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안전혁신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성호 국민안전처 차관, 홍익태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장, 강신명 경찰청장.
지난 1년, 외견상 정부의 안전정책에 분명히 많은 변화가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안전혁신계획의 속살과 실상은 어떨까. 한마디로 답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먼저 정부가 그동안 안전 정책과 관련해 노래하듯 말한 ‘현장은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다. 재난은 국민 개개인이 있을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국민이 있을 수 있는 곳은 모두 재난 현장이 될 수 있는 곳으로 봐야 한다. 관리행정상으로는 읍면동이요 시군구로, 우리가 지역사회라 부르는 곳이다.
방재안전관리 행정의 목표는 지역사회의 재해(재난) 적응성(Disaster Resilience)을 장기적으로 높이는 데 있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재해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일시적으로 재해 적응성을 높이기 위해 방재자원의 준비와 공급(지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재해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난 현장에 노출될 수 있는 국민의 적응력을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재해와 재난의 발생은 제어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국민의 재난 적응력에 따라 그 피해를 방지(예방)하거나 최소화하거나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예산과 인력
지역사회인 226개 시군구는 지리적 특성이 다르다. 따라서 그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재난 특성도 다르며, 그것에 대응하는 지역민의 특성 또한 다르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정부의 안전정책도 지리적 특성과 재난의 특성에 바탕을 두고 세워져야 한다. 이번 안전혁신계획을 들여다보면 선언적 내용만 있지 필요한 상세가 보이지 않는다.
자치단체장들이 지역의 재난 특성을 가장 잘 안다고 믿고, 그들에게 특별재난지역 선포권을 이양하겠다는 계획은 매우 위험한 판단으로 보인다. 솔직히 선출직 자치단체장이 언제 재난에 관심이 있었던 적이 있었나. 작은 재난만 닥쳐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달라고 아우성칠 것이 눈에 선하다. 중앙정부의 지원을 조금이라도 많이 받아내는 게 자치단체장의 능력으로 치부되는 상황에서는 당연한 결과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과장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안전관리에 필요한 예산도 사전에 조정한다고 하는데 차제에 이와 관련한 병폐도 도려내야 한다. 지금까지 각 부처에서 수행하는 사업 예산이 어떤 일이 있으면 안전 예산으로 둔갑하는 ‘눈 감고 아옹’식 예산 편성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세밀한 진단이 없는 이런 사후약방문식 안전정책이 과연 국민을 재해와 재난으로부터 얼마나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가 안전정책이 처음으로 수립된 지 30년, 우리 정부가 쌓아온 노하우가 이것밖에 안 되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자치단체장들은 평시에 자기 관할구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재난과 재해에 관심을 갖고, 세심한 관찰과 분석을 통해 방재안전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적절한 예산 배분과 인력 배치를 통해 안전정책이 잘 수행되고 있는지 반드시 점검하고 평가해야 한다. 관할구역 내 생명체, 자연, 사회기반시설의 내구성 또는 취약성을 파악하고 현 가용자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재해와 재난의 위험(risk)을 구분해야 한다. 이는 그것에 대응하고자 준비해둔 방재자원을 적절히 투입해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런 노력에도 피해가 대규모화됐을 경우 중앙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아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고, 지역민이 시급히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정부는 무턱대고 자치단체에 특별교부금을 뿌려댈 게 아니라 자치단체의 방재안전관리 노력을 제대로 평가하고 이를 기준으로 지원을 해나가야 한다. 정부는 시민의 일상이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시민복지의 근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이 계획에서 ‘골든타임’을 특정한 시간 개념으로 설정해놓았다. 정말 난센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재난과 재해의 피해 정도는 발생 장소와 기상 조건에 따라 얼마든 변동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재난을 당한 시민들은 이러저런 조건을 따지지 않고 특정 시간의 골든타임만 믿고 정부를 비난할 수 있다. 시민들에게 쓸데없이 실망만 안겨주는 캠페인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이 현실성 없는 골든타임을 믿지도 않을뿐더러, 재해와 재난이 일어나면 결국 정부의 무한 책임성만 강화돼 국민의 원성을 사고 언론에 핀잔거리만 제공할 것이다. 우리 국민에게 재난관리의 어려움에 대한 실상을 알려 민관이 함께하는 재난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3월 30일 제54차 중앙안전관리위원회를 주재한 이완구 국무총리(왼쪽). 방기성 국민안전처 안전정책실장이 3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룸에서 ‘안전혁신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재난관리가 성공적으로 수행되려면 공공영역(정부)과 사적영역(개인)의 협력이 핵심적 관건이다. 따라서 이번 안전혁신계획에는 사적영역의 역량을 강화하는 정책이 포함되길 간절히 기다렸다. 대형 참사들로 우리가 이미 경험한 재난이 일어날 경우 현장에 있을 각 개인의 역량이 생명보존의 핵심이 된다. 이러한 역량을 키우기 위해선 모든 방재안전관리 자원을 사용하는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공공영역, 즉 공무원이 법조문을 바꾸고 조직을 확대하며 매뉴얼타령만 한다고 안전이 확보될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불안전, 위험, 재난이라는 말은 금세 사라졌을 것이다. 공공영역만 정비한다고 결코 효과적인 방재안전관리가 이뤄질 수는 없다. 정부의 노력이 사적영역, 즉 재난 현장에 있을 시민들의 재난 대응 역량과 씨줄과 날줄로 잘 엮일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정부는 모든 방재안전관리 역량을 총동원해 재난에 놓일 시군구 현장을 즉시 지원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역별 재난 특성에 기초해 방재자원을 비축한 다음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특히 각 지역 읍면동장 협의체와 애향 청년단체, 중장비협회, 종교단체, 적십자사 같은 사회단체, 그리고 지역 의료단체 등 모든 지역사회 단체를 포함하는 ‘지역자율방재단’(가칭)을 육성해야 우리가 기대하는 방재안전문화를 시민 생활 속에 만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단체가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지 않도록 대비책도 만들어야 한다.
2014년 11월 안전행정부의 안전 조직과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 등이 합쳐져 메머드급 부처로 출범한 국민안전처의 현판.
안전교육훈련은 안전관리 행정가들이 먼저 받아야 할 것이다. 관련 전문 분야 기술자들에게도 교육이 필요하며, 가장 중요한 국민교육은 가족 단위 체험교육으로 진행하는 것이 실효성이 높다. 생활교육이 되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학교교육도 교육대에서부터 필수과목으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