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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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로 떠나는 식도락(食道樂) 여행

[재이의 여행블루스] 일본식 포장마차 ‘야타이’에서 즐기는 돈코츠라멘 일품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4-06-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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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한 주, 한 달 일정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챙겨도 살다 보면 놓치는 것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을 잘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잠시 멈춰 나 자신과 대화를 하는 것. 가만히 묵상하며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버리고, 취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을 취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간다.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답이나 세상이 원하는 답이 아닌, 나 자신이 원하는 진짜 답을 찾아간다. 이렇게 훈련하다 보면 해야 할 일과 챙겨야 할 것들이 넘쳐나도, 감당해야 할 역할이 많아 시간에 쫓겨도 조급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방향키를 제대로만 잡고 있으면 사사로운 감정도 문제 될 것이 없다. 빨리 가는 것보다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제대로 알고 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잠시 멈춰 나 자신과 꼭 대화해보길 권한다. 일상에서 시간을 내기 어렵다면 여행지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꼼꼼하게 계획을 세운 후 떠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떠나는 여행도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 기회를 준다. 연차·주말·공휴일을 활용한 이른바 틈새 여행은 바쁜 일상에서 평안을 찾기에 제격이다. 멀지 않은 거리라면 더더욱 안성맞춤.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도시, 일본 후쿠오카로 떠나보자.

    후쿠오카 랜드마크 캐널시티. [후쿠오카 관광청 제공]

    후쿠오카 랜드마크 캐널시티. [후쿠오카 관광청 제공]

    틈새 여행 제격인 후쿠오카

    후쿠오카가 있는 일본 규슈(九州) 지역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화려한 도시 모습과 한적한 시골 풍경이 적절히 섞여 있어 사람들의 여러 취향을 만족시킨다. 일본은 지역에 따라 문화, 음식, 축제 등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나라다. 일본을 이루는 4개 큰 섬 가운데 하나인 규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일본의 다른 지역보다 일찍 유럽과 아시아 등 대륙 문화를 받아들였다. 규슈 지방에서 한국과 직항편이 개설된 도시는 후쿠오카, 구마모토, 나가사키, 오이타, 미야자키, 가고시마 등이다. 이 중 비행시간이 가장 짧고 항공비도 저렴한 지역이 후쿠오카다. 덕분에 한국 여행객이 가장 많이 찾는 친근한 도시다.

    후쿠오카는 일본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다. 규슈 지방의 관문이자 후쿠오카현의 행정·경제·문화 중심지 역할을 한다. 본래는 상업·무역 중심지 ‘하카타’, 옛 성곽 지역과 정치 중심지 ‘후쿠오카’로 나뉘었으나 1889년 메이지 행정 개혁에 따라 후쿠오카시로 통합돼 오늘에 이르렀다. 이런 이유로 1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하카타라는 옛 지명이 거리나 건물, 상점 이름 등에 계속 사용되고 있다.

    배낭 하나 꾸려 후다닥 떠나기 좋은 후쿠오카는 서울에서는 비행기로 90분, 부산에서는 고속 페리로 3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이동 부담이 적어서인지 언제 가봐도 참 친근한 도시다. 공항에 도착하면 친절하게 안내된 한글 표지판이 여행자를 반긴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거리가 멀지 않아 여행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왠지 이 도시라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개인 성향에 따라 후쿠오카가 먹고 쇼핑하는 일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반대로 짧은 기간에 최대한 에너지를 얻고자 하는 이에게는 가장 큰 장점이 되기도 한다. 틈새 여행 매력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후쿠오카는 도쿄나 오사카 같은 큰 도시와는 다른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일본 특유의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먹거리와 패션의 천국이기에 유유자적 걷고, 사고, 먹고, 마시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낯설면서도 익숙함이 주는 묘한 긴장감이 크다. 이것이야말로 이 도시를 찾는 진짜 매력이다. 후쿠오카에 머무는 동안이라도 어딘가를 찾아다니려 애쓰지 말고, “나 여기 다녀왔다”는 인증 사진을 찍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걷거나 마음 가는 대로 골목골목을 탐색하며 취향대로 먹고 마시면서 조용하고 느린 자신만의 여행을 즐겨보자.



    강변 운치 즐길 수 있는 나카스

    다양한 현지 맛을 즐길 수 있는 일본식 포장마차 야타이(왼쪽). 돼지 뼈를 진하게 우려 국물 맛이 일품인 돈코츠라멘. [GETTYIMAGES, 후쿠오카 관광청 제공]

