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유시인 그랭그와르,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해설자로 \'대성당의 시대\' 등 서정성 깊은 노래들을 부른다.
3월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막이 오른 뒤 ‘노트르담 드 파리’가 관객들을 빨아들이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몇 초에 불과했다. 음유시인 그랭그와르가 매혹적인 목소리로 서곡 ‘대성당의 시대’를 부르는 순간, 객석은 이미 햇빛 찬란하던 15세기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옮겨간 듯했다.
20여년 동안 세상과 격리된 채 소외와 고독을 곱씹어 온 콰지모도의 상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정염에 몸서리치는 주교 프롤로의 고뇌, 세상 모두에게서 사랑을 받았으나 자신의 사랑만은 끝내 이루지 못한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의 좌절은 그렇게 생생히 객석까지 전해졌다.
관객들이 순식간에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압도적인 음악. 대사 없이 54곡의 노래로만 이어지는 이 뮤지컬에서 음악은 작품의 기본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다.
에스메랄다의 치명적 매력에 빠져든 세 남자, 콰지모도·페뷔스·프롤로가 한목소리로 부르는 ‘참 아름답다’는 프랑스에서 44주간 음악 차트 1위를 지켰던 명성 그대로 한국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
무대를 완전히 장악하는 16명 무용수들의 춤사위도 객석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작품은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달리 연기를 하는 배우와 춤을 추는 무용수가 철저히 구별돼 있는데, 무용수들은 발레·아크로배틱(곡예)·브레이크 댄스·현대무용이 혼합된 역동적 몸짓으로 시종일관 무대를 휘저으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늘에서 드리워지는 거대한 종 아래로 기어나오는 무용수
하지만 무엇보다도 ‘노트르담 드 파리’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극 전체를 관통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따뜻한 시선. 권력자를 조롱하고, 집시와 이교도, 사랑 앞에서 고뇌하는 나약한 인간을 넉넉히 감싸 안는 이 작품은 가벼운 유머나 통속적 이야기 전개 없이도 뮤지컬이 관객을 매혹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범이다. 뮤지컬 애호가라면 놓치기 아쉬운 공연이다. 3월20일까지, 문의 02-501-1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