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슬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2월 27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주간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젊은 사람들 출산 욕구 있어”
인구학 전문가인 최슬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2월 27일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엄마이면서 노동자인 ‘엄마-노동자’는 한국 사회에서 흔한 유형이 됐는데 남성은 그렇지 못하다”며 “남성 출산휴가 기간을 늘려 ‘아빠-노동자’ 역할의 정립을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통계청은 지난해 한국 합계출산율이 0.78명에 불과했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국 사회에 충격을 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꼴찌이자 평균(2020년 기준 1.59)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인구학 전문가인 최 교수는 “홍콩(2021년 기준 0.75) 출산율이 낮다지만 국가 단위에서 이 정도 수치가 나오는 곳은 한국뿐”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지난해 말 미혼 남녀와 기혼 남성, 미취학 자녀 또는 취학 자녀를 둔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그룹별 심층면접(FGI)을 진행해 저출산 문제를 분석했다. 2021년, 2022년에는 25~49세 남녀를 대상으로 결혼 및 가족 가치관도 조사했다. 그 결과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녀수는 평균 2.09명으로 현실과 차이가 컸다. 최 교수는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고 출산하려는 욕구는 있는데 여러 어려움 때문에 못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좁혀줘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역시 손을 놓고만 있지는 않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출범 이후 16년간 정부는 저출산 대응에 280조 원을 썼다. 2021년 사용한 예산만 43조 원 상당으로 정부 총지출(558조 원)의 7.7%에 달한다. 막대한 예산을 편성했지만 정작 출산율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많은 돈이 쓰였다지만 (저출산 해결이 아니더라도) 사용했을 돈이다. 저소득층을 지원하려고 집행한 예산에 ‘저출산 태그’가 붙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저출산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인정했다. 그는 “(저출산 문제를 겪는) 대만과 일본도 정도의 차이일 뿐, 해답을 찾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다만 “정부가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고 계도하기보다 자녀를 갖는 것이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과 실질적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 그의 대안이다. 다음은 최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2015년 이후 유배우 출산율 떨어져”
“(2015년) 전까지는 혼인율이 뚝 떨어졌지만 유배우 출산율(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출산율)은 많이 하락하지 않았다.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데 결혼 자체를 하지 않아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여럿 키우지 않고 1명만 키워 출산율이 낮다’ 등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혼인율과 유배우 출산율, 첫째아 출산율, 둘째아 출산율이 모두 떨어지는 추세다. 딩크족(맞벌이 무자녀 부부) 비중도 커지고 있다. 모든 출산율 지표가 동시에 떨어지면서 현 수치가 나왔다.”
당시 출산율 반전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었을까.
“임신을 준비해 출산에 이르기까지는 1년 정도 기간이 걸린다. 2016년을 기점으로 합계출산율이 떨어졌다는 것은 2015년이나 2014년 하반기에 벌어진 어떤 현상이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2015년을 기점으로 많이 사용됐다. 청년층에서 각자도생 기조가 확산한 것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그 직전 해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기점이 됐을 수도 있다. 당시 청년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관련 연구를 볼 때 안타깝게도 청년들이 부정적 경험을 긍정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
2005년부터 16년간 저출산 해결을 위해 280조 원 상당의 예산을 집행했는데 “체감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실제로 돈을 많이 쓴 것은 맞다. 10~20년 전과 비교하면 (정책적·환경적으로) 많이 좋아졌다. 30년 전만 해도 어린이집이 지금 수준으로 많지 않았다. 정책 체감도가 낮아 부정적 여론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 관련 예산은 주로 신혼부부나 저소득층 지원에 많이 쓰인다. 부동산 대출 지원 같은 정책이다. 신혼부부 중 (부동산 청약에) 당첨된 사람은 혜택을 받겠지만 이들은 소수다. 저출산 정책은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도록 수립돼야 한다. 취약층이나 저소득층에 초점을 맞춘 보통의 복지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변화해야 할 부분이 많은 만큼 딱 하나만 꼽기는 어렵다. 다만 단순히 금전적 지원만으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남성이 출산휴가를 제대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이가 태어난 후 아빠, 엄마 역할에 맞는 관계를 형성하려면 일정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임신과 출산 후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관계를 형성하는데, 남성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일을 더 열심히 해 승진하거나 돈을 많이 벌어오는 식으로 가정에 책임을 지려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독박육아 논란도 있었다.
“독박육아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출산 초기 아빠가 아이와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하다. 부부가 결혼하면 다투기도 하면서 관계를 형성하고, 서로 역할을 정립한다. 아이가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출산 초기 가정에서의 시간을 보장하는 출산휴가가 중요한 이유다.”
남성의 출산휴가 기간은 어느 정도가 돼야 할까.
“일터나 업무 성격에 따라 상황이 다를 것이다. 현재 한국 남성의 출산휴가는 열흘이다. 정말 바쁘게 사는 한국인 특성을 고려해도 한 달은 필요하다. 남성 육아휴직자를 면접조사한 적이 있는데 한 달 휴직으로도 의미있는 변화가 관찰됐다. 남성은 출산휴가의 명칭도 ‘배우자 출산휴가’다. 아빠가 돼서 열흘간 휴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가 출산해 휴가를 쓴다는 개념이다. 대단히 올드한 사고인 만큼 바뀔 필요가 있다.”
“괜찮다 싶은 정책은 이미 다 있어”
해외 사례 가운데 참고할 만한 정책은 없을까.“저출산 문제에서 한국처럼 극단적 상황에 처한 국가가 없어 마땅한 사례가 없다. 각국이 처한 상황도 다르지 않나. 한국 역시 20년간 초저출산 시기를 보내며 해외 사례를 쳐다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괜찮다 싶은 해외 정책은 이미 비슷하게 다 들어와 있다. 일부 실험적인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도 있지만 효과 관련 자료가 축적될 필요가 있다. 가령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출산과 연계해 대출원금을 탕감해주는 헝가리식 대책을 언급했다. 이 역시 정책 시행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코로나19 사태 등 외부 변수가 있어 명확하게 검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출산율 반전의 골든타임이 있을까.
“출산율 반전의 골든타임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출생아 수의 골든타임은 있다. 출산과 출생 개념은 구별해 사용해야 한다. 출생아 수는 ‘연령별 출산율’과 ‘청년 세대의 인구 규모’ 두 요소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가임기 청년 인구가 적으면 출산율이 아무리 올라가도 출생아 수는 적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초반생이 70만 명을 넘는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다. 이들이 지금 30대 초반 나이로, 출산을 가장 많이 하는 연령대에 진입했다. 사회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각종 지원을 할 생각이 있다면 당장 하는 것이 효과가 좋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생) 이후로는 출산율이 다소 오르더라도 출생아 수가 늘어나기 힘들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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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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