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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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6000억 원 ‘폭탄 유상증자’ 한화에어로… 금감원이 급제동

기업 이익 우선시한 일방적 결정으로 주주가치 훼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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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입력2025-03-2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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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화그룹 제공

    한화그룹 제공

    “차입을 통한 투자 계획을 고민해봤지만 이는 회사 부채 비율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문제가 있었다. 단기간에 부채 비율이 높아지면 재무구조가 악화되는데, 그럼 경쟁 입찰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해지기 때문에 유상증자가 최선의 선택이었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에어로) 대표가 3월 2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성난 소액주주들의 민심을 달래며 한 말이다. 한화에어로는 최근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 수준인 ‘3조600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해 주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회사채 발행 등 다른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주주가치를 희석하는 유상증자로 ‘투자 실탄’을 마련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여론의 집중 포화 속 금융감독원도 한화에어로 유상증자 계획에 제동을 걸면서 ‘제2 두산’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70만 원에 들어왔는데 어떡하나”

    한화에어로는 이번 유상증자가 ‘글로벌 톱티어 도약의 발판’이라고 설명한다. 유럽이 방위비를 늘리고 미국이 해양 방산 및 조선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투자로 실적 성장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3조6000억 원 중 1조6000억 원은 현지 공장 설립, 방산 협력을 위한 지분 확보 등에 사용하고 나머지 9000억 원은 국내 사업장, 8000억 원은 미국 해양 방산 및 조선 생산 거점 확보, 3000억 원은 무인기용 엔진 개발 시설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지난해 11조 원 수준이던 매출(연결 기준)을 2035년 70조 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게 한화에어로 측 구상이다.

    그러나 시장은 “뒤통수 맞았다”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 현금 및 현금성자산 1조3750억 원을 보유하고 있던 한화에어로가 올해 3월 13일 한화오션 지분을 매입하는 데 대부분을 쓰더니, 돌연 투자자금 명목으로 유상증자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한화오션 지분 인수 당시 한화에어로는 “추가 자본 조달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무엇보다 최근 한화에어로 주가가 역대 최고치(3월 18일 종가 기준 76만4000원)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소액주주들의 성토 목소리가 높다. 자금 조달 목적의 유상증자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이라 주주가치 보호보다 기업 이익을 우선시한 일방적 결정이었다는 지적이다.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에는 유상증자 발표 후 60만 원대로 밀린 한화에어로 주가를 두고 “미래 가치를 보고 70만 원에 들어왔는데 어떡하느냐” “유상증자를 하고 주가 오른 기업을 본 적이 없는데 그냥 나가야 하나” 같은 게시 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화그룹 유상증자가 경영 승계 및 지분 교통정리 과정의 일부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화그룹 계열사들은 2023년 한화오션이 전신인 대우조선해양 시절 단행한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49.3%를 확보한 바 있다. 그간 이 지분은 한화임팩트(5%)와 한화에너지(2.3%) 등에 흩어져 있었는데, 승계 기조상 이를 가져가야 할 한화에어로에 현금 여력이 있을 때 넘기고 한화에어로 투자자금은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화그룹은 현재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방산·조선·에너지 부문을,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금융 부문을,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유통·서비스 부문을 맡는 식으로 경영 승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인포그래픽 참조).

    아울러 한화 삼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에 한화에어로 현금이 흘러갔다는 점에도 눈길이 쏠린다. 시장에서는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 한화에너지가 향후 ㈜한화 합병을 통해 지주사 지분을 확보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이때 한화에너지 기업가치가 ㈜한화보다 높아야 삼형제의 ㈜한화 지분율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한화 유상증자 100% 참여

    한화그룹은 싸늘해진 시장 분위기 수습에 부랴부랴 나섰다.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에어로 주식 30억 원어치(3월 21일 종가 기준 4900주)를 매수하기로 했다. 김 부회장은 2022년부터 한화에어로 전략부문 대표이사를 맡고 있지만 한화에어로 주식을 매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화는 “대주주의 책임을 다하겠다”며 한화에어로 유상증자 배정 물량 100%를 받겠다고 발표했다. ㈜한화는 한화에어로 지분 33.95%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한화에 배정되는 신주는 162만298주다. 주당 60만5000원 예정 발행가를 고려하면 ㈜한화의 출자 금액은 약 9800억 원이다.

    전문가들은 한화그룹의 해명과 대처에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고 지적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3월 27일 “해외 투자자금을 간접금융(유상증자)으로 조달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한화에어로가) 한화오션 지분 인수에 1조3000억 원을 안 썼다면 2조3000억 원만 증자해도 됐는데, 총수 일가 승계를 위해 현금을 써놓고 이제 와 ‘투자자금 조달 목적’이라며 물타기를 하고 있는 게 사태 본질”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상법 개정 전 급히 이런 의사결정을 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김동관 부회장의 (한화에어로) 주식 매수는 결과적으로 저가 매수에 가깝고, ㈜한화의 유상증자 참여도 대주주의 지분율 희석을 막는다는 점에서 한화그룹에는 사실상 그 무엇도 손해가 아닌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금감원은 3월 27일 한화에어로가 제출한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 정정을 요구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유상증자를 적극 지원하겠다”던 기존 입장을 바꿔 유상증자 당위성, 주주소통 절차, 자금 사용 목적 등을 구체적으로 소명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한화에어로가 지난해 6차례에 걸친 금감원의 정정 요구 끝에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합병안을 철회한 두산그룹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한화에어로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3개월 내 정정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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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아 기자

    이슬아 기자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슬아 기자입니다. 국내외 증시 및 산업 동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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