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30분에 서울역을 출발한 호남선 준급행 3등칸은 전깃불마저 켜지지 않았고 의자는 낡을 대로 낡은 데다 의자 커버도 태반이 찢어져 흡사 화물차를 방불케 했다.’(‘매일경제’ 1968년 10월 25일자 ‘너무나 서글픈 3등객차’ 중에서)
1960년대 말 기차는 새롭게 등장한 고속버스에 밀려 승객들로부터 외면당했다. 하지만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전혀 다른 상황과 마주한다. 강봉규(75)의 사진 ‘호남선 3등 열차 2’(1960)를 보자. 기차 문에 매달린 밀짚모자 아저씨, 선로에 내려와 발이라도 밀어 넣을 틈을 찾아 서성이는 쪽머리 아주머니, 체념하고 돌아서는 화난 표정의 소년. 장거리 여행에서 기차가 서민의 유일한 발이던 시절, 호남선 열차는 몰려든 인파로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다. 그 현장에 사진작가 강봉규의 카메라가 있었다.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기증작가 초대전 ‘강봉규의 사진 : 인간극장’이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60여 년에 걸쳐 광주지역을 중심으로 기록해온 역사적 사건과 동시대 서민의 삶, 제례와 굿판 같은 전통문화를 담은 사진들을 선보인다.
전시는 크게 3개 세션으로 구성됐다. 1부는 ‘보편적인 인간극장을 그리다’라는 주제 아래 ‘동시대 현장기록’ ‘사람 사는 이야기’ ‘지역 양식과 정신’으로 세분화해 전시된다. 4·19혁명의 현장(‘경찰봉에 제지받고 있는 학생들’·1960)에서부터 지리산 청학동으로 옮기기 전 남원 도통리 사람들의 전통적인 삶(‘환호-남원 도통리’·1972)까지 평범한 이들이 보여주는 결정적 순간과 사라지는 것에 대한 향수를 담았다. 2부 ‘세대기억, 이미지의 원형을 전하다’에서는 ‘극락왕생 거릿제-전남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1967), ‘논길-충북 중원군’(1980) 등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멀어져가는 전통문화를 되새기고 한국인의 정신세계 원형을 찾아간다. 3부 ‘편집, 기획자로서의 사진가’에서는 월간 ‘사람 사는 이야기’ 발행인 겸 편집장 시절 찍은 잡지와 화보집 속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강봉규 작가는 1960년부터 20년간 ‘전남일보’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했고 94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현대사진 흐름전’, 2002년 일본 한일문화교류 5개 도시 ‘한국인의 고향전’, 2006년 금호미술관 기획초대전 ‘지구촌 아름다운 사람’,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사진 60년’, 2009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초대전 ‘멈추지 않는 시간’, 2011년 영국 런던 한국문화원 초대전 ‘강봉규 코리안, 코리아니티’, 2013년 광주시립미술관 원로작가초대전 ‘강봉규 나무와 사람’ 등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해 자신의 작품 중 100여 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이번 기증작가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강봉규의 사진 : 인간극장
기간 12월 18일까지
장소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