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서울 한강변 자전거도로는 자전거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0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경주용 자전거부터 이제는 쉽게 보기 힘든 ‘쌀집 자전거’까지, 운전자의 모습만큼이나 각양각색인 자전거가 자전거도로를 달린다. 현재 국내 자전거 인구는 업계 추산 1200만 명. 전체 인구의 약 4분의 1이 자전거를 타는 셈이다. 친환경 교통수단이자 건강을 위한 레저용품인 자전거가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문제는 자전거 이용자가 늘어난 만큼 자전거로 인한 사고 역시 증가세라는 점.
평지 최고시속이 50km를 넘다 보니 달리는 자전거에 사람이 부딪치는 등 사고가 발생할 경우 자전거 주행자와 상대방 모두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이유로 2009년 자전거보험이 등장했다. 자전거 대수가 늘고 사고도 빈번하니 당연히 자전거보험 가입률도 높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변호사 선임비용 보장 빼고는 장점 없어
서울 송파구가 자전거 대여소와 수리센터를 이용하는 주민 2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7.3%가 ‘자전거보험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실제 자전거보험 가입자는 5%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보험업체는 자전거보험 상품을 아예 없애거나 보장 내용을 축소하고 있다. 보험업계에서 자전거보험이 계륵이 된 것.경찰청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자전거 교통사고는 2005년 7976건에서 2014년 1만7471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으며, 2014년 한 해에만 자전거 사고로 숨진 이가 283명에 달했다. 단순 계산으로 2014년 한 해에만 하루 약 47건의 자전거 사고가 발생했고, 닷새에 4명꼴로 자전거 사고로 사망한 셈이다.
이처럼 자전거 사고가 매년 크게 늘고 있지만 자전거 사고 피해를 보장해주는 자전거보험 가입자 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보험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자전거보험 가입 건수는 자전거보험 출시 첫해인 2009년 8만9792건이었으나 2010년 3만8778건, 2012년 3만7823건, 2014년 2만156건으로 계속 줄고 있다.
사고가 증가하는 데 보험 가입은 줄어드는 기현상이 생긴 이유는 자전거보험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자전거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는 현대해상화재보험, 삼성화재, 새마을금고보험, 메드인 총 4곳이다. 각 업체가 다른 이름의 자전거보험을 판매하고 있지만 보장 내용이나 범위는 대동소이하다. 자전거보험은 크게 자전거 사고로 피보험자가 입은 피해(사망 또는 후유장애, 상해입원 등)를 보장해주는 상품과 피보험자가 사고를 일으킨 경우 상대방에게 물어줘야 할 배상금, 변호사 선임비용, 교통사고 처리 지원금 등을 보장해주는 특약상품으로 나뉜다.
문제는 자전거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이 같은 보장을 받을 길이 많다는 사실이다. 자전거 사고를 비롯한 각종 사고로 상해를 입었을 경우 치료비를 보상해주는 실손의료보험(실비보험)에 가입돼 있다면 자전거보험과 비슷한 수준의 보장을 받을 수 있다. 강석진 프라임에셋 재무설계사는 “실비보험에 자전거 사고도 보장 범위에 포함돼 자전거보험만큼 치료비를 받을 수 있다. 자전거를 타다 사고를 일으켜 타인을 다치게 했을 경우에도 가입한 실비보험에 ‘일상생활 중 배상책임’ 보장 내용이 있다면 보험사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타인을 다치게 하거나 타인의 물건을 파손했을 때 보험사가 변상해주는 기능이다. 자전거를 타는 것도 엄연한 일상생활이므로 자전거로 다른 사람에게 상해나 손해를 입힌 경우 실비보험만 있어도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기자가 4개 보험사에 자전거보험 가입을 문의한 결과 모두 “일상생활 중 배상책임이 있는 실비보험에 가입했다면 굳이 자전거보험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부 보험사는 “실비보험으로는 사고 피해자가 사망해 형사재판에 회부될 경우 변호사 선임비용이 보장되지 않으니 그 부분이 걱정된다면 가입을 고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도난과 파손에도 속수무책
하지만 실비보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피해 사례도 있다. 실비보험은 각종 사고로 상해를 입거나 입힐 경우 보상 또는 배상이 가능하지만, 피보험자 소유의 자전거가 파손되거나 도난 피해를 입었을 때는 속수무책. 그렇다면 자전거보험은 어떨까. 이름이 무색하게도 자전거보험에도 도난 피해와 관련한 보장 내용은 아예 없고, 파손에 대한 보장 특약 또한 없애거나 축소하는 추세다.자전거보험을 취급하는 한 보험사 관계자는 “자전거 가격이 과거와 비교해 고가라 보험사에서 자전거를 담보하려면 그만큼 보험료가 올라가게 된다. 보험료가 오르면 보험 가입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보험사에서는 파손 관련 대물 보상을 줄이는 추세다. 게다가 자전거는 자동차와 달리 부품과 수리비용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보험금 산정 자체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자전거 도난 피해를 보상해주는 보험 상품은 현재로서는 개발이 불가능한 상태다. 자전거는 자동차나 오토바이와 달리 소유자 및 소유 내용을 등록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도난을 당해도 누구의 것인지 정확하게 확인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각 보험사 관계자는 “자전거 등록제가 실시된다면 신설할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어렵다”고 밝혔다.
기존 다른 보험과 보장 내용이 겹치고 정작 소비자가 원하는 내용은 보장하지 못하는 현 자전거보험의 문제를 각 보험사가 손 놓고 보고만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전거보험은 가입자 대부분이 자전거를 자주 타거나 고속 주행을 즐기는 고위험군 소비자라 보험사의 손해가 크다. 이 때문에 보험업계에서 자전거보험은 손해율만 높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보험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자전거보험 손해율은 2012년 270.15%로 최고점을 찍은 후 2013년 139.27%, 2014년 168.54% 수준에 머물러 있다. 통상적으로 일반 보험상품의 손익분기점이 손해율 77%에서 형성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전거보험은 2012년 이후 계속 적자만 내고 있는 셈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손해율이 높은 데다 단기 보험인 경우가 많아 현재는 자전거보험으로 수익을 내는 것 자체가 어렵다. 하지만 자전거 관련 법규가 마련되고 사고 통계가 충분히 쌓인다면 차후에는 재설계로 합리적인 보험상품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