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체감 경기는 아직도 한파에 시달리는데 한국 증시는 박스권(코스피 1800~2100)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외국인의 신흥국 매수세가 확대되고 국내 기업의 실적 개선이 두드러지면서 증시 상승세가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증시 상승세가 계속될지 투자자의 우려는 증폭되고 있다. 외국인은 매수를 이어가지만 기관은 매도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주식투자에 나서야 할까, 아니면 여전히 현금을 보유한 채 언제 올지 모르는 금융위기에 대비해야 할까.
증권가는 엇갈린 분석을 내놓는다. 국내 증시의 상승세가 내년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코스피와 코스닥이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조정 기간에 매수하라는 긍정론과 정보기술(IT)을 제외한 대부분 업종이 추정 실적에 비해 주가 상승폭이 큰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는 신중론이 맞서고 있다.
올해도 기업 실적 100조 원 넘을 것
일단 긍정론부터 들어보자. 국내 증시의 상승세가 이어졌던 원인으로 △ 미국 등 선진국 중심의 경기회복 △외국인의 줄기찬 매수 △ 지난해 하반기부터 진행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등 정치적 불확실성의 해소 △ 국내 기업들의 실적 개선 등을 꼽는다.
지난해 코스피 상장 기업의 연간 순이익 합계가 100조 원을 넘어섰다. 올해 일사분기 순이익도 25조 원 이상으로 예상돼 올해도 100조 원을 넘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업 실적이 연간 80조 원에 머물렀을 때 박스피(박스권+코스피)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00조 원을 넘어선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감안해도 박스권을 벗어나는 상승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외국인 매수세가 당분간 지속되리라는 분석이다. 탄핵정국이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의 해소와 기업 실적에 대한 기대감으로 외국인은 올 들어 5조1120억 원 순매수를 기록 중이다.
1월과 2월 각각 1조6378억 원, 3076억 원어치를 사들인 외국인은 3월 들어 10거래일 만에 3조1666억 원어치 주식을 쓸어 담았다. 그 덕에 코스피는 23일 장중 한때 2180선을 넘어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2172.72로 장을 마쳤다.
외국인 매수세가 이어지다 보니 원-달러 환율이 3월 23일 1121.5원에 장을 마쳤다. 이 센터장은 “외국인이 원화절상 등 환차익을 위해 국내 주식과 채권을 쓸어 담고 있다”며 “원-달러 환율이 낮아지는 이유도 외국인의 이 같은 매수세 때문이다. 국내 주식을 사려면 원화를 취득해야 해 원화 수요도 많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중론은 먼저, 기관의 매도세를 거론한다. 기관은 3월 7일(1000억 원 순매수)을 제외하고 모두 순매도로 일관했다. 외국인이 3일(319억 원 순매도)과 20일(848억 원 순매도)을 제외하고 꾸준히 순매수하는 것과는 반대 양상이다.
코스피가 2100선을 넘어서면서 펀드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이 쇄도한 탓에 기관 매도세가 멈추지 않고 있는 것. 연기금도 중·장기적으로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기로 하면서 기관 매도세에 힘을 보태고 있다.
신중론은 또 IT 외 나머지 업종에서 펀더멘탈 개선보다 주가 상승이 앞서가는 경우도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실제로 올해 코스피 순이익의 예상치 상향 조정에 대한 업종별 기여도를 보면 반도체업종의 기여도가 110.4%로 나타났다”면서 “반도체업종의 실적 상향 조정 폭이 코스피의 전체 실적 상향 조정 폭을 웃돌고 있는데, 삼성전자 기여도만 69%를 차지한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펀더멘탈 개선보다 주가 상승이 먼저 진행된 업종은 향후 실적이 주가 상승을 뒷받침하기 어렵다는 의심이 들 경우 차익 실현 매물도 곧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이 같은 움직임이 국내 증시의 상승세를 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화학, 철강, IT에 외국인 매수 집중
이 연구원은 “IT 가전과 반도체, 화학업종 등을 제외하면 대체로 지수 상승률이 실적 개선 폭보다 높았다”며 “펀더멘탈 개선보다 지수 상승이 먼저 진행된 업종은 시간이 지날수록 실제 실적이 주가 상승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차별화된 실적 모멘텀을 바탕으로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여유가 있는 IT 중심의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올해 글로벌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둔화할 것이라는 점도 지적된다. 올해 일사분기 글로벌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사사분기와 비교하면 신흥국은 둔화되고 선진국은 동일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올해 일사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9%로 지난해 사사분기 1.9%보다 둔화될 전망이다. 중국의 GDP 성장률도 지난해 사사분기 6.8%를 정점으로 올해 내내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 기대치가 증시에 반영돼 앞서가지만 실제 지표는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긍정론과 신중론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전략은 조정기에 IT 중심으로 매수전략을 세우라는 것이다. 또 1년 사이 실적 대비 주가 하락이 깊었던 과대낙폭 업종과 종목을 찾아보라는 조언도 있었다. IT 업종은 실적이 확실하고 과대낙폭 업종은 이미 바닥을 확인해 추가 하락 폭이 크지 않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서보익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이 증시를 이끌고 있는 만큼 그들의 매수세가 집중되는 화학, 철강, IT, 금융 등에 단기적으로 투자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형주에 대한 추천도 이어졌다. 코스닥은 지난 1년 동안 하락 기조였다. 성장성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까지 겹쳐 중국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중소형주의 추풍낙엽 같은 하락이 계속됐다.
그러나 실적이 견고한데도 사드 등 대외적 문제로 주가가 하락한 과대낙폭 종목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차기 정부가 중소기업육성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을 감안하면 내년부터 중소형주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손세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소형주의 상승세는 차기 정부 집권 2년 차인 내년부터 탄력을 받을 것”이라며 “대체적으로 정권 2년 차에 중소기업육성 정책 등의 수혜로 코스닥 상승세가 이어지는데, 사드 문제 해결 등이 더해져 상승 기조가 확연해질 것으로 점쳐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