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항균비누로 세수하고, 항균치약으로 양치하며, 밥을 먹기 전 항균세정제로 손을 닦는다. 아이가 변을 보면 항균물티슈로 엉덩이를 닦아준다. 항균 물티슈로 손을 닦고 심지어 입을 닦기도 한다. 인체를 세균이나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려는 피나는 노력은 이 밖에도 많다. 구강청결제, 세탁용 세제, 심지어 아이 노리개나 젖꼭지 전용세제에도 항균물질이 들어 있다.
누런 콧물이 나면 재빨리 항생제를 처방받아 복용한다. 돼지나 닭에게도 항생제를 투여한다. 좁은 공장식 축사 안에서 자라는 가축이 죽지 않게 하려면 지속적으로 항생제를 먹여야 하기 때문이다. 몸 돌릴 공간조차 없는 닭장 안에서 전등 불빛에 맞춰 산란하는 닭이 낳은 달걀, 그리고 그 닭으로 만든 치킨에도 항생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필자는 의사로서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해왔고,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로서 항균제를 적극 이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하나같이 아토피피부염과 비염을 앓았고, 때때로 증상이 심해지기도 했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우리가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세균과 바이러스를 밀어내는 게 잘하는 일일까. 미생물에 대한 공포를 빌미 삼아 일상에 녹아든 각종 항균물질과 항생제는 과연 안전할까. 그래서 환자와 아이들을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항생제는 꼭 필요할 때만 귀하게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지 아직 100년이 채 안 됐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 의료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조지 워싱턴 전 미국 대통령이 세균성인후염에 걸렸을 때 주치의가 몸에서 피를 뽑아내는 사혈치료를 했다는 사실을 알면 현대인은 경악할 것이다. 그만큼 당시에는 세균성 감염증을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이러니 페니실린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 인기가 얼마나 폭발적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사람들은 항생제를 만병통치약처럼 여기고 모든 질환에 복용했다고 한다. 푸른곰팡이에서 유래하는 페니실린을 집집마다 직접 만들어 쓰는 게 유행하기도 했다. 항생제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내성균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당시 사람들은 몰랐다.
물론 페니실린 이후 한동안은 괜찮았다. 페니실린 외에도 세팔로스포린, 아미노글리코사이드, 테트라사이클린, 마크로라이드, 퀴놀론, 반코마이신 등 수많은 항생제가 개발돼 한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도 다른 항생제로 쉽게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새로운 항생제 개발이 드물어진 반면 내성균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 반코마이신 내성 장구균,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 등 항생제 대부분에 내성을 갖는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해 세계적으로 공포를 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황색포도상구균에 듣는 항생제 메티실린에 대한 내성률이 67.7%로 영국(13.6%), 프랑스(20.1%), 일본(53%)에 비해 월등히 높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 황색포도상구균 패혈증에 걸리면 사망률이 82%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망률을 2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슈퍼박테리아가 만연하면 우리는 항생제가 없어 10명 중 8명 이상이 사망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항생제가 없다면 현대의학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심장수술, 뇌수술 등 수많은 수술은 항생제라는 보호막이 있어 가능하다. 항암치료 역시 마찬가지다. 항생제 내성을 막으려면 항생제를 나쁜 약으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할 때만 귀하게 쓰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매일 국민 1000명 중 31.7명이 항생제를 처방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인 23.7명에 비해 35%나 높은 수치다. 정부가 2020년까지 감기에 항생제 처방을 현재의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한 이유가 여기 있다.
더 큰 문제는 매년 엄청난 양의 항생제가 소, 돼지, 닭 등 가축과 양식 어류에 투여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 항생제가 대부분 수의사 처방 없이 마구잡이로 쓰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 할 수 있지만 동물과 인간은 완전히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동물의 항생제 오·남용으로 생겨나는 내성균은 사람과 동물 간 접촉을 통해 전파될 수 있고 육류, 달걀, 유제품 섭취로 감염되기도 한다. 미국 과학 전문 매체 ‘사이언스데일리’는 최근 덴마크에서 가축과 전혀 접촉한 적이 없는 도시 주민 10명이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상구균에 감염된 원인을 추적한 결과 오염원이 유럽 다른 나라에서 수입된 가금류였다고 보도했다.
가축에 투여한 항생제가 분변을 통해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것도 문제다. 항생제를 먹은 가축의 분변을 퇴비로 쓰면 잔류 항생제가 과일이나 채소를 통해 인체에 들어올 수도 있다. 또한 사과, 배 등을 재배하는 과수 농가에서 쓰는 농약에도 항생제가 포함돼 있다. 우리는 저렴한 고기와 벌레 먹지 않은 과일 및 채소를 얻으려고 자연에 항생제 내성을 축적하고 있는 셈이다.
항생제 사용을 줄여야 하는 이유가 슈퍼박테리아에 대한 공포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안티바이오틱스)보다 체내 유익균을 살리는 프로바이오틱스가 각광받는 데서 알 수 있듯, 인간 몸에는 고대부터 공존해온 유익균이 있다. 이 균들은 엄마에게서 아이에게로 이어지고, 우리 몸을 외부 세균으로부터 지켜준다. 장내 유익균은 섬유질을 분해하고 녹말을 소화시키며 세균성 장염을 막아준다. 여성생식기에 사는 락토바실리는 질의 산도를 낮춰 다른 병원균으로부터 질을 보호한다. 돌 이전의 아기가 다양한 미생물에 노출되면 이후 천식이나 아토피피부염 등 알레르기 질환에 덜 걸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면 이러한 체내 유익균의 다양성을 떨어뜨려 질병에 쉽게 감염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체내 유익균을 지키자”
2015년 미국 소아과학회지에는 생후 6개월 미만인 아기가 항생제를 자주 복용하면 소아비만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고, 8월 학술지 ‘네이처’ 미생물학 온라인판은 잦은 항생제 노출이 소아당뇨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논문을 게재했다. 만약 당신이 건강을 위해 좋은 프로바이오틱스를 원한다면 제품을 찾기보다 이미 수만 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 해온 몸 속 유익균을 항생제나 항균제 오·남용으로부터 막는 것을 우선시해야 하는 이유다.우리는 이미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살균 물질의 위험성을 경험한 바 있다. 그렇지만 현재도 항균제가 포함된 비누 및 세정제가 버젓이 유통되고, 기업들은 영업 기밀 등을 이유로 주요 항균제품의 성분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병에 걸리지도 않은 동물에게 마구잡이로 주는 예방용 항생제를 금지하고 동물의약분업을 온전히 시행하는 한편, 공장식 축산업을 제한해야 한다. 동물 실험에서 유해성이 입증된 항균제 등 각종 제품의 판매를 금지해야 하며,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은 항균물질에 대한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체내 유익균은 인간과 오랫동안 공존해온 동반자인 만큼 유익균을 보존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데 필수적인 일임을 교육하고, 체내 유익균에 대한 연구와 보존 활동도 적극 지원해야 한다.
현대인은 대부분 도시에 모여 생활하고, 세계 각국으로 마음껏 여행도 할 수 있다. 이는 질병이 한 번 발생하면 빠른 시간 내 전염되고 세계로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항생제 및 항균제 관리는 세계인과 공존을 위해서도 반드시 강화돼야 한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과 환경까지 건강해야 우리 모두가 건강해진다. 이것이 세계보건기구가 제시한 ‘원헬스(One Health)’ 개념이고, 이 안에는 미생물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