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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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고 쫄깃… 바다의 황태자

  • 입력2005-05-31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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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백하고 쫄깃… 바다의 황태자
    ‘썩어도 도미’라는 말은 일본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왕소금을 발라 구워도 좋고 매운탕이나 죽, 생선회로도 도미를 능가할 물고기는 없다.

    오죽했으면 궁중에서 ‘도미면’을 승기악탕(勝妓樂湯)이라고 했을까. 승기악탕이란 춤과 노래보다 낫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신선한 도미살을 전유어로 부쳐서 삶은 고기와 채소를 올려 담고, 끓는 장국에 당면을 넣어 먹는 궁중전골을 말한다. 이 음식이 얼마나 호화로운지는 그 조리법이 열너댓번의 과정을 거침에서도 알 수 있다.

    모든 생선 맛이 다 그렇지만 물고기의 맛은 아미노산 양에 좌우된다. 물고기가 죽은 뒤 그 강직도가 다소 떨어졌을 때 아미노산 양이 가장 많은데 이는 암모니아가 발생하여 부패하기 전 단계다. 히로시마현의 능지포(能池浦) 부돔(부주·浮綢)이 유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산란을 목적으로 깊은 바다에서 올라와 연안에 접근하려다 급한 조류의 힘으로 배를 뒤집고 떠오른 돔을 말한다. 이는 부레 안의 가스 양을 조절할 틈이 없어 그렇게 된 것인데, 이때 잡은 돔이 가장 맛있다는 것이다. ‘썩어도 도미’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을 법도 하다.

    물발이 얼마나 싸게 휘돌면 가장 영리하기로 이름난 도미떼가 떠오를까. 한국의 해협에선 임진해전에서도 유명한 울돌목 작전과 마지막 작전이었던 노량해전의 그 물목이 물발 싸기로 이름나 있다. 남해대교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하노량과 남노량(南路梁), 즉 하동노량과 남해노량은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충무공의 ‘신물언아사’(愼勿言我死)라는 유언이 그 물발 속에서 기타소리를 내는 곳이다. 이 물목에는 아직도 원시어업인 죽방렴(竹防簾)이 27동이나 산재해 있다.

    지족해협의 싼 물발을 이용해 참나무 말목을 뻘에 박고 대발을 둘러쳐서 고기를 잡는다. 이 죽방에서 잡는 멸치는 주광(走光)을 이용해 잡는 멸치보다 값이 배나 비싸고, 돔떼 또한 맛좋기로 소문나 있다. 물발을 따라 회유하는 돔떼는 심해보다 뻘의 감탕맛이 흠씬 배어 있어 아미노산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남해대교를 건너 300m쯤 가다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그곳이 남해대교 밑에 있는 남노량이고, 주차장 안쪽에 ‘유진횟집’ 간판이 있다. 언제나 수족관에는 도미나 광어, 새우 같은 생물이 싱싱하게 끓어 넘치고 있다. 남해 금산 보리암을 돌고 나와 이곳에 앉아 노을 비낀 노량을 내어다보며, 주인 이영아씨(055-862-4040)의 깔끔한 잔수발을 받는 재미도 여간 아니다.

    또한 화전(花田) 이야기로 꽃을 피워도 좋다. 화전은 김구(金球)가 이곳에 귀양와서 지은 ‘화전별곡’(花田別曲)에서 유래한다. 화전이 드러내고 있는 뜻대로 이곳은 지리산 노고할미의 오줌발(仙 )을 받아 구품연화태(九品蓮花台)의 정상인 금산 보리암을 비롯해 화방사(花芳寺), 용문사 등과 홍련, 미조 등으로 보아 관음의 꽃밭이요, 용화미륵의 꽃밭인 것이 확실하다.

    한때 화전이란 어원을 놓고 ‘왜군의 점령지로서 일본인의 피가’ 운운하는 그 우스갯소리로 곤욕을 치른 작가도 있었다. 옛날에는 귀양가는 것을 화전(花田), 즉 꽃놀이에 비유하여 ‘꽃놀이 간다’라고도 했던 것을 보면, 남해(노도)가 김만중 등의 유배지인 것으로 보아 화전이란 말도 실감난다. 그보다는 풍류황권(風流黃卷·진흥왕이 정리한 화랑들의 호적부)의 바람이 불고 있는 섬진강 물목의 마지막 땅이란 표현이 더 옳을 듯하다. 찬바람이 불어 탱탱해진 도미회 살을 저미며 나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연해의 도미는 참돔을 비롯해 먹돔, 황돔, 붉돔, 혹돔, 자리돔(제주) 및 여수 지방의 군평선어 등으로 알려져 있다. 추자도에서는 참돔을 ‘지누’라 하고 거문도에서는 먹돔을 ‘장세’, 고흥지방에서는 ‘감생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마다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것이고 ‘자산어보’에선 강항어(强項魚), ‘전어지’(佃魚志)에서는 독미어(禿尾魚)라고 부른다. 머지 않아 지족해협의 개불잡이도 한껏 입맛을 돋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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