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국 경찰은 PC방 단속으로 분주하다. PC방에서 부모나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15금 온라인 게임인 ‘오버워치’를 하는 초등학생이 급증하면서 이와 관련한 신고가 쇄도하는 것. 대체로 문자메시지로 신고가 접수되는데 ‘◯◯지역 ◯◯ PC방 ◯◯번, ◯◯번 자리에서 초등학생들이 오버워치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역에서 8월 1일부터 9월 4일까지 약 한 달간 신고 접수된 것만 567건에 달한다.
게임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초등학생 오버워치 신고하는 법’이란 제목의 글이 여러 개 올라와 있다. 한 누리꾼은 ‘초등학생들이 떼로 몰려와 PC방을 점령하고 있다. 시끄러워서 게임을 할 수가 없다. 얼른 신고해야겠다’고 써놓는가 하면, 또 다른 게임 유저는 ‘PC방에 자리가 없으니까 어떤 아저씨가 초등학생들이 오버워치 한다고 신고하고는 그 자리에 본인이 앉았다’며 웃지 못할 상황을 묘사해놓았다.
신고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은 초등학생의 인적사항을 파악한 후 귀가 조치하고, 업주에게는 PC방 이용자가 연령 제한 게임을 하지 못하게 주의를 주고 계도하게끔 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계속된 신고로 PC방 업주가 ‘초등학생이 오버워치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 의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6개월 이내 영업정지 또는 영업폐쇄 명령을 받을 수도 있다.
반면 직접 게임을 한 초등학생에 대한 처벌은 따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행법상 ‘청소년관람불가’ 외 나이별 등급은 아직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번호 도용과 관련해서도 당사자인 부모나 형제가 처벌 의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도용 혐의도 사실상 무의미하다. 결국 온라인 게임의 연령 제한이 권장사항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온라인 게임 연령 제한 권장사항에 그쳐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청소년은 법적 처벌이 어려워 강제성이 적은 만큼 PC방 업주들 스스로 철저히 관리할 의무가 있다. 시청이나 구청에서도 단속을 진행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 또한 “현실적으로 PC방을 일일이 규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만큼 어린 학생들이 이용 등급을 준수하도록 어른들의 지도 및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5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발매한 팀 기반 슈팅 게임 ‘오버워치’는 국내는 물론 해외 게임시장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총을 사용해 전투하며 상대팀을 죽이는 등의 내용으로 15세 이상만 할 수 있다. ‘15세 이용가’는 폭력을 주제로 하지만 신체 훼손 등이 비사실적이고 신체가 선정적이지 않게 묘사됐을 때 적용된다. 하지만 강도가 조금 약할 뿐 선정성, 폭력성, 범죄, 약물 사용, 부적절한 언어, 사행성 등이 모두 포함됐다고 볼 수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친구들과 PC방에서 오버워치를 한다는 한 초등학교 4학년생은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 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게임이 진짜 재미있다. 집에 있는 컴퓨터는 용량이 작아 게임을 깔지 못하기 때문에 친구들이랑 PC방에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익히 알려져 있듯 온라인 게임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중독성이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을 계속해서 보다 보면 어느 순간 게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게임의 역기능에 쉽게 물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강병훈 서울연마음클리닉 원장은 “위험성이 높은 게임에서 낮은 게임으로 서서히 강도를 낮춰주라”고 조언한다.
중독의 위험 수위를 순서대로 정리하면 최상위에 온라인 게임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게임 동영상, 인터넷 서핑 및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웹툰, 만화책, 판타지 소설이 차례대로 자리한다. 현재 아이가 온라인 게임에 중독됐다면 게임을 직접 하는 대신 게임 동영상을 시청하게 함으로써 게임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는 것이 좋다. 첫 단계가 성공하면 그다음은 게임 동영상 대신 웹툰을 보여주는 식으로 중독 수위를 낮춰가는 것이다. 섣불리 온라인 게임을 원천봉쇄했다가는 아이가 부모 앞에서 말문을 닫아버리고 반항하는 등 더 큰 불화를 초래할 수 있다.
온라인 게임은 종류별로 중독 정도가 다 다르다. 몰입도가 가장 높은 게임은 1인칭 총싸움, 즉 1인칭 슈팅 게임이다. 자신이 주인공이 돼 게임을 진행하기 때문에 현실과 이상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깊게 빠져들게 된다. 효과음도 크고 자극적이라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다음 단계로는 3인칭 실시간 게임(리얼타임), 바둑처럼 상대방과 자신이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하는 턴제 전략 게임, 축구나 야구 등 스포츠 게임 등이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비디오 게임은 위험 수위가 가장 낮다고 볼 수 있다. PC나 모바일 게임처럼 다운로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용 시간과 장소 면에서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하다. 강 원장은 “게임중독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에 빠져들었다가도 얼마나 쉽게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가다. 아이가 어떤 종류의 게임을 할 때 이런 조절이 가능한지 부모가 세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게임하는 이유를 찾아라
부모도 자녀가 하는 게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직접 하지 않더라도 아이와 대화로 게임 종류와 특징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아이에게 좋아하는 게임이 무엇인지, 게임할 때 특히 어떤 점이 재미있는지 등을 물어보면서 소통의 물꼬를 튼다. 또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해보는 것도 좋다. 그 후 어떤 점이 흥미로웠는지, 어떤 점 때문에 걱정이 되는지 등을 자연스럽게 얘기하다 보면 아이 역시 부모의 말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아이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시작하고, 이를 통해 부모는 아이의 현 심리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예를 들어 게임 캐릭터를 꾸며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는 롤플레잉 게임을 즐기는 아이라면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는 대인관계나 자존감 문제가 게임 동기가 될 수 있다. 실생활에서 하지 못하는 일들을 게임으로 하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그 안에서 자신이 인정받는 상태를 즐기는 것이다. 반면 비교적 짧은 시간에 게임이 끝나는 대전 액션 게임이나 레이싱 게임은 스릴감으로 재미를 느끼고 싶어 하는 아이가 주로 빠져든다. 그 밖에 게임 자체에 대한 흥미보다 친구와 어울리려고 게임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초등학생 사이에서 게임을 잘하면 영웅 같은 대접을 받기도 해, ‘다른 건 몰라도 게임만큼은 내가 최고’라는 우월감을 맛보려고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도 있을 수 있다.
강 원장은 “아이가 게임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게임중독 해결의 첫걸음이다. 게임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생각지 말고 아이와 공감대를 유지하면서 게임 시간과 규칙을 정하는 등 현실적인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