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매년 여름 낙동강에 녹조가 나타났어요. 하지만 올해만큼 상태가 심각한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물을 정수해 만드는 수돗물을 계속 마셔도 되나, 저부터 걱정될 정도입니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한 말이다. 그는 지난 7년간 영남지역 시민의 상수원인 낙동강 수질을 모니터링해왔다. 그사이 낙동강 환경은 악화일로를 걸었다는 게 정 사무처장의 생각이다. 그는 “정부가 내내 ‘괜찮다’고 하지만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원수 수질이 계속 악화할 경우 더는 수돗물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한시라도 빨리 수질개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올여름 질병관리본부(질본)는 수시로 ‘물을 많이 마시라’는 지침을 내놨다. 몸속에 수분을 채우는 것만으로도 더위로 인한 건강 피해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작 시민은 ‘믿고 마실 물이 없다’고 한숨을 내쉰다. 전국 여러 하천에서 나타난 녹조현상은 이런 불안을 가중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악화하는 하천 수질, 수돗물 내 화학물질 증가
올여름 녹조는 낙동강뿐 아니라 금강, 영산강, 한강 등에서도 관측됐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녹조가 떠 있는 물을 그대로 마시는 게 아니라면 안전 면에서 크게 문제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최승일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현재 녹조가 많이 발생한 지역에서는 모두 수돗물 생산 시 고도정수처리를 하는 것으로 안다”며 “취수 후 염소소독 등 일반적인 정수과정을 거친 물을 다시 오존과 활성탄 등으로 정수하면 물속에 남아 있는 유기물질과 소독부산물까지 제거된다. 이를 고도정수처리라고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이 과정이 끝난 뒤 수질검사를 통해 안전성을 확인한 물만 수돗물로 공급한다. 하천에 녹조가 발생했다고 해서 식수에 대해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질이 나빠지면 정수과정에서 더 많은 화학물질을 투입하게 된다. 이와 관련한 불안은 가시지 않는 상황이다. 영남지역 한 정수장은 수돗물 내 총트리할로메탄(THMs) 농도가 1~7월 0.011~0.031mg/ℓ에서 8월 0.031~0.045mg/ℓ로 높아진 것이 확인됐다. THMs은 물속에 함유된 유기물이 염소와 반응해 생성되는 물질이다. 정수처리과정에서 만들어지며 인체에 유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국 정수장의 THMs 농도는 먹는물 기준(0.1mg/ℓ)보다 낮게 유지되고 있지만 점차 높아지는 추세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그 배경에는 수돗물 원수의 수질 악화가 있다.
한국하천호수학회와 환경운동연합 등 11개 단체가 구성한 ‘4대강조사위원회’는 6월 9~11일 낙동강 수질 조사를 실시했다. 이를 분석한 결과 낙동강 달성보 주변 물의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과 화학적산소요구량(COD)이 ‘나쁨’에 해당하는 5등급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정책기본법 관련 규정에 따르면 하천수 5등급은 ‘다량의 오염물질로 인하여 용존산소가 소모되는 생태계’를 뜻한다. 동법에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된 4등급(약간 나쁨)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물이 이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를 통해 낙동강의 표층수 수질에는 문제가 없지만 수심이 깊어질수록 용존산소가 고갈되고 있음도 밝혀냈다. 이에 대해 정수근 사무처장은 “말 그대로 물이 안에서부터 썩어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천 표면에 ‘녹조라테’라고 부를 만큼 진한 녹조까지 번지자 시민 불안이 더 커진 것이다. 그러나 관리당국은 “고도정수처리 과정을 거친 물은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 하천 수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수기 위험 어찌할꼬
이러니 많은 시민이 수돗물을 불신한다. 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이 추산한 국내 정수기 시장 규모는 2010년 1조6000억 원대에서 올해 2조2000억 원대(추정치)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6월 만 19~59세 서울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정수기 물(42.2%)과 먹는샘물(40.8%)을 마신다는 응답이 수돗물(15.6%)을 마신다는 응답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2014년 현재 우리나라 상수도 보급률이 98.6%에 이르고, 전국 수돗물 평균 요금이 t(1000ℓ)당 660원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결과다.
