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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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 근대회화의 거장들 특별전

호림의 마지막 선물 운미의 ‘노근란도’

  • 김현미 기자 kimzinp@donga.com

    입력2016-08-29 17: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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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아래 대칭으로 크게 두 무더기로 나누어진 구도, 잎 끝이 뭉툭한 건란(建蘭)인 난초잎, 담묵(淡墨)과 농묵(濃墨)으로 시원시원하게 뚝뚝 친 꽃잎과 꽃술, 쭉쭉 곧게 뻗어 올라간 힘찬 난초잎들은 누가 봐도 운미란(芸楣蘭)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독창성과 개별성이 있다.’(1992년 7월 18일자 ‘동아일보’)

    24년 전 허영환 성신여대 교수가 운미 민영익(1860~1914)의 ‘묵란도’를 감상하며 쓴 글의 일부다. 여기서 ‘운미란’이란 민영익이 그린 난초 그림을 가리킨다. 조선 말기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이자 정치가, 서화가로 이름을 날린 민영익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조선이 사실상 일본 식민지로 전락하자 청나라로 망명해 10년 뒤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망명 시절 그린 ‘묵란도’는 청나라 최고 서화가였던 오창석 등으로부터 ‘신품’이란 칭송을 들을 만큼 독창성이 뛰어나 별도로 그의 호를 따 ‘운미란’이라 불렀다고 한다. 민영익의 작품 가운데 허 교수가 소개한 그림은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노근란도(露根蘭圖)’다. 노근란도란 뿌리가 노출된 난초 그림을 가리키는데, 망국의 한과 망명생활의 슬픔을 뿌리가 드러난 난초에 비유한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운미란의 독창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또 한 점의 ‘노근란도’가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열리는 ‘근대회화의 거장들 : 서화(書畵)에서 그림으로’ 특별전을 통해 공개됐다. 이번에 공개된 운미란은 상단에 농묵으로 시원시원하게 친 난초와 하단에 바위에 기댄 듯 서 있는 난초를 대비해 더욱 애잔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 전시는 제목 그대로 학문과 글씨를 기반으로 한 조선시대 서화(書畵)가 20세기 초 서양 및 일본 회화의 유입과 함께 ‘그림’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 조선 말기를 대표하는 이하응, 허련, 장승업, 민영익 등과 한국 근대화단의 1세대라 부르는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 이용우 등 화가 38명이 남긴 80여 점의 작품을 주제별, 즉 산수, 사군자, 인물, 화훼로 나눠 전시하고 있다.



    특히 ‘사군자-묵향으로 쓴 문인의 이상’ 섹션에서 조선 말기 묵란화의 대가로 쌍벽을 이룬 흥선대원군(석파 이하응·1820~1898)의 ‘석란도(石蘭圖)’와 운미의 ‘노근란도’를 나란히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들은 5월 타계한 호림(湖林) 윤장섭 선생의 컬렉션으로, 호림박물관 측에 따르면 그가 와병 중에도 마지막에 구매를 결정한 작품이 바로 운미의 ‘노근란도’라고 한다.

    또 이 전시를 통해 황씨 4형제(황종하·성하·경하·용하)와 김윤보, 윤영기, 김규진 등 개성 및 평양 출신 화가들이 조선왕실의 도화서 해체 후 최초로 미술교육기관을 설립하고 동서양 미술을 함께 교육하는 단체를 만드는 등 서울 화단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한국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점도 새롭게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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