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 경남 합천생<br>● 1985 日 오사카시립대 경제학 박사<br>● 1997 경북대 경상대학장<br>● 2000 산업자원부 장관<br>● 2010 단국대 석좌교수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이사장의 신념이다. 2007년 KoSIF 창립 이후 김 이사장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요소를 전통적 투자 결정 과정에 통합하는 방식인 책임투자를 활성화하려고 노력해왔다. 7월 2일 KoSIF가 국회에서 연 국민연금기금의 책임투자와 공시 법제화를 위한 토론회도 그 연장선이었다. 이목희 민주당 의원, 유엔 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등이 함께 한 이 토론회는 국민연금기금을 책임투자 방식으로 운용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KoSIF는 사회책임투자(SRI)의 ‘허브’ 구실을 하며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활동을 해온 비영리단체다. 2008년부터는 기업의 기후변화 정보공개(CDP)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책임투자는 자본주의 위기 수습할 묘책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동북아의 평화와 영토’ 세미나에 참석하고 돌아온 김 이사장을 7월 1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김대중 정부 때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김 이사장은 1997년 일본 경제학자들이 뽑은 ‘애덤 스미스 이래 100대 경제학자’에 꼽히기도 한 석학이다. 한국CSR(기업의 사회적책임)표준화포럼 회장 및 유한대 총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단국대 석좌교수로 있다.
김 이사장은 “2012년 이후 공공성을 높이는 책임투자를 하면 수익이 높아진다는 분명한 증거가 수치로 나오기 시작했다”며 “405조9000억 원대의 국민연금기금이 책임투자 방식으로 움직인다면 기업문화나 사회를 크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국민연금기금의 책임투자 토론회를 마련한 취지는 무엇인가.
“국민연금 같은 덩치 큰 연기금이 책임투자를 하면 장기적으로 수익률을 높일 수 있고 미래와 사회도 바꿀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지속가능한 투자다. 토론회를 연 이유도 그런 투자 개념을 확산하기 위해서였다. 신자유주의가 정착된 뒤 세계는 각종 금융위기로 몸살을 앓았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때 우리 경제가 얼마나 힘들었나. 나는 그러한 위기가 계속되는 이유가 바로 책임을 지지 않는 투자가 일반화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위기를 수습하려면 책임 있는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 부분에서 상당히 뒤처졌다.”
▼ 국민연금이 3월 말 기준 405조9000억 원 가운데 75조6000억 원을 국내주식으로 운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SRI는 1.3%인 5조2400억 원에 불과하다. SRI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보는가.
“물론이다. 아직 턱없이 적다. 전 세계 운용자산은 61조6000억 달러이며 이 가운데 SRI 자산은 약 13조6000억 달러로 21.8%에 이른다. 그런데 단기이익을 좇아 국제적으로 움직이는 헤지(hedge)펀드는 4조 달러가 채 안 된다. 그만큼 SRI 규모가 크다. 하지만 한국은 그 SRI 투자를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헤지펀드의 표적이 돼 금융시장이 혼탁해진 상황이다.
일본 기업은 CSR 평가가 좋아서 그런지 SRI 투자금을 많이 유치하고 있다. 이것이 나를 화나게 만든다. 빨리 한국 기업도 고질적 병폐로 지적되는 기업 지배구조 등을 개선해 국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SRI 펀드를 많이 유치하면 좋겠다.”
▼ 토론회에서 기금을 운용할 때 ESG 요소를 고려하도록 하고, 고려하지 않을 때는 그 이유를 공시하도록 국민연금법에 명문화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이번에 국민연금법을 그런 내용으로 개정한다면 국민연금이 더욱 적극적으로 SRI 활동을 펼칠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SRI 자금을 끌어들이려고 스스로 책임 있는 경영을 펼칠 것이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연금의 SRI 투자금이 많이 들어간 기업 제품을 더 선호하게 된다. 노르웨이의 경우 국민연금에다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금을 보태 대규모 SRI 펀드를 만들었다. 그러자 기업들이 그 자금을 따내려고 CSR 활동에 주력했다. 정부는 또 CSR 활동을 잘한 기업에게 세제감면의 혜택을 주기도 했다. 우리도 이런 선순환 구조만 정착되면 ‘착하면 돈 번다’는 사고가 확산될 것이다.”
▼ 기업들은 이 법안 통과로 ESG 요소를 강제적으로 지켜야 한다며 반대하지 않겠나.
“기업들이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보다 더 자본화된 프랑스에서도 자본주의를 더 건전하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정부가 규제에 나선다. 규제가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가 있다. 이 법안 통과로 한국의 자본주의가 더 건전해진다면 기업에 ESG 요소를 고려하게 하는 것은 어쨌든 ‘좋은 규제’가 되지 않겠나. 그러면 장기적으로 기업에도 이득이 될 것이다.”
▼ 현실적으로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은 수익성이 먼저 고려되지만 공공성도 띤다. 어느 것이 앞서는 가치인가.
“그걸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다. 공공성과 수익성을 일치하게 만든다는 가치만 있을 뿐이다. 전통적인 투자 방식에서는 두 가치가 분리된다. 하지만 SRI는 그 두 가치를 일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았다. 공공성은 추상적 용어이니 이를 ESG 요소로 생각해보자. 사실 과거에는 그런 요소를 투입하는 책임투자로 수익이 높아진다는 증거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2012년 이후에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수치가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그 뚜렷한 수치란 어떤 것인가.
“해외에서도 여러 사례가 있다. SRI 컨설팅 회사인 서스틴베스트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상장사의 ESG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은 40개 사의 지난 6년간 수익률이 코스피 수익률보다 41.3% 높았다. 반대로 ESG 평가 결과 최하위 등급을 받은 30개 사의 수익률은 코스피 수익률보다 40.7%가 낮았다.”
국민연금공단 운용 앞장 선순환 기대
▼ 국민연금관리공단 내에 책임투자팀이 3월 발족했고, 현재 방향과 원칙을 정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이 책임투자팀은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가.
“사실 책임투자팀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사회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 먼저 정부와 정치권, 언론 등이 이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사회적 여건이 조성된다. 물론 연기금을 책임투자 방식으로 운용해 손실을 입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책임투자팀이 이 방면에서 선진국인 노르웨이나 스웨덴 등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많이 배워야 할 것이다.”
▼ KoSIF가 하는 대표적 활동은 무엇인가.
“그동안 SRI 포럼, 탄소정보공개 등 여러 활동을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것이 국민연금의 책임투자와 공시 법제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정말 기적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착하면 돈 버는 ‘흥부자본주의’가 실현될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엔 대박이라는 말보다 ‘착한’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착한 아파트’ ‘착한 식당’ ‘착한 기업’…. 이것이 추세다. 한국의 자본주의를 바꾸는 데 이만한 일이 없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