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도형이 있다. 수학자이자 이론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가 고안한 ‘펜로즈 삼각형’이 그것이다. 삼각형 입체 그림을 가만 보니 뭔가 이상하다. 윗면인 듯한데 어느새 아랫면이 되고, 옆면이라 생각하면 또 어느새 윗면으로 바뀐다. 가로, 세로, 높이를 가진 3차원 세상의 원리는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고 앞이 있으면 뒤가 있는 법인데, 펜로즈 삼각형은 위와 아래, 앞과 뒤 구분이 없다.
펜로즈가 제시한 삼각형 이미지는 2차원 평면 그림에서나 존재하는 비현실의 삼각형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되는 만사 평등한 도형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공간을 보여주기에 더 재미있다. 3차원 공간에서 재현한 펜로즈 삼각형이 있긴 하다. 호주에 있는 이 구조물은 한 각도에서 볼 때만 삼각형이다. 특정한 각도를 벗어나면 어김없이 삼각형은 깨진다. 붙어 있던 꼭짓점이 벌어져 정체불명의 직선으로 변한다. 다시 위치를 옮겨 특정한 각도에서 보면 비현실적인 삼각형이 현실에 드러난다.
형상과 배경을 같이 봐야 하는 이유
사람들은 3차원 현실에 익숙한 눈이 익숙지 않은 ‘차원’을 마주하면 이 새로운 수수께끼의 진실을 찾으려 애쓴다. 게임 ‘모뉴먼트밸리(Monument Valley)’는 펜로즈 삼각형처럼, 익숙한 공간을 비틀어 만든 비현실성으로 시각을 자극한다. 우연히 다운로드한 게임을 시작하고는 손을 놓기 힘들 정도로 빠져들었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화려한 파스텔톤 색감에 매료됐는데,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었다.
캐릭터가 탐험하는 과정에서 펜로즈 삼각형처럼 3차원 구조가 뒤집히는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게임 도중에 길이 막혀 출구로 나가는 길을 도저히 찾지 못해 헤매게 되는데, 여러 시도를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실마리가 풀린다. 다리가 돌아가더니 난간과 이어지고, 아래와 위가 연결되는 등 3차원 공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공간이 창조되는 것이다. 별 볼 일 없던 아래쪽이 해결의 실마리로 작용하는 반전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잠자코 배경으로 자리하던 엑스트라 구조물이 주인공으로 올라서자 시선은 익숙한 형상을 벗어나 숨은 구석구석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보이되 보이지 않고, 들리되 들리지 않는
우리의 시각은 드러나는 형상과 뒤에서 돕는 배경을 동시에 보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보다 인기를 끄는 서브 주인공이 있긴 하지만 주인공 친구 3, 4, 5에게는 좀처럼 관심을 주지 않는다. 크거나 뚜렷하고 눈에 잘 띄는 형상의 강한 힘에 끌려 조용한 배경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배경 또한 “나 좀 봐주시오”라며 스스로 일어날 시각적 힘이 없다. 그러나 이미지 세계에서 형상과 배경은 의외로 손쉽게 뒤집을 수 있다. 열쇠는 배경의 반전을 돕는 경계선에 있다.
말레이시아 KFC 광고는 경계선을 공유하는 형상과 배경의 원리를 잘 활용했다. 아이가 목을 뒤로 젖힌 채 크게 입을 벌린 광고 안의 장면 아래 ‘KFC sogood’이라는 작은 카피가 있다. 더할 나위 없이 맛있다는 뜻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아이의 큰 입모양이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어찌 보니 입이 아니라 닭다리다. 한 귀퉁이를 베어 먹은 모양이 절묘하게 아이의 치아처럼 보인다. 고개가 절로 넘어갈 정도로 좋아 까르르 웃는 장면인지, 치킨을 사달라고 떼쓰며 우는 장면인지 확실치 않지만 치킨을 원하는 아이의 욕망만은 뚜렷하게 전달된다. 입모양과 닭다리모양이 하나의 경계선을 공유하며 공존하는 장면에서 눈은 주인공을 찾기에 바쁘다. 입인가. 닭다리인가. 둘 다 주인공이기도, 배경이기도 한 사이좋은 이미지다.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시선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아이처럼 닭다리 하나를 입에 물고 싶어진다면 경계선을 공유하는 광고의 의도는 성공한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나온 장면도 비슷하다. 모두 고개를 젖힌 채 크게 벌린 입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한 아이의 입모양은 햄버거, 다른 아이의 입모양은 감자튀김이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치킨, 햄버거, 감자튀김을 얼른 사줘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눈으로 본 것을 생각하고 그린다. 그러나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눈에 띄지 않는 배경의 진가를 알게 된다. 미술사가 오주석이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에서 그림 보는 법을 설명하는 부분에 그 힌트가 있다.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마음을 기울여 찬찬히 대화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그 속내를 내보입니다’에 이어 그는 시이불견(視而不見)과 청이불문(聽而不聞)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시이불견이란 ‘보기는 보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고, 청이불문은 ‘듣기는 듣는데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라면서, 왜 보는데 안 보이고 듣는데 안 들리냐고 반문한다. 왜일까. 찬찬히 보고 들을 마음이 없이 건성으로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형상에만 마음이 가 있으면 배경이 들어올 틈이 없다. 마음을 다해 관찰한다면 뒤에서 열심히 일하는 배경의 신선한 이야기가 보일지도 모른다. 이미지든, 사람이든 마음과 마음은 통하기 마련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