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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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교황청이 중국에 손 내미는 이유

프란치스코 교황, 시 주석과 접촉 시도… 가톨릭 신자 감소로 고민, 13억 중국이 기회의 땅?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6-08-19 16: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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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늘 위대함의 대상이었고, 한 국가를 넘어 대단한 문화와 무한한 지혜로 다가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월 초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우리나라의 설)를 앞두고 중국 국민과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보낸 새해 인사의 한 대목이다. 역대 교황 가운데 중국 지도자에게 새해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처음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즉위한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을 호의적으로 언급해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전세기를 타고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길에 중국 영공을 지나면서 시 주석과 중국 국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해 1월 필리핀, 9월 미국과 쿠바를 각각 방문하고 로마로 돌아갈 때도 “중국과 우호관계를 맺을 기회가 있기를 원한다”며 중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표명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25일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아 열린 유엔 총회에 참석해 연설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비밀리에 시 주석과 만나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 주석과 대화를 기대했지만 시 주석이 국내 정치적 부담 때문에 회동을 회피했다. 



    중국 교회와 세계 교회의 통합

    가톨릭교회와 교황청(바티칸)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국과의 역사적 ‘화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바티칸과 중국은 현재 외교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 중국 정부는 바티칸이 1951년 대만 정부를 인정하자 단교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자국 내 가톨릭 신도를 관리하고자 57년 관제단체인 ‘천주교애국회’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주교를 임명해왔다. 중국의 가톨릭 신자는 공식적으로 천주교애국회 교회에서만 미사를 볼 수 있다. 가톨릭 교리를 보면 주교 등 모든 서품은 교황의 고유 권한이다. 이 때문에 바티칸과 중국은 그동안 냉랭한 관계를 보여왔다. 중국 교회는 천주교애국회와 교황청을 따르는 지하교회로 나뉜 상태. 중국 가톨릭 신자는 570만 명이지만 지하교회 신자까지 합치면 12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중국 전문가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을 교황청 외교의 수장인 국무원장으로 임명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임무를 맡겼다. 이후 교황청과 중국은 2014년 1월 로마에서 첫 회동을 시작으로 2015년 10월, 올해 1월 등 수차례 만나 대화를 이어왔다. 특히 양측은 4월 관계 정상화를 위한 실무협상단을 구성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해왔다. 지금까지 협상 상황을 볼 때 양측은 관계 정상화에 잠정적으로 합의를 도출한 듯하다. 홍콩 교구장인 요한 통혼(湯漢) 추기경은 홍콩 교구가 발행하는 주간 ‘쿵카오포(公敎報)’ 최신호에 게재한 ‘중국 교회와 세계 교회의 통합’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중국과 바티칸이 주교 임명 절차에 대해 초보적인 합의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통 추기경은 “합의의 목표는 세계 가톨릭의 합일성이라는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교황의 주교 서품권이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비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측의 잠정합의는 천주교애국회의 모든 교회뿐 아니라 중국 정부가 인정하지 않던 지하교회의 주교들도 참여하는 ‘중국주교단’을 구성해 주교 추천권을 주는 방안이 유력시된다. 교황은 중국주교단이 추천한 후보들 가운데 주교를 선택해 서품한다는 것이다. 중국주교단이 추천권만 갖고, 교황이 최종 임명권을 갖는 이 방식은 ‘베트남 모델’을 본뜬 것이다. 베트남 모델은 베트남 정부가 바티칸에 제출하는 주교 후보자 명부에 대한 동의권을 행사하고 바티칸 결정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방식이다. 최종적으로는 교황이 주교를 임명한다. 이에 따라 바티칸은 베트남과 아직까지 수교하지는 않았지만 2011년 레오폴도 지렐리 대주교를 베트남 주재 비상주 대표로 임명하는 등 관계를 강화해왔다. 지렐리 대주교는 1975년 베트남이 공산통일된 뒤 처음으로 임명된 교황의 외교 사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과 중국의 화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무엇보다 교세 확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바티칸은 전 세계 국가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을 포용함으로써 더욱 폭넓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는 전 세계 인구의 60%를 차지하고 있지만 가톨릭 신자는 12%에 불과해 유럽과 미국에서 감소하는 신자 수를 만회할 수 있는 지역이다. 바티칸은 교세가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13억 인구의 중국에서 포교에 나선다면 교세 확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바티칸은 내심 앞으로 중국의 종교 자유 확대는 물론 민주화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바티칸은 1980년대 동유럽 민주화에 도움을 준 바 있다. 물론 바티칸 내에선 중국과의 화해에 반대 목소리도 있다. 전 홍콩 교구장인 요셉 젠제키운(陳日軍) 추기경은 “교황청은 중국 측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할 가능성

    중국도 바티칸과의 관계 개선이 국제사회에서 자국 이미지를 고양하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종교의 자유와 인권 탄압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마하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 공산당 지도부 중 일부는 종교의 자유가 확대될 경우 자칫하면 체제에 위협이 된다면서 바티칸과의 수교에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바티칸과의 수교가 대만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독립노선에도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바티칸이 중국과 수교할 경우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 외교를 끊어야 한다. 대만은 현재 바티칸을 포함한 22개국과 국교를 맺고 있다. 이 중에는 파라과이, 도미니카,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가톨릭 국가가 포함돼 있다. 만약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할 경우 이들 가운데 바티칸을 따르는 국가가 나올 것으로 보여 대만의 외교 고립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대만 정부는 바티칸이 중국과 수교하는 것을 막으려고 외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도 바티칸 측에 중국과의 수교 반대를 암암리에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바티칸은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할 가능성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특별 희년’을 맞이해 중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서품한 주교 8명을 사면함으로써 중국 측에 선의(善意)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면 조치가 중국과 역사적 화해의 전 단계인 셈이다.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는 2012년 이들 8명 중 3명을 파문했고, 나머지 5명도 주교로 인정하지 않았다.

    희년(禧年·Year of Jubilee)이란 가톨릭교회가 25년마다 신자들에게 특별히 은혜를 베푸는 성스러운 해를 말한다. 특별 희년은 교황이 중요한 계기나 행사가 있을 때 직접 선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2월 8일부터 올해 11월 20일까지를 ‘자비의 특별 희년’으로 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같은 예수회 출신으로 명나라 때 뛰어난 포교활동을 벌인 마테오 리치(1552~1610) 선교사처럼 재위 기간에 중국을 방문해 복음을 전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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