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이 외국인 고객 공략에 나섰다. 내국인 대상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가운데 국내 거주 외국인이 200만 명을 넘어서자 새로운 수익원으로 주목한 것이다. 외국인 고객은 주로 출신국으로 송금하는 경우가 많아 송금 수수료를 챙길 수 있고, 출신국에 있는 가족까지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력이 크다. 이에 따라 지금 당장 큰 수익은 없지만 미래 고객 확보 차원에서 치열한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내 주요 은행은 외국인 고객을 전문직 고소득층, 투자자, 근로자 등으로 세분화해 그에 맞는 특화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다. 또한 국내 은행은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가 주로 모여 사는 경기 안산시 원곡동, 서울 대림동·혜화동 등에서 외국인 특화 점포를 운영 중이다. 이들 외국인 특화 점포는 평일에는 생업 때문에 은행을 찾기 어려운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토·일요일 문을 열고, 주중에도 오후 6시 이후까지 연장 근무를 한다. 베트남어, 러시아어, 타이어 등 원어민 직원도 배치해 편의성을 높였다. KEB하나은행이 가장 많은 16개 특화 점포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은행은 10개,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4개, 2개 특화 점포를 열었다.
특히 중국인 거주자나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중국인 전용 창구를 설치하는 추세다. 우리은행은 최근 서울 구로동과 구로본동 등에도 중국 고객 데스크를 설치해 총 5곳으로 늘렸고, 신한은행도 대림동과 제주중앙금융센터에 중국인 창구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중국 원어민 직원을 두고 각종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금융서비스 외 외국인의 향수를 달래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우리은행은 몽골인이 많이 찾는 광희동지점과 필리핀인이 주요 고객인 혜화동지점에 해외 현지에서 직접 구매한 서적과 음악 CD, 영화 DVD 등을 구비한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투자 이민, 부동산 투자, 자산관리 컨설팅
지난해부터 외국인 전담 조직을 신설해 심도 있는 영업에 나선 은행이 많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초 ‘외국인 고객부’를,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 ‘외국인 영업부’를 만들었다. 이들 부서는 외국인 대상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관련 상품 개발, 전담 영업인력 양성 등을 맡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해 초 외국인투자사업부를 신설해 외국인의 국내 투자에 필요한 각종 금융지원 업무를 강화했다.
이를 통해 외국인 VIP 고객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서울 중구 소공로본점을 비롯해 서울스퀘어, 한남동, 삼성타운, 삼성반도체, 판교테크노밸리 등 대기업이나 연구소, 외교 사절 등이 주로 몰려 있는 지역에 전문직 외국인을 위한 글로벌 데스크 8개를 만들었다. KEB하나은행은 매년 외국인 VIP 고객을 초청해 템플스테이나 비무장지대(DMZ) 자전거투어 같은 이벤트를 실시한다.
한국에 투자하는 큰손 외국인도 새로운 공략 대상이다. 이들은 투자 단위가 크고 다양한 부가 서비스 수요도 따라오기 때문에 은행 처지에서는 VVIP 고객이다. 신한은행은 올해 초 제주에 신한제주FDI센터를 만들어 제주 투자를 원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금융서비스에 나섰다. 이로써 총 15개의 FDI센터를 갖췄다. KB국민은행도 본점에 외국인 직접투자 관련 상담팀을 운영 중이다. 외국인 직접투자, 투자 이민, 부동산 투자, 자산관리 등에 대한 종합 컨설팅을 제공한다.
특히 은행권은 외국인의 가장 큰 수요인 송금 서비스에 주목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국가별 해외 송금 서비스를 모바일로 개발했고, KEB하나은행은 ‘이지-원 외화송금서비스’를 통해 입금만 하면 본국에 자동으로 송금되는 특화 서비스를 내놨다. 우리은행은 모바일로 24시간 365일 송금할 수 있는 ‘머니그램 송금’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외국인만을 위한 금융상품도 속속 내놓고 있다. 신한은행은 입출금통장과 후불·선불 교통카드, 신용카드 등을 외국인 전용으로 출시했고, KEB하나은행도 외국인을 위한 급여통장, 적금, 예금 패키지 상품인 ‘이지-원 팩’을 통해 외국인 자산관리를 지원한다.
디지털뱅킹이 일반화한 만큼 외국인 고객 전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출시도 잇따르고 있다. 신한은행은 1월 외국인 전용 비대면 플랫폼 ‘글로벌S뱅크’를 내놨다. 이 앱은 총 11개 국어로 이용할 수 있다. KEB하나은행 역시 14개 국어로 이용 가능한 모바일뱅킹 ‘하나 1Q뱅크 글로벌’을, 우리은행은 이미 2013년 8개 국어로 서비스하는 ‘우리글로벌뱅킹’을 선보였다.
비대면 소통채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모바일 메신저 ‘위비톡’에서 10개 국어로 가능한 ‘실시간 외국어 대화 번역 서비스’를 선보였고, 신한은행은 4개 국어로 페이스북을 운영 중이다. KEB하나은행 역시 영문 페이스북을 통해 은행 상품과 서비스를 알리고 소통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은행이 외국인 공략에 나선 이유는 갈수록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우리나라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200만1828명을 기록했다. 2007년 100만 명을 돌파한 이래 9년 만에 200만 명을 넘어선 것이다. 은행의 외국인 고객 수도 증가세다. KB국민은행의 외국인 고객 수는 지난해 말 기준 78만2000명으로 전년 대비 4만3000명가량 늘었다. 신한은행의 외국인 고객 수 역시 2015년 말 55만 명 수준이었지만, 올해 3월 60만 명을 돌파했다.
다국어 서비스, SNS 홍보 적극
외국인 투자도 늘고 있어 FDI(외국인직접투자)와 관련된 환전과 송금 수요도 따라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신고 기준으로 213억 달러(약 23조9500억 원)를 기록해 전년 209억1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특히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취득이 늘어나는 추세다. KB금융경영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말 기준 외국인의 토지 보유 면적은 232.2km2로 2011년에 비해 24% 증가했다. 중국인의 토지 보유 면적은 지난해 말 13.2km2로 5년 새 360% 급증했다.은행권은 고객 기반 확대와 수익성 다변화를 위해 외국인 고객 유치가 필요하다는 처지다. 금리가 높던 시기에는 예금과 대출금리 간 차이(예대마진)로 수익을 올릴 수 있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예대마진이 크게 줄어든 상태다. 은행들은 비이자 수익 증가의 한 축으로 외국인 고객의 환전 및 송금 수수료를 꼽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외국인 고객이 꾸준히 늘면서 새로운 수익원이 되고 있다”며 “은행권의 해외 진출이 활발한데, 한국에서 고객이던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면 현지에서도 계속 고객으로 남을 수 있고 현지 가족이나 친지 등도 함께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