각 가정의 수도꼭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수돗물은 매우 편리하고 값싼 식수원이다. 하루 물 섭취 권장량인 2ℓ씩 한 달간 마셔도 물값이 40원이 채 안 된다. 각종 연구는 국내 정수기 이용료가 수돗물 대비 329~724배, 먹는샘물 가격은 380~2300배에 이른다고 보고한다. 그럼에도 가정에 정수기를 들여놓거나 물을 사서 먹는 사람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수돗물=나쁜 물’이라는 인식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그러나 과연 정수기가 ‘안전한 물’을 만들어줄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최근 국내 대형 정수기업체의 정수기에서 잇따라 중금속 등이 검출된 게 한 사례다. 김동근 수돗물시민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수돗물은 정수과정을 마친 뒤 수질검사를 통과해야 가정에 공급된다. 그러나 각 가정의 정수기에서 나오는 물의 수질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정수기 자체 결함이나 관리 소홀 등의 문제로 수질 기준에 못 미치는 물이 나와도 소비자는 그것을 모르고 마시게 된다”고 지적했다.
녹색소비자연대와 시민환경연구소 등 시민단체가 2014년 전국 10개 아파트를 대상으로 실시한 수질검사에서도 정수기의 이러한 위험성이 일부 확인됐다. 당시 조사 결과 가정 내 수도꼭지에서 바로 나온 물은 모두 마시기에 적합했다. 그러나 정수기를 통과한 물은 조사 대상 가정의 약 49%에서 일반 세균량이 먹는물 수질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서울시가 가정집 렌털 정수기 100개의 수질을 검사했을 때도 53%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정수기는 수돗물을 거르는 과정에서 잔류 염소까지 완전히 제거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일반 세균 증식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라며 “정수기를 쓰는 시민 중에는 수돗물에 들어 있는 미량의 화학물질까지 불안해하는 이가 있는데, 그들이 과연 기대만큼 ‘깨끗한 물’을 마시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시민으로 하여금 수돗물 수질을 걱정하게 만드는 낡은 상수도관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 환경부가 2013년 말 만 20세 이상 국민 1만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3명은 ‘수돗물을 마시지 않는 이유’로 ‘물탱크나 낡은 수도관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30.8%)를 꼽았다. 1990년대 입주가 시작된 서울 성동구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직장인 김은희(가명)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우리 아파트 물탱크가 잘 관리되고 있는지, 우리 집까지 이어진 수도관이 깨끗한지 확신할 수 없다. 정수장에서 문제없는 물을 만들어 공급한다 해도 가정 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의 질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김씨는 이 때문에 한동안 렌털 정수기를 이용했고, 정수기에서 이물질이 검출돼 사회 문제가 된 뒤부터는 온라인 마트에서 먹는샘물을 배달시켜 마시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 김씨와 같은 시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국내 먹는샘물 시장 규모는 약 7000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약 6200억 원)에 비해 12.9% 성장한 수치다.
