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국내 메이저 대회 ‘하이트진로챔피언십’은 해외 메이저 대회의 장점을 모두 따온, 볼거리 풍성한 대회였다. 올해까지 17회를 소화한 이 대회는 현재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32개 대회 중 유독 색다른 시도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일 기업이 오랫동안 스폰서를 해온 데다 대회장도 2002년부터 경기 여주시 블루헤런컨트리클럽으로 정해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 대회의 특징은 챔피언의 맥주 세리머니와 맥주 세례, 그리고 갤러리에게 제공되는 무료 맥주 서비스다. 주최사가 맥주회사인 만큼 2003년 제4회 대회부터 우승자는 둥근 우승컵에 가득 채운 맥주를 마셨다. 2004년 제5회 대회에서 우승한 박희영이 당시 미성년자인 18세 아마추어라 빈 컵을 든 게 유일한 예외였다. 올해는 고진영이 6타 차로 챔피언 퍼팅에 성공하자 함께 경기를 치른 선수들이 맥주를 흠뻑 뿌려줬다. 고진영은 우승컵에 가득 따른 맥주를 ‘원샷’이라도 할 듯 마셨고, 갤러리들은 갤러리플라자에서 무료로 맥주를 즐겼다.
이 밖에도 올해는 더욱 다양한 이벤트가 열렸다. 국내 대회 최초로 본 대회 전날 연습 라운드를 개방해 팬들이 골프장을 돌아보면서 선수들의 연습 샷을 촬영할 수 있게 했다. 대회 전날을 공식 ‘팬스데이(Fan’s Day)’로 정하고 특정(1, 10번) 홀을 ‘하이파이브존’이라고 이름 붙여 선수와 대화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선수와 팬이 기념촬영을 하는 ‘포토존’도 만들었다.
마스터스는 본 대회 사흘 전인 월요일부터 출입 티켓을 판매한다. 마스터스 대회장이 며칠 전부터 갤러리로 북적거리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 반면, 국내 골프 대회는 하루 전날 프로암대회를 여는데, 스폰서가 VIP를 접대하는 날이다. 하지만 하이트진로챔피언십은 프로암을 없애고 이를 골프팬의 몫으로 돌렸다. 전인지, 김하늘 등 해외파 선수가 다수 출전한 가운데 연습 라운드 개방이라는 전략으로 대회 품격을 높였다. 태풍이 온다는 일기예보와 실제 비가 오는 날씨에도 갤러리들은 선수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관전하고 코스를 둘러봤다.
대회 전날 진행한 이벤트 행사도 주목받았다. 선수와 아버지가 한 팀이 돼 포섬으로 겨루는 ‘패밀리골프대항전’이 바로 그것. 선수가 티샷을 하면 세컨드 샷을 아버지가 하고 그 공이 그린에 오르면 선수가 다시 퍼팅을 하는 교대 샷 방식이었다. 이는 마스터스에서 본 대회 하루 전날 진행하는 ‘파3 콘테스트’를 본뜬 개념이다. 4개 팀이 출전한 가운데 16번 홀에서부터 3개 홀을 겨뤄 정재은 선수 부녀가 우승했고 상금 500만 원을 불우이웃에게 기부했다.
미국 L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챔피언십은 대회장에서 유난히 핑크색을 많이 볼 수 있다. 선수와 팬이 핑크빛으로 어우러지는 컬러 마케팅이 성공한 대회로 여겨진다. 이를 벤치마킹해 주말 3, 4라운드를 ‘블루데이(Blue Day)’로 정하고 파란색으로 드레스코드를 맞췄다. 4라운드에는 선수들도 파란색 계통의 옷을 입고 출전해 대회장이 온통 푸른 물결을 이뤘다.
이번 대회 주최 측은 코스도 특별하게 세팅했다. 15~18번 4개 홀을 ‘헤런스픽(Heron’s Pick)’으로 명명하고 마스터스의 ‘아멘코너’처럼 홀 흐름에 승부를 예측할 수 없도록 다양하고 다이내믹한 변화를 줬다. 블루헤런의 우리말은 푸른 학, 즉 청학(靑鶴)이다. 올해 마지막 4개 홀의 콘셉트는 ‘어려운 홀은 더 어렵게, 쉬운 홀은 더 짜릿하게’였다. 3, 4라운드에서 15, 16번 홀의 길이를 늘렸고, 18번 홀은 KLPGA와 협의해 투온도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17, 18번 홀에서 나흘 동안 이글 5개(17번 홀 1개, 18번 홀 4개)가 나왔다. 마지막 4개 홀에서 더 박진감 넘치는 대회가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