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9

2017.03.15

특집 | 점입가경 중국 사드 보복

일본은 중국 보복에 어떻게 맞섰나

센카쿠 열도 中·日 갈등…정치·경제 이원화 대응책이 ‘신의 한 수’

  • 김형욱 이데일리 기자 198019801980@hanmail.net

    입력2017-03-13 18: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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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드 배치로 중국과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5년 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갈등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주한미군의 한반도 사드 배치로 한중 간 군사·외교적 갈등이 중국의 경제 보복과 반한감정으로 이어지는 현 상황이 5년 전 센카쿠 열도 갈등 때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당시와 현 상황의 차이점 및 유사점을 분석하면 더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리란 기대도 나온다.

    센카쿠 열도는 동중국해에서 중국, 대만, 일본 3국 영해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6km2 크기의 무인 군도다. 5개 섬과 3개 암초로 이뤄졌다. 대만과 일본 류큐 열도 이시가키에선 170km, 중국과는 330km 떨어졌다. 현재는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일본이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이긴 후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자국 영토에 편입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큰 갈등 없이 지냈으나 1970년대 이곳 인근 바다에 석유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발표가 나온 후 중국과 대만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갈등 불붙인 日 정부의 국유화 선언

    센카쿠 열도 영유권을 둘러싼 중·일 갈등은 2012년 본격적으로 불붙었다. 일본 정부가 그해 9월 전격적으로 센카쿠 열도 국유화 결정을 발표한 게 발단이었다. 이후 수개월 동안 두 나라 초계기와 전투기가 신경전을 벌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졌다. 12월에는 군사대국 부활을 꿈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등장했다. 중국에서도 이듬해 3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시대가 열리면서 잠깐이나마 화해의 바람이 불었으나 이내 갈등의 골이 더 깊어졌다.

    중국은 정치·경제·군사·외교·민간교류 등 전방위에 걸쳐 보복에 나섰다. 중국 내에서는 반일집회와 도요타, 파나소닉 등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이어졌다. 중국 정부는 자국민의 일본 관광도 통제했다. 현 한중관계와 흡사한 양상이다. 갈등 직전인 2012년 7~8월 중국인 일본 관광객은 전년보다 2배 늘어나는 등 상승세였으나 급격히 꺾였다. 9월 이후부터 연말까지는 오히려 30~40%씩 줄었다. 2012년 143만 명이던 중국인 일본 관광객은 2013년 7.8% 줄어 131만 명이 됐다.



    무역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2011년 1620억 달러(약 187조9200억 원)이던 일본의 대중(對中) 수출액은 2012년 1442억 달러로 11% 줄었다. 2013년엔 다시 10.5% 줄어든 1291억 달러가 됐다. 중국도 손해를 봤다. 폭발적으로 늘던 중국의 대일 수출액은 2011년 1841억 달러, 2012년 1885억 달러, 2013년 1808억 달러로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사태 수습을 맡은 아베 총리는 미국엔 구애하고 아시아에선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강하게 맞서는 이원화 대응 전략을 펼쳤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은 2013년 1월 양국 외무장관 회담을 제안하며 유화책을 펼치는 듯했으나 정작 아베 총리는 중국을 비난하며 2013년 11년 만에 방위비를 증강했다.

    아베 총리로선 우경화한 일본 내부의 비난 여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강경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갈등이 불거지기 2년 전인 2010년, 중국 어선 한 척이 센카쿠 영해에서 조업하다 일본 측에 나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국은 이에 반발해 일본의 전자제품 제조에 꼭 필요한 희토류 수출을 금지했고, 깜짝 놀란 일본 정부는 총리 특사 파견과 함께 관방장관의 공개사과로 갈등을 무마했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일본 내 우경화를 불러왔고 아베 총리 취임 전 두 총리 모두 정치적으로 단명했다.

    아베 총리는 대중 강경 정책과 함께 미국에게는 극단적인 구애 전략을 펼쳤다. 우방인 미국의 우산 아래서 중국을 억제한다는 밑그림이었다. 2013년 2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중국을 비판하는 동시에, 북핵 위협을 이유로 미·일 동맹을 강화키로 합의했다. 특히 이듬해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선 미국이 센카쿠 열도를 언급하고 미·일 안보조약 제5조의 적용 범위에 들어간다고 명시토록 하는 성과를 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전방위적 보복은 유야무야 사그라졌다. 아베 총리는 미국을 통한 간접 압박에 성공한 2014년 11월 이후 시진핑 주석을 세 차례 만나 표면상으로나마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장기 집권의 토대를 닦은 아베 총리의 미국 구애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하자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환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전 세계적인 반감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민하게 대응함으로써 변함없는 미국과 우호를 과시한 것이다.



    중국 대신 인도로 발길 돌려

    일본은 이와 함께 경제 측면에서 중국 의존도 낮추기에 나섰다. 2010년 중국에 굴복한 원인이 됐던 희토류 공급망 역시 인도, 베트남 등으로 다변화했다. 재활용 확대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대중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중국에 설립한 공장을 동남아 등지로 분산하는 일도 병행했다.

    센카쿠 열도 갈등은 현재진행형이지만 경제 문제와 분리하려는 노력도 이어갔다. 떠났던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을 돌리고자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하고, 관광업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일본 정부 관광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637만 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센카쿠 열도 갈등 때와 비교하면 5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또한 일본은 오랜 구애 끝에 인구 13억 명의 거대 시장인 인도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일본은 2004년부터 일찌감치 대인도 지원을 늘려왔다. 인도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최다 기부국도 일본이다. 그 결과 스마트시티, 고속철도 건설 같은 대규모 사업을 수주했다. 아베 총리는 거의 매년 인도를 찾아 세일즈 외교를 펼쳐왔다. 특히 지난해 11월 방문 땐 원자력발전소 건설 협정의 기반을 다졌고, 12월에는 실제 협정으로 이어졌다. 또 인도가 추진 중인 6개 고속철에 신칸센(新幹線)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인도는 일본 신메이와(新明和)사가 제작한 수륙양용 구난비행정 US-2 수입도 논의하고 있다. 인도의 US-2 구매가 확정되면 아베 총리가 2014년 무기 수출금지 조치를 폐지한 이후 첫 무기 수출 사례가 된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일본 영해에 침입한 중국 선박은 121척으로 집계됐다. 사흘에 한 번꼴이다. 중국은 계속 센카쿠 열도가 자국 영토라는 ‘무언의 시위’를 벌이며 이곳을 분쟁지역화하려 한다. 일본은 이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군비를 확충하고 있다. 일본은 센카쿠 열도 분쟁 직후, 즉 아베 총리 집권 이후인 2013년부터 매년 방위비를 늘려 지난해 처음으로 5조 엔(약 50조 원)을 돌파했다. 내년도 예산 역시 역대 최대인 5조1251억 엔(약 52조 원)으로 잡았다.

    일본이 치밀하고 다양한 대응책으로 중국의 보복 조치를 무리 없이 벗어난 과정을 한국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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