문제는 먹는샘물 역시 수돗물과 마찬가지로 생산 후 소비자의 손에 도달하기까지 이어지는 유통과정에서 변질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2014년 미국 플로리다대 연구팀은 플라스틱병에 든 먹는샘물을 일주일간 섭씨 25도 상태에서 보관한 결과 물 1ℓ에서 비스페놀A가 0.62~22.6ng(나노그램, 1ng=10억 분의 1g), 70도에서는 2.89~ 38.9ng 검출됐다고 밝혔다. 반면 섭씨 4도 상태에서 보관한 물 1ℓ 에서는 비스페놀A가 0.26~18.7ng 검출됐다. 비스페놀A는 생식기관의 정상적 발달을 방해하고 비만이나 심혈관 질환, 대사증후군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의심받는 물질이다. 먹는샘물을 높은 온도에서 장기간 보관할 경우 인체 유해물질이 증가할 수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정수기에서 나오는 물의 수질’과 마찬가지로, ‘먹는샘물 병에서 나오는 물의 수질’도 최종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에 대해 전상일 한국환경건강연구소장은 “일본은 먹는샘물이 직사광선에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고 해당 제품을 유통할 때는 반드시 종이상자에 담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단속이 전무하다. 결국 직사광선과 고온에 노출된 먹는샘물이 아무 제한 없이 소비자에게 팔리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국민 안전보다 산업 육성이 먼저
먹는샘물의 경우 수돗물과 달리 애초부터 안전 기준에 미달한 제품이 생산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12월 환경부는 검찰과 함께 ‘전국 먹는샘물 제조업체 합동 점검’을 실시해 품질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채 먹는샘물을 생산, 유통한 업체를 무더기로 적발했다. 현재 관련법은 먹는샘물 수질 검사를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상당수 업체가 이를 위반한 채 총대장균군, 녹농균 등 인체에 유해한 미생물 관련 검사조차 하지 않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것이다. 업체 종업원 일부는 먹는샘물 제조업 종사자가 6개월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전염성 질병 관련 검진조차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이렇게 만들어진 먹는샘물 제품이 적발 후에도 제대로 수거되지 않은 채 소비자에게 팔려나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최봉홍 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회수·폐기 대상이 된 먹는샘물 36만8622ℓ 가운데 회수된 것은 2만5223ℓ에 불과했다. 전체의 90%가 넘는 양이 사라진 셈인데, 관련 업계에서는 이를 소비자가 마셨을 것으로 추정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으로 시민이 규정 위반 제품을 확인하기 어려운 현행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한다. 환경부는 먹는샘물 관련 단속을 실시한 뒤 문제를 적발하면 자체 인터넷 홈페이지 ‘정보공개’ 란을 통해 알리고 있다. 그러나 이 사이트를 수시로 들여다보는 시민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게다가 환경부는 이 ‘정보공개’조차 문제가 된 먹는샘물 제품 브랜드가 아니라 업체명으로 하고 있다. 이 또한 단속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원인으로 꼽힌다. 환경부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우리나라에서 먹는샘물 제조허가를 받은 업체는 62개다. 반면 시중에 판매 중인 먹는샘물 제품은 200종이 넘는다. 한 개 업체에서 여러 브랜드 제품을 내놓는 상황에서 업체명만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것은 제대로 된 정보공개라고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동근 사무국장은 “우리나라의 먹는샘물 관련 정책은 국민 안전 보호보다 해당 산업 육성 쪽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시민이 안심하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먹는샘물 생산업체에 대한 단속을 철저히 하고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강력히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책 ‘생수, 그 치명적 유혹’에서 저자 피터 글렉은 ‘시장에서 상품으로 유통되는 물의 품질이 수돗물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물 전문가인 그가 취수원, 영양가, 안전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먹는물 문제를 조망한 뒤 내린 결론은 ‘물은 사유재가 아닌 공공재’이며 ‘우리는 수돗물에 물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돗물 관리체계가 무너지면 부자만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고 그러지 못하는 많은 인구는 각종 수인성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수도시설의 발전만큼 우리 건강에 크게 기여한 게 없다. 지금 시민들 사이에서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며 “정부가 이제라도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질 좋은 수돗물을 생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시민에게 식수의 안전성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의 몸은 70% 이상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과학교사 김경은 씨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펴낸 책 ‘자신만만 과학책’ 화학 편의 일부다. 하천에 녹조가 생기고, 정수기에서 중금속이 나오고, 먹는샘물에서 발암물질이 발생해도 물은 마셔야 한다. 정부가 더 늦기 전에 시민을 안심시킬 식수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