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시간과 공간에 ‘신의 입김’이 개입돼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동양 사람들은 시간 흐름에 따라, 또한 공간과 방향에 따라 독특한 기장(氣場: 에너지 파동)이 펼쳐진다고 본다. 보이지 않는 신의 입김으로 해석되는 이 기운이 사람의 운과 신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복을 불러들이는 복덕(福德) 방위
서북(천문)-동남(지호) 선을 경계로 집 출입문이 있는 방향이 복덕방이고, 선 뒤쪽이 형화방에 해당한다. [안영배 제공]
방위풍수에서는 4방위, 8방위, 12방위, 24방위 등으로 공간을 나눈 뒤 각 영역의 기운을 설명한다. 집(양택) 풍수를 다루는 데는 8방위(동·서·남·북·북동·동남·남서·서북) 이론이 가장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8방위는 동서남북을 4방(四方), 북동·동남·남서·서북을 4유(四維) 또는 4우(四隅)로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이때 변화가 심하게 나타나는 방위가 모서리 방위인 4유다. 4유 방위에는 특별한 별칭까지 붙어 있다.
먼저 서북과 동남 방위는 각각 천문(天門)과 지호(地戶)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서북은 하늘의 문, 동남은 땅의 문이라는 뜻으로, 곧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이 출입하는 방위에 해당한다. 천문과 지호 방위는 동양 고전인 ‘황제내경’의 오운육기론에 등장하는데, 풍수 고전인 ‘황제택경’은 이를 집의 길흉을 분석하는 방편으로 사용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집의 가운데(중심점)에 8방위가 표시된 나침반을 놓은 뒤 동남과 서북 방위를 직선으로 연결한다. 이 직선을 경계선 삼아 베란다(아파트)나 출입문(단독주택)이 바라보이는 방향이 집 앞쪽에 해당하고, 그 반대 방향이 집 뒤쪽이 된다(그림 참조).
이때 집 앞쪽은 복과 덕을 불러들인다고 해서 복덕방(福德方), 집 뒤쪽은 형벌과 화를 일으킨다고 해서 형화방(刑禍方)이라고 부른다. 또 복덕방은 동적(動的)인 행위가 일어나면 길하다 보고, 형화방은 고요한 정적(靜的) 상태로 있어야만 길하다고 본다. 만일 형화방에서 땅을 파거나 도로·건물 신축 등 동적 행위가 벌어지면 집안에 우환이 발생한다고 해석한다. 반면 집 앞쪽인 복덕방에서 동적 행위가 발생하면 길한 조짐이라며 긍정적으로 본다.
이는 집 내부에도 천문-지호 선을 그어 똑같이 적용해볼 수 있다. 즉 냉장고, 세탁기, 피아노, 전자레인지 등 동적인 기기는 뒤쪽(형화방)보다 앞쪽(복덕방)에 배치하는 것이 좋다.
신이 출입하는 귀문(鬼門) 방위
4유 방위 중 나머지 북동과 남서 방위는 귀문방(鬼門方)이라고 불린다. 이름대로 신이 들락거리는 문의 방위라는 뜻이다. 귀신이 출입하는 곳이다 보니 산 사람들이 자칫 해를 입을 수 있다고 해서 흉한 방위로 취급한다. 실제로 방위풍수론에서도 가장 꺼리는 곳인데, 서로 반대되는 기운이 충돌하는 방위이기 때문이다.
이를 시간으로 바꿔보면 이해하기 쉽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과 해가 가장 높이 뜨는 남쪽은 양(陽·+)의 영역이다. 반대로 해가 지는 서쪽과 완전히 해가 저무는 북쪽은 음(陰·-)의 영역이다. 이때 양과 음이 교차되는 곳이 있다. 바로 양에서 음으로 넘어가는 남서 방위와 음에서 양으로 넘어가는 북동 방위다. 계절로 치면 남서 방위는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환절기고, 북동 방위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다.
