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한미관계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아태) 정책에서 양대 기둥 구실을 해왔다. 한미일 3국은 안보 문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등 전 분야에 걸쳐 가치를 공유해온 사이다. 하지만 냉전 종식 후 한일 간 미완의 역사 및 영토 문제가 미국 정책 방향의 발목을 잡았다.
중국의 해양 공세가 거세지고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되는 등 안보 정세가 심각해지면서 한일 대립은 미국에 매우 뼈아픈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지금 같은 분열 상태를 이어간다면 대북제재, 북한 탄도미사일 억지 등 안보 문제 대응을 위한 3국 공조가 어려워진다.
아태지역 내 미국의 이익에 관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주요 내용은 이런 것이다. ‘중국, 일본과 무역협상은 잘못됐다’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는 미국에게 손해다’ ‘일본과 한국은 자국 내 주둔 미군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은 미국이 화낼 일이 아니다’ 등등.
버락 오바마 정부 때는 달랐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 기조가 여러 정황을 통해 확인됐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우호협력조약 서명, 아세안 미국대사 지명, 미얀마 정권교체를 위한 막후 노력, 중국과 전략적·경제적 양자 대화(Strategic and Economic Dialogue),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이 그것이다.
TPP 추진은 이러한 오바마 정부의 태도를 결정적으로 보여줬다. 지난해 8월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미국 상공회의소 연설을 통해 “미 의회의 TPP 비준이야말로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대한) 신용도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TPP 탈퇴를 선언했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 일본과 특별한 관계에 기반을 두고 중국을 견제하고자 고도화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미국의 대(對)중국 행보는 일본이나 한국의 이해관계와 부합하지 않을 때가 있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거세지는 동안 일본은 미국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분쟁에서 확실하게 일본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에 대해 노심초사했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가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이어질까 전전긍긍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이나 환율 문제, 또는 남중국해 문제를 빌미로 중국과 대립을 이어간다면 미국과 일본, 한국의 의견 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또 미국 외교가에서는 한일 양국 정치인 사이에서 상호 비방이 난무하는 이슈가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미국 외교정책은 역사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적이면서 감정을 동반하지 않는 계산법으로 작동한다. 지난 20년간 한일 협력을 막아온 역사 문제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은 심각한 수준이다.
1965년 6월 한일 양국은 일본이 한국에 8억 달러를 지급하고 국교를 정상화했다. 이후 30년간 양국관계는 부침을 거듭하다 98년 10월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정상회담을 통해 가장 좋은 국면에 도달했다. 당시 오부치 일본 총리는 과거 식민통치 시절 일본이 저지른 과오를 공식 사과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전후 일본이 이룩한 성과를 높게 평가하면서 ‘이제 어두운 역사는 뒤로하겠다’는 약속으로 화답했다. 2002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로 양국 문화교류가 절정을 이뤘고, 한일관계도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준이치로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가 겹치는 시점에서(노무현 전 대통령도 일부 관련된다) 한미일 삼국 관계에 제동이 걸렸다. 부시 전 대통령이 ‘악의 축’ 발언을 통해 앞서 클린턴 정부가 추구해온 대북 화해모드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반하는 것이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9·11 사태를 계기로 미·일 안보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사상 처음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하면서 군사력을 과시했다. 미·일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중·일, 한일관계는 그만큼 악화됐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가 약 20년간 중단됐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재개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2014년 3월 미국이 동북아지역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 악화에 우려를 표하자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마지못해 아베 총리, 오바마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껄끄러운 관계는 여전하다. 여기에 최근 평화의 소녀상(위안부상)을 둘러싼 다툼까지 더해졌다.
일본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합의를 통해 한국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상 철거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철거 자체를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한 민간단체가 위안부상을 추가로 설치했고, 일본은 대사 및 영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두 나라 모두 관계 개선에 힘쓰기보다 각국 국수주의자들에게 점수를 따려고 혈안이 된 형국이다.
미국 앞에는 동북아지역에 걸린 여러 문제가 놓여 있고, 이제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트럼프 행정부의 몫일 것이다. 중국과 관계는 한동안 시험대에 올라 있을 테고 북한의 ‘나쁜 행동’도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이를 해결하려면 미국은 한일 양국 지도자를 설득해 서로를 갈라서게 만드는 영역을 줄이고 함께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최근 들어 미미하지만 한일관계가 나아지는 모습이 보여 희망적이다. 하지만 일본 내 국수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아베 총리가 향후 몇 년간 총리직을 유지할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일관계 개선을 공약한 한국 대선후보는 아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두 나라를 하나로 엮는 작업은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미국 제일주의’를 외치고 동맹과 다자주의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 될 테다.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 초점이 ISIS에 있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 미국이 가장 중요한 아시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상호협력에 과연 얼마나 정책적 에너지를 쓸지 미지수다.
중국의 해양 공세가 거세지고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되는 등 안보 정세가 심각해지면서 한일 대립은 미국에 매우 뼈아픈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지금 같은 분열 상태를 이어간다면 대북제재, 북한 탄도미사일 억지 등 안보 문제 대응을 위한 3국 공조가 어려워진다.
TPP 탈퇴는 달라진 아시아 정책 신호탄?
