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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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국민 쥐어짜기보다 운용 성과 높이기가 먼저다

[김성일의 롤링머니] ‘더 내고 늦게 받는’ 개편안, 시나리오만 18개… 기금 운용 조직부터 개선해야

  • 김성일 ‘마법의 연금 굴리기’ 작가

    입력2023-09-1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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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장이 9월 1일 열린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공청회에 참석해 국민연금 개선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김용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장이 9월 1일 열린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공청회에 참석해 국민연금 개선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1]

    보건복지부 산하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9월 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공청회를 열고 국민연금 개편안을 공개했다. 국민연금 고갈을 막기 위해 ‘더 내고 늦게 받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보험료율을 12%, 15%, 18%로 올리는 방안과 함께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단계적으로 66세, 67세, 68세로 늦추는 방안, 기금 운용수익률을 현 4.5%에서 0.5%p, 1.0%p 올리는 방안을 담았다(표 참조). 세 가지 변수를 조합하면 총 18개 시나리오가 나온다.

    현행대로 운용하면 2055년 적립기금 고갈

    몇 가지 시나리오를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현재 운영 중인 보험료율 9%에 수급 개시 연령 65세를 유지하면 기금은 2055년 고갈된다. 다음으로 보험료율을 12%, 수급 개시 연령을 68세로 개선하고 기금 운용수익률을 1%p 높이면 고갈 시점은 2080년이 된다. 또 보험료율을 15%, 수급 개시 연령을 68세로 바꾸고 기금 운용수익률을 1%p 개선하면 고갈 시점은 2093년 이후가 된다. 만약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로 유지하고 운용수익률 인상을 보수적으로 0.5%p로 잡으면 보험료율을 18%로 높여야 고갈 시점이 2093년 이후로 늦춰진다.

    2093년을 기준으로 살펴보는 이유는 재정계산위원회가 ‘연금 추계 기간(70년)인 2093년까지 국민연금 적립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한다’는 목표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김용하 재정계산위원장(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은 “보험료율을 12%로 높이는 안은 연금을 70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고, 18%로 인상하는 안은 재정 안정 효과는 확실하지만 고소득층은 낸 돈보다 덜 받는다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재정계산위원회가 원하는 방안은 ‘보험료율을 15%로 올리고 수급 개시 연령을 68세로 늦추며 기금 운용수익률을 1%p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공청회에서 공개된 이번 시나리오에는 소득대체율에 관한 내용은 없다. 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 가입자의 생애 전 기간 평균소득과 대비한 국민연금 수급액 비중을 말한다. 예를 들어 소득대체율 50%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40년 기준) 월 평균소득이 100만 원이라면 은퇴 후 월 50만 원을 연금으로 받는다는 뜻이다. 소득대체율은 1988년 70%에서 1998년 1차 연금개혁으로 60%로 하락했고, 2007년 2차 연금개혁으로 매년 0.5%p씩 낮아져 2028년에는 40%가 된다.

    소득대체율 40%는 고정값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청회 전날인 8월 31일 “현재 재정계산위원회는 공적연금으로서 국민연금의 본질을 구현하고 합리적이면서 공평한 재정 안정 방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없다”며 재정계산위원회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2028년 40%까지 떨어지는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해온 소득보장론자다. 하지만 이들 목소리는 재정안정론 측 전문가들에 의해 묻힌 듯하다.



    연금개혁의 공은 이제 정부로 넘어갔다. 정부는 재정계산위원회의 권고안을 기반으로 국민 의견 수렴 등을 거쳐 다음 달까지 ‘국민연금 종합운영 계획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국민연금 보험료, 소득대체율, 수급 개시 연령 등을 바꾸려면 국회에서 국민연금법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어떤 안에 무게를 둘지 알 수 없으나, 어느 안을 선택하든 보험료율 인상과 수급 개시 연령 연장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보험료율의 경우 2025년부터 매년 0.6%p씩 각각 5년, 10년, 15년간 올리면 12%, 15%, 18%가 된다. 김용하 재정계산위원장은 “모든 시나리오가 보험료율을 2025년부터 연 0.6%p씩 같은 속도로 인상해야 한다는 똑같은 메시지를 명확히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단계적으로 66, 67, 68세로 늦추는 방안이 제시됐다. 수급 개시 연령이 65세가 되는 2033년부터 다시 단계적으로 나이를 높이는 것이다.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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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자산·대체투자·해외투자 확대해야

    재정계산위원회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총 18개지만 70년 후인 2093년에도 연금 고갈을 막을 수 있는 시나리오는 5개뿐이다. 우선 보험료율을 15%로 높이면서 수급 개시 연령을 68세로 늦추고, 기금 운용수익률을 1%p 높이는 안이다. 이 방안이 적용되면 2093년에도 그해 필요한 연금 지급액의 8.4배만큼 적립금이 남는다. 다른 방안으로 보험료율을 18%로 늘린다는 조건하에 기금 운용수익률을 1%p 높이면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보험료율을 너무 높인다는 저항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정치권과 국민의 저항이 부담스러워 연금개혁을 미루면 연금 고갈을 막아야 한다는 부담이 더 크게 다가온다. 지금 상태로 적립기금이 소진되면 보험료율을 34.9%까지 올려야 연금을 지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연금 고갈은 기정사실이 됐다. 정부가 제도 개선을 통해 국민연금의 건전성을 도모해야 된다는 것도 이해한다. 다만 국민연금 운용수익률 개선에 더욱 힘쓰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재정계산위원회 발표에는 운용수익률이 0.5%p 혹은 1%p 개선될 때 국민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는 결과가 포함됐다. 수익률을 1%p 개선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개선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공청회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기금은 운용체계상 세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전략적 자산배분(SAA) 역량이 부족하고, 대체투자 실행이 어려우며, 해외투자 확대가 힘들다는 것이다. 장기수익률 개선은 결국 자산배분 문제다. 기금의 중장기 배분 전략은 위험자산 비중 확대, 대체투자 확대, 해외투자 확대가 핵심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 방향을 실행하는 데 기금의 현 운용체계가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전략적 자산배분이 전체 운용 성과의 90% 이상을 결정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오랫동안 확인된 사실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과거 수익률을 분석해보면 전체 운용 성과의 95% 이상이 전략적 자산배분으로 설명된다. 그런데 국민연금의 현행 자산배분 체계는 이렇게 중요한 전략적 자산배분에 대한 적절한 리뷰가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담당자나 전문가가 없으며, 결과적으로 아무도 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구조다.

    국민연금기금 운용수익률은 선진국 연기금에 비해 낮다. 채권 비중이 과도하게 높고, 해외 비중이 적은 보수적 운용의 결과다. 수익률 1%p 개선은 국민의 고통을 상당히 줄인다. 정부와 국회, 연금 담당자들은 선진국 연기금 사례를 참고해 국민연금기금 운용 조직을 개선하고 수익률을 높이는 일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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