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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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당신은 유통기한 1년 지난 링거를 맞았다

환자가 부작용 호소해도 병원엔 경고로 끝…생수 등 식품은 유통기한 어기면 영업정지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8-05 17: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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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자정이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수거하는 일이다. 이는 괜한 헛수고로 보인다. 유통기한이 갓 지난 식품이라면 굳이 수거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식품 사용 가능 기간인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약간 더 길다. 먹어도 인체에 해가 될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유통기한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식품이 인체에 완벽하게 무해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수거하는 것이다. 식품위생법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판매한 업주에게 영업정지 등의 처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혈관을 통해 우리 몸에 들어오는 수액인 링거는 어떨까. 놀랍게도 링거에 대해선 처벌이 너무 경미하다. 식품이나 경구용 의약품과 달리 재발 방지를 위해 경고하는 수준에 그친다. 더 큰 문제는 유통기한이 지난 링거를 투여받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례가 최근 몇 년 새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7월 18일 서울 마포구 한 병원에서 유통기한이 1년 2개월 지난 링거를 환자에게 투여했다. 마포구에 사는 임모(24·여) 씨는 이날 원인을 알 수 없는 다리 통증으로 집 근처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진료 후 임씨에게 링거와 비타민 주사를 처방했다. 임씨는 “예전에 링거를 맞을 때는 주삿바늘을 찌를 때를 제외하고 통증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링거가 혈관을 타고 들어오는 내내 통증이 있었다. 처음에는 몸이 아파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시간이 꽤 지나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혹시 약에 문제가 있나 싶어 투약되는 링거를 확인했더니 유통기한이 1년 2개월이나 지나 있었다. 너무 놀라 간호사를 불러 항의했지만 돌아온 말은 링거 가격인 100원 남짓을 환불해주겠다는 것뿐이었다”고 밝혔다.



    연례행사 링거 사고, 속수무책

    임씨가 유통기한이 지난 링거를 확인한 시각은 오후 5시 30분. 병원 측은 “오후 6시 진료가 끝나니 걱정되면 내일 찾아오라”고 했다. 임씨는 ‘병원에서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별일 있겠나’ 싶어 집으로 돌아왔지만 30분 정도 지나자 열과 헛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한밤중 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임씨는 지금까지 그 후유증으로 입원 중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링거를 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관계자는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에 따라 식약처가 정해놓은 유통기한을 지키지 않은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밝혔다. 이 병원의 관할 보건소인 마포구 보건소 관계자는 “병원에 1차 확인을 나가본 결과 유통기한이 지난 링거를 사용한 것은 확실하다. 의료법에 의거해 시정명령 처분이 내려질 것 같다. 의료법상 유통기한이 지난 링거 사용에 내릴 수 있는 행정처분은 시정명령뿐”이라고 밝혔다. 시정명령은 말 그대로 ‘다음부터 그러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일 따름이다. 병원명이 공개되지 않기에 그로 인한 실질적 불이익도 없다. 이 내용을 어길 시 소정의 과태료 등 추가 처분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유통기한이 지난 링거를 또 주사하다 적발되면 그제야 과태료가 부과되는데 그 또한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명백한 불법행위임에도 유통기한이 지난 링거를 환자에게 처방한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2014년 10월 충남 부여군, 지난해 1월 경기 부천시, 7월 전북 전주시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링거를 투약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모두 다르지만 각 병원의 대응 방식과 그에 내려진 처분은 같았다. 모든 병원이 “간호사의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으며 그에 대한 처분도 시정명령으로 동일했다.

    전문가들은 링거 관련 처벌이 유독 가벼운 이유를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이 환자의 몸에 끼치는 부작용에 대한 정확한 임상 근거가 아직까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식품위생법이나 의료법이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 혹은 경구용 의약품에 영업정지 등의 행정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과는 크게 비교되는 대목이다. 먹는샘물(생수)도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팔면 영업정지 등의 처분이 내려짐에도 혈관에 놓는 수액에 대해선 실질적 처벌이 없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

    처벌이 경미한 탓일까. 유통기한이 지난 링거를 투여하는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보건당국은 “법 규정대로 집행할 뿐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처벌이 약해 보일 수 있으나 조정이나 소송까지 진행되면 손해배상 등 병원이 민사상 책임도 지게 된다. 이를 감안하면 경미한 처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환자 측에서 소송이나 조정을 거치더라도 손해배상을 받을 확률은 희박하다. 유통기한이 지난 링거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링거 제조사 측은 “유통기한이 지난 링거라도 보관만 잘하면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은 적다”고 주장한다. 링거를 제조하는 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병원에서 링거를 제대로 보관하지 않아 약품이 변질됐다면 인체에 유해할 수 있으나 보관 수칙을 잘 지켰다면 유통기한이 지나도 약효가 떨어질 뿐 인체에 유해할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임상 근거 없다”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

    시민단체에서도 “병원이 유통기한이 지난 약물을 환자에게 투여한 사건의 경우 소송까지 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의료사고가족협의회 관계자는 “유통기한이 지난 약물이 환자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임상실험 결과가 없다. 이 때문에 환자 상태가 악화되도 유통기한이 지난 약물 때문이라고 입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약물을 환자에게 투여한 사건의 경우 병원이 환자에게 위자료를 지불하는 선에서 종결된다”고 설명했다. 신현호 법무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는 “병원에서 환자에게 처방해도 유통기한이 지난 링거가 환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입증자료가 없어 보통 위자료(정신적 손해배상) 처분을 받는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전문 변호사는 “실제 처벌 수준이 경미하니 일부 병원에서 의약품 유통기한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시정명령이 아닌 과태료나 영업정지 등 확실한 처벌규정이 없다면 유통기한이 지난 링거를 투여하는 사건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에 경찰청 한 관계자는 “내부자 고발, 동영상, 관련 서류 등을 통해 유통기한이 지난 링거를 고의적으로 투여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면 형법상의 업무상 과실치상죄(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와 의료법 시행령 제32조 의료인의 품위손상행위 범위 중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간주해 1개월 면허정지에 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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