한일 양국관계 봉합을 위한 미국의 노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또 다른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캠페인 내내, 그리고 당선 직후 발언 등을 통해서도 미국 안보 문제의 초점을 ISIS(The Islam State of Iraq and Syria·이슬람국가)와 과격한 이슬람 근본주의에 맞췄다.아태지역 내 미국의 이익에 관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주요 내용은 이런 것이다. ‘중국, 일본과 무역협상은 잘못됐다’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는 미국에게 손해다’ ‘일본과 한국은 자국 내 주둔 미군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은 미국이 화낼 일이 아니다’ 등등.
버락 오바마 정부 때는 달랐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 기조가 여러 정황을 통해 확인됐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우호협력조약 서명, 아세안 미국대사 지명, 미얀마 정권교체를 위한 막후 노력, 중국과 전략적·경제적 양자 대화(Strategic and Economic Dialogue),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이 그것이다.
TPP 추진은 이러한 오바마 정부의 태도를 결정적으로 보여줬다. 지난해 8월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미국 상공회의소 연설을 통해 “미 의회의 TPP 비준이야말로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대한) 신용도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TPP 탈퇴를 선언했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 일본과 특별한 관계에 기반을 두고 중국을 견제하고자 고도화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미국의 대(對)중국 행보는 일본이나 한국의 이해관계와 부합하지 않을 때가 있다.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거세지는 동안 일본은 미국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분쟁에서 확실하게 일본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에 대해 노심초사했다.
한국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가 중국의 경제 보복으로 이어질까 전전긍긍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이나 환율 문제, 또는 남중국해 문제를 빌미로 중국과 대립을 이어간다면 미국과 일본, 한국의 의견 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또 미국 외교가에서는 한일 양국 정치인 사이에서 상호 비방이 난무하는 이슈가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미국 외교정책은 역사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적이면서 감정을 동반하지 않는 계산법으로 작동한다. 지난 20년간 한일 협력을 막아온 역사 문제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은 심각한 수준이다.
1965년 6월 한일 양국은 일본이 한국에 8억 달러를 지급하고 국교를 정상화했다. 이후 30년간 양국관계는 부침을 거듭하다 98년 10월 김대중-오부치 게이조 정상회담을 통해 가장 좋은 국면에 도달했다. 당시 오부치 일본 총리는 과거 식민통치 시절 일본이 저지른 과오를 공식 사과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전후 일본이 이룩한 성과를 높게 평가하면서 ‘이제 어두운 역사는 뒤로하겠다’는 약속으로 화답했다. 2002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로 양국 문화교류가 절정을 이뤘고, 한일관계도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준이치로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가 겹치는 시점에서(노무현 전 대통령도 일부 관련된다) 한미일 삼국 관계에 제동이 걸렸다. 부시 전 대통령이 ‘악의 축’ 발언을 통해 앞서 클린턴 정부가 추구해온 대북 화해모드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반하는 것이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9·11 사태를 계기로 미·일 안보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사상 처음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견하면서 군사력을 과시했다. 미·일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중·일, 한일관계는 그만큼 악화됐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가 약 20년간 중단됐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재개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트럼프, 한일 협력 관심이나 있나
이명박 정부는 아소 다로 일본 외무대신과 2008년 사사분기부터 2009년 일사분기 까지 8번이나 만나는 등 한일관계를 개선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집권한 후 양국관계는 다시 악화됐다.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평화헌법 개정 요구, 독도(다케시마) 영유권 주장 등을 외쳤다. 한국 내 반일감정이 커졌고, 아베 총리에 대한 한국 내 비판 여론은 북한 김정은에 대한 것보다 더 거세졌다.2014년 3월 미국이 동북아지역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 악화에 우려를 표하자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마지못해 아베 총리, 오바마 대통령과 마주 앉았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껄끄러운 관계는 여전하다. 여기에 최근 평화의 소녀상(위안부상)을 둘러싼 다툼까지 더해졌다.
일본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합의를 통해 한국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상 철거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철거 자체를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한 민간단체가 위안부상을 추가로 설치했고, 일본은 대사 및 영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두 나라 모두 관계 개선에 힘쓰기보다 각국 국수주의자들에게 점수를 따려고 혈안이 된 형국이다.
미국 앞에는 동북아지역에 걸린 여러 문제가 놓여 있고, 이제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트럼프 행정부의 몫일 것이다. 중국과 관계는 한동안 시험대에 올라 있을 테고 북한의 ‘나쁜 행동’도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이를 해결하려면 미국은 한일 양국 지도자를 설득해 서로를 갈라서게 만드는 영역을 줄이고 함께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최근 들어 미미하지만 한일관계가 나아지는 모습이 보여 희망적이다. 하지만 일본 내 국수주의는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아베 총리가 향후 몇 년간 총리직을 유지할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일관계 개선을 공약한 한국 대선후보는 아무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두 나라를 하나로 엮는 작업은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미국 제일주의’를 외치고 동맹과 다자주의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 될 테다. 트럼프 행정부의 안보 초점이 ISIS에 있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보면, 미국이 가장 중요한 아시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의 상호협력에 과연 얼마나 정책적 에너지를 쓸지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