    다양한 현지 맛을 즐길 수 있는 일본식 포장마차 야타이(왼쪽). 돼지 뼈를 진하게 우려 국물 맛이 일품인 돈코츠라멘. [GETTYIMAGES, 후쿠오카 관광청 제공]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잘 먹는 게 중요하다.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것이야말로 후쿠오카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돈코츠라멘(豚骨ラ-メン)’ 본고장인 후쿠오카는 다양한 식문화가 발달해 먹거리가 풍부하다. 돈코츠라멘은 1937년 후쿠오카현 남부 지방 구루메(久留米)시의 한 포장마차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돼지 뼈를 오랫동안 우려낸 하얗고 뽀얀 국물에 쫄깃한 면발과 돼지고기, 수란을 고명으로 올려 먹는데 이 조화가 가히 환상적이다. 한국에서 먹는 맛과 차이가 있다면 꼬들꼬들한 원초적 향기가 진하게 난다는 것. ‘이치란(一蘭)’ ‘잇푸도(一風堂)’ 등 유명 체인점에서 맛보는 것도 괜찮지만 이왕이면 일본식 포장마차인 ‘야타이(屋台)’에서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후쿠오카 명물인 야타이는 술안주로 제격인 정어리에 매운 명란젓을 끼워 넣은 ‘멘타이코(明太子)’를 비롯해 특색 있는 메뉴들을 맛볼 수 있어 미식의 본거지로 꼽힌다.

    후쿠오카에는 텐진(天神), 나카스(中洲), 나가하마(長浜) 등 3대 야타이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운치 있는 강변 야경을 즐길 수 있는 나카스가 가장 유명하다. 나카스는 강가의 운치와 맛있는 야식을 즐기려는 인파들로 연일 북새통을 이루는 반면, 텐진은 회사원들이 퇴근 후 한잔하려고 찾는 곳이라서 현지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나가하마는 두 곳에 비해 야타이 수가 훨씬 적지만 여행객에게 알려지지 않아 좀 더 편안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일정과 취향을 고려해 자신에게 맞는 야타이를 꼭 찾아가보자. 야타이는 오밀조밀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정겹고 흥이 넘치지만, 야타이 특성상 공간이 좁아 일행이 많으면 불편할 수 있다. 포장마차이기에 조금은 비위생적이고 지저분한 느낌이 들곤 해도 그래서 더 정겹다. 하루의 수고를 털어내는 회사원들과 청춘 남녀의 다정한 대화 사이로 여행자의 호기심이 더해지니 야타이는 그야말로 무한 매력의 공간이 된다. 날이 더울 때는 시원한 생맥주와 하이볼을, 추운 계절에는 따뜻한 사케 한 잔을 기울여보자. 일본식 야키토리, 덴푸라, 달걀말이, 따끈한 우동과 모츠나베 등을 부지런히 먹고 마시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밤이 깊어진다. 소박하지만 맛있는 식당과 분위기 좋은 카페가 넘쳐나는 후쿠오카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맛집이라고 보면 된다. 맛집 정보를 찾느라 고생하기보다 현지인이 몰리는 가게들을 믿고 도전해보자.

    아기자기한 상점이 즐비한 다이묘 거리. [후쿠오카 관광청 제공]

    아기자기한 상점이 즐비한 다이묘 거리. [후쿠오카 관광청 제공]

    든든하게 속을 채웠으니 이제는 즐길 차례다. 대형 복합쇼핑몰과 규슈 최대 온천 시설이 있는 ‘하카타’부터 역동적이고 화려한 도시라는 명성이 느껴지는 ‘텐진’, 123m 높이를 자랑하는 후쿠오카 타워가 자리한 아름다운 인공해변 ‘시사이드 모모치’까지 걸어 다니기만 해도 시간이 금세 간다. 해변이나 항구 쪽으로 일부러 나가지 않는 한 도심 하카타와 텐진 지역이 여행의 중심이 된다. 쇼핑을 즐기고 싶다면 규슈 최고 번화가인 텐진이 제격이다. 다이마루(大丸), 미쓰코시(三越) 등 유명 백화점을 비롯해 세계적인 브랜드숍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텐진 뒷골목과 힙스터 성지인 다이묘 거리에도 최신 트렌드를 살펴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매장, 개성 넘치는 상점이 몰려 있다. 도심 속 지하 세계인 텐진 지하도도 놓쳐서는 안 된다. 약 400m 길이의 지하도에는 옷, 잡화,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1000여 개 매장이 줄지어 있다. 지하도는 텐진 유명 백화점, 버스터미널과도 연결돼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볼거리 가득한 캐널시티

    다양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복합문화시설 ‘캐널시티(Canal City Hakata)’는 후쿠오카의 랜드마크다. 하카타역의 대형 복합쇼핑몰인 이곳은 단순히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여러 건물이 모인 미래 도시형 공간이라는 디자인 개념이 도입됐다. 텐진과 하카타역 사이에 있으며 건물 사이로 180m의 인공 운하까지 흘러 운치를 더한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쇼핑가, 라멘 스타디움을 비롯해 매력적인 레스토랑과 카페 등도 자리해 언제나 쇼핑객과 여행객이 북적거리는 곳이다.

    이어지는 ‘후쿠오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일본 인기 프로야구팀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구장인 ‘후쿠오카 PayPay 돔’과 ‘후쿠오카 타워’ 등 후쿠오카의 랜드마크들을 돌아보고 근교 온천 여행지로 힐링 여행을 떠나볼 예정이다.

    ※ 주간동아 1444호에서 ‘후쿠오카 두 번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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