기온이 급격히 변화하는 환절기에는 인체가 밸런스를 맞추지 못해 감기 등에 걸리기 쉽다. 마찬가지로 극성이 교차하는 두 방위는 기운이 교란되는 곳이기에 사람의 운에도 흉한 작용을 한다고 본다. ‘황제택경’에서는 “귀문 방위는 집안의 기운을 막는 곳이다. 이곳을 침범해 치우치게 되면 반신불구가 되거나 종기가 나는 등 재앙이 생긴다”고 경계한다.
옛사람들은 서남방보다 동북방의 흉(凶)함이 더 크다고 봤다. 재앙을 일으키는 재문(災門), 혹은 병을 불러오는 병문(病門)이라는 별칭이 부여됐을 정도다. 특히 이 방위에 대문 혹은 출입문, 현관 등이 있으면 귀신이 드나드는 문과 바로 연결되기에 집안에 우환이 깃든다고 봤다. 더 확대해 집을 기준으로 동북 방향으로 묘지, 장례식장 등이 보이는 경우에도 귀신과 소통이 이뤄진다고 해 경계했다. 종종 아파트를 분양할 때 거실에서 묘가 바라보이는 ‘묘지 뷰’ 소동이 일어나는 배경이다.
귀문 방위는 형화방처럼 고요한 상태가 좋고, 불결한 시설물을 두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화장실·하수구·쓰레기통 등이 이 방위에 놓일 경우 집안에 액운이 미치기 쉽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편 귀문방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경계하는 방위다. 11세기에 출간된 일본 최고(最古) 정원서 ‘작정기’는 귀문방에 대해 “오척(五尺) 이상의 돌을 북동쪽에 세우지 마라. 귀문에서 귀신이 들어오기 때문”이라면서 귀문방에 있는 돌은 유령이 깃들고, 악귀들이 들어오는 것을 재촉한다고 경고했다.
남서쪽 귀문방 일본 총리 공저에 귀신 소동
일왕이 머무는 고쿄(皇居)를 기준으로 남서쪽 귀문방에 자리해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나도는 일본 총리 공저. [일본 총리실 홈페이지]
이 때문인지 간 나오토,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 등 전 총리들은 재임 중 공저를 끝까지 사용하지 않았다. 일본 정계에서는 총리가 공저에 들어가면 단명 정권으로 끝난다는 소문까지 나돌기도 했다. 다만 현재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9년간 비어 있던 공저에 입주해 머물고 있는데, 지난해 11월 말 느닷없이 기시다 총리가 공저에서 벗어나 호텔에 숙박하는 이례적인 행동을 벌여 또 한 번 “귀신이 출현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귀문방이 마냥 불길한 것만은 아니다. 동북 귀문방은 ‘주역’에서 간방(艮方)이라고 부른다. 간방은 “만물이 끝을 맺는 곳이자 다시 시작하는 곳(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이라는 의미가 부여돼 있다. 이전에 해왔던 행위가 끝을 봄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공간, 즉 패러다임이 바뀌는 신성한 공간이자 신의 입김이 가장 활발하게 미치는 영역인 것이다. 다시 말해 ‘기도발’이 잘 통할 수 있는 영적 공간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동북과 서남의 귀문방은 우리 민족이 신성시해온 북두칠성이 지나가는 길이기도 하다. 봄철 북두칠성은 동북쪽 하늘에 떠서 서남쪽으로 진다. 이 때문에 유서 깊은 절에서는 삼라만상과 인간의 생사(生死)를 주관하는 북두칠성 신(神)을 모신 칠성각을 동북방에 배치해놓고 있다.
북두칠성 후손답게 한반도 역시 중국 중원 대륙을 기준으로 동북방에 자리 잡고 있다. 풍수 눈으로 볼 때 간방의 땅 한반도에서 20세기 갈등의 시대가 끝을 맺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언이 그럴싸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