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고 있다. 1986 멕시코월드컵을 시작으로 연속 출전한 한국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일궜고,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에서는 원정 대회 첫 16강 진출이란 값진 열매를 따냈다.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오르면 아시아 최초로 9회 연속 월드컵 무대를 밟는 동시에 1954 스위스월드컵 첫 출전 이후 통산 열 번째 월드컵 본선 진출이 된다.
울리 슈틸리케(62·독일)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9월 1일 중국전을 시작으로 아시아 최종예선에 돌입했다. 홈에서 열린 중국전에서는 3골을 먼저 넣었다 2골을 내리 내줘 3-2 진땀승을 거뒀고, 원정으로 펼쳐진 6일 시리아전에서는 무기력한 경기를 선보인 끝에 0-0 무승부에 그쳤다.
중국(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78위·이하 8월 기준), 시리아(105위), 카타르(80위), 이란(39위), 우즈베키스탄(55위)과 함께 A조에 편성된 한국(48위)은 내년 9월까지 홈 앤드 어웨이로 펼쳐지는 최종예선에서 조 2위 안에 들면 러시아행 본선 티켓을 손에 넣는다. 3위가 되면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해 우리 축구대표팀은 최종예선 2위 이내 진입을 1차 목표로 하고 있다.
흐트러진 수비 안정감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1무2패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지만 8회 연속 본선 진출이란 위업에서 볼 수 있듯,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단순한 최종예선 통과가 아닌 본선에서의 좋은 성적이다. 그러나 중국전과 시리아전, 두 경기는 최종 관문 통과를 낙관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FIFA 랭킹에서 확인할 수 있듯, 최종예선에서 만나는 5개 경쟁국 가운데 한국보다 랭킹이 앞서는 팀은 이란뿐이다. 한국은 이란과 A매치 상대 전적에서 9승7무12패로 열세에 놓여 있다. 그러나 중국전 역대 전적 18승12무1패가 보여주듯, 다른 4개국보다 객관적 전력에서 앞서 있다. 그러나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을 확신할 수 없는 건 무엇보다 불안한 수비라인 때문이다.
3-2로 승리한 9월 1일 중국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3-0으로 앞선 후반 29분과 32분 연속골을 내줘 안방에서 무승부 위기까지 몰렸다. 중앙수비수로 나선 홍정호(장쑤 쑤닝)의 적극적 커버 플레이와 골키퍼 정성룡(가와사키 프론탈레)의 2차례 슈퍼세이브가 없었다면 낭패를 볼 뻔했다. 슈틸리케 감독도 “프리킥으로 허용한 두 번째 실점은 어쩔 수 없으나, 첫 번째 실점은 명백한 우리의 실수”라고 인정했다.
좌우 풀백 자원의 답답한 움직임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박주호(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김진수(TSG 1899 호펜하임) 등 기존 자원이 소속팀에서의 부침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한 상황에서 왼쪽 측면을 책임진 오재석(감바 오사카)의 전·후반 경기력은 확연히 달랐다. 오재석은 과감한 오버래핑을 통한 적극적인 공격 가담 능력이 돋보였지만 첫 골의 빌미를 제공하는 등 불안감을 안겨줬다. 오른쪽 풀백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 장현수(광저우 R&F FC)가 전반에만 결정적 패스 미스를 세 차례나 범해 큰 위기를 맞았다. 전방으로 공을 배급하는 대신, 횡 패스와 동료들의 움직임을 고려하지 않은 무의미한 패스를 하다 중국에 공격권을 허용하는 위험천만한 장면을 만들었다. 사실 오재석과 장현수 모두 자신의 주 포지션이 아닌 곳에서 뛰었다. 중국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오재석은 오른쪽 사이드에서, 전형적 ‘멀티 플레이어’인 장현수는 중앙수비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해왔다. 대표팀이 그만큼 쓸 만한 측면 수비수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시리아전에서는 오른쪽에 이용(상주상무), 왼쪽에 오재석이 나섰지만 움직임이 둔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차례 결정적인 위기를 자초하기도 했다.
수비 자원에 비해 공격 자원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편이지만 시리아전에서 보여준 골 결정력 부족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소속팀 사정에 따라 석현준(트라브존스포르)은 이번 A매치에 차출되지 않았지만 다른 해외파들이 그나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은 위안거리다. 중국전에서 터트린 3골 모두에 기여한 지동원(FC 아우크스부르크)이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였고, 팀 내 입지 불안으로 한동안 슈틸리케 감독에게 외면받았던 이청용(크리스털 팰리스)도 건재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깜짝 발탁은 없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4 브라질월드컵 참패 이후 ‘구원투수’로 한국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동안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 2015 동아시안컵 우승,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무실점 전승(8승) 등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슈틸리케 감독은 선수 선발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K리그의 젊은 피 권창훈(수원 삼성 블루윙즈), 이재성(전북 현대 모터스), 이정협(울산 현대 축구단) 등을 발굴해 대표팀 전력을 한층 두텁게 만들었다. 일본, 중국 등에서 활약하는 해외파 선수 일부도 새로 발탁해 테스트하는 등 선수 검증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슈틸리케 감독 취임 이후 대표팀에 한 차례 이상 선발된 선수는 총 65명. 그러나 올해 들어 ‘뉴 페이스’가 크게 줄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9월 A매치 2연전까지 올해 총 3회에 걸쳐 대표팀 명단을 꾸렸는데 새 얼굴은 4명에 불과했다. 오재석, 고명진(알 라이안), 윤빛가람(옌볜 푸더), 황희찬(FC 레드불 잘츠부르크)이 ‘슈틸리케호’에 처음 승선했다. 이들은 모두 해외파다. K리그에선 새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어느 정도 선수 검증을 끝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꾸준히 K리그 경기장을 돌고 있다. 해외파 선수는 TV 중계와 출전 기록 등으로 1차 점검하고, 확인이 더 필요하면 현지로 날아가 경기를 관전한다. 그럼에도 새 얼굴의 발탁 빈도가 줄어든 것은 슈틸리케 감독의 머릿속에 대표선수 리스트가 어느 정도 정리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종예선은 10월 재개된다. 한국은 10월 6일 카타르를 불러들여 3차전을 치른 뒤 이란으로 건너가 11일 4차전을 갖는다. 이란전은 조 1위를 다툴 수 있는 상대란 점에서 무척 중요하다. 3-2 진땀승으로 끝난 중국전이나 0-0 무승부로 끝난 시리아전은 8전 전승을 거둔 2차 예선과 달리 최종예선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님을 입증했다. 중국전과 시리아전에서 보여준 경기력으로는 잔여 일정이 가시밭길이 될 수밖에 없다. 슈틸리케 감독이 새로운 얼굴 발탁으로 변화를 줄지, 대표팀이 공수 조화로 10월에 있을 두 경기를 잘 소화해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