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그룹이 경영권 분쟁에 처음 휩싸인 것은 1월이다. 국내 1위 태양광 폴리실리콘 기업 OCI와 그룹 통합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한미그룹은 한국 기업사에서는 드문 이종(異種) 합병에 대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장남 임종윤 당시 한미약품 사장의 반발에 부딪쳐야 했다. 두 기업의 통합 작업이 완료되면 장녀인 임주현 당시 한미약품 사장이 최대주주가 되면서 차기 경영권을 거머쥐게 돼서다.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한양정밀 홈페이지]
신 회장, 형제 손 들어줬지만 불신으로 등 돌려
임종윤 당시 사장은 양사 통합이 전격 발표된 다음 날 X(옛 트위터)를 통해 “한미나 가족, 어떠한 형태로 고지 또는 정보, 자료를 전달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으며, 이후 남동생인 임종훈 당시 한미약품 사장과 함께 수원지법에 한미그룹과 OCI그룹 통합에 반대하는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형제에게 불리했다. 둘의 지분을 합쳐도 20.47%로 모녀 측 우호지분 36%에 비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신동국 회장이다. 임종윤 사장은 당시 한미사이언스 지분 11.52%를 보유 중이던 신 회장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녀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던 상황은 3월 신 회장이 “두 그룹의 통합에 반대하고 형제 측을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3월 28일 열린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 모녀 측 이사진 후보가 전원 탈락한 것이다. 주주총회 직후 한미그룹은 OCI그룹과 통합 중단을 공식 발표했다. 또 이후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공동대표 해임, 임종윤-종훈 형제의 한미약품 사내이사 선임 소식 등이 잇달으며 형제 측이 승기를 잡았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반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당초 형제 편에 섰던 신 회장이 이번에는 송 회장-임 부회장 모녀와 손을 잡은 것이다. 송 회장과 임 부회장은 7월 3일 신 회장에게 한미사이언스 지분 6.5%(444만4187주)를 매도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표 참조). 이사회 구성과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는 약정에도 합의했다. 이 계약으로 송 회장과 임 부회장은 신 회장과 손을 잡으면서 주식 매각 대금 1644억 원을 마련해 상속세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처음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을 때부터 ‘키맨’으로 주목받은 신 회장은 선대회장의 고향 동생이자 김포 통진고(옛 통진종합고) 후배다. 그는 2010년 임 선대회장의 권유에 따라 420억 원으로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12% 넘게 사들인 뒤 지금까지 거의 팔지 않은 채 보유하고 있다. 또 2015년에는 한미약품 주가가 폭등하면서 주식자산이 1조1481억 원으로 증가해 주식 부호 22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송 회장의 퇴임 소식이 전해진 이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예정했던 일”이라는 설명과 함께 “국내 최고 제약사가 오너 이슈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신사업이나 교통정리를 할 부분이 많아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제 적극 나서 정리할 순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신 회장이 형제에게서 등을 돌린 데는 불신이 작용했다고 한다. 신 회장은 송 회장과 함께 법무법인 세종을 통해 공식 발표한 자료에서 형제 측 승리로 끝난 3월 주총 이후 한미그룹을 해외 사모펀드에 매각한다는 소문으로 한미사이언스 주가가 30% 이상 하락했음을 거론하면서 “한국형 선진 경영체제 도입을 통해 한미가 글로벌 제약사로 크게 도약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 의지를 공개했다.
신 회장과 형제 미묘한 온도차, 갈등 불씨 남아
7월 10일에는 경영권 종식 선언도 이어졌다. 신 회장은 임종윤 사내이사 측이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한미약품의 가족 간 불협화음이 극적으로 봉합됐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에서는 갈등 불씨가 남아 있다고 본다. 임종윤 사내이사 측이 밝힌 입장문에서 “두 형제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책임경영, 전문경영, 정도경영을 하이브리드 형태로 융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한 표현은 형제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히지만, 신 회장은 이후 언론을 통해 “장·차남과 뜻을 모아 합의를 이루기로 한 것은 맞지만 경영에 대해서는 세부적으로 상의하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아직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와 핵심 사업 회사인 한미약품의 대표이사 유지·변경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임종윤, 임주현, 임종훈 등 창업주 일가 2세의 경영 참여 여부와 역할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경영권 분쟁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도 한미약품이 올해 2분기 시장 전망치를 상회하는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나증권은 7월 9일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63.9% 증가한 543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투자의견 ‘매수’, 목표주가 40만 원을 유지했다. 박재경 하나증권 연구원은 “한미약품은 최근 오너가 경영권 분쟁 이슈, 그 과정에서 드러난 일감 몰아주기 논란과 관련된 내부감사 등 거버넌스 이슈로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이지만, 본업은 여전히 견조하고 R&D(연구개발)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미약품 주가는 7월 10일 종가 기준 30만2000원이다.
이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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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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