과 사유를 증명할 수단이 없었다. 이 거대한 ‘머릿속 실험실’은 각기 당대를 뛰어넘는 사유를 통해 후학들에게 전해졌고, 그것은 고스란히 기록으로 우리에게 전승됐다. 안타까운 점은 이 문화와 철학의 보고가 우리말이 아닌 한자로 쓰였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것을 계승·발전하고 우리 문화를 농축하기 위해서는 선현들의 저작을 되도록 빨리 우리말로 옮겨야 한다. 하지만 이 작업을 소홀히 해왔다. 현대 과학기술문명의 습득에만 주력하느라 창발성의 바탕이 되는 사유의 거대한 숲을 방치한 것이다. 앞으로 우리만의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선현들의 사상과 철학을 체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지금도 각 문중에는 선조들의 문집이 쌓여 있고 그중의 절반, 아니 10분의 일도 우리말로 전승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바칼로레아를 치르며 놀라운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문자로 된 선학들의 지식을 쉽게 체득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북한의 연구는 꽤 앞서나갔다. 물론 이념적 목적이 개입된 부분이 적지 않다 해도 과거 북쪽의 완역 ‘리조실록’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후 고전번역원이 설립되고 고전에 대한 번역작업을 해나가고 있지만, 지금 와서 선인들의 지혜를 그대로 습득하기란 여전히 지난한 여정이다. 이 책, 연암의 ‘열하일기’(리상호 옮김, 보리 펴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연암은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단순한 기행문이 아닌 역사, 철학, 사회, 과학, 기술, 예술, 농업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안목으로 당시 선진문화를 접한 소회를 피력하면서 이렇게 일갈했다
“중국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장관, 무엇이 장관이라고 떠들지만 나로서는 똥거름 무더기가 장관이고, 깨진 기와 쪽과 버리는 조약돌을 이용하는 방법이 장관이더라.”
이 말은 26권의 ‘열하일기’ 가운데서 백미 중의 백미다. 사신을 따라 중국 황제의 고희 축하사절로 중국을 여행하면서 그는 자금성이나 만리장성을 부러워한 게 아니라 이용후생, 즉 민중이 잘 살고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있는 실용성을 부러워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이 책은 연암의 역작이자 우리 문화의 최고봉이다. 이런 책을 북한 학자들이 오래전에 먼저 완역한 것이다.
<B>박경철</B><BR>의사
이 책을 읽으면 독서 체험이 주는 자지러질 듯한 기쁨과 흥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 중의 책이다.
http://blog.naver.com/donodon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