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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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금관’ ‘샤오미 폰’, 대통령 개인이 못 가져가

미국 70만 원, 한국 10만 원 이상 선물 국고 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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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5-11-0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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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오른쪽)이 10월 29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오른쪽)이 10월 29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했다. 뉴시스

    외교에서 선물은 물건이 갖는 가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분위기를 한층 우호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양국 관계를 상징하는 메시지가 담기기도 한다. 경주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도 각국 정상이 주고받은 선물들이 화제에 올랐다. 

    이번 APEC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선물은 ‘신라 금관’이다. 10월 29일 한미 정상회담 때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무궁화대훈장과 함께 천마총 금관 모형을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특별하다”고 화답했고, ‘노 킹스(No Kings)’ 시위가 벌어지는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금관을 쓴 채 춤을 추는 밈(meme)까지 만들어졌다. 한국 정부는 금관 선물을 외교 공관이 본국과 서류·장비를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운반 수단인 외교 행낭으로 보낼 예정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 지시로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에 실으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선물 신고 않다가 적발되기도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 국가를 순방하며 각국 정상으로부터 수많은 선물을 받았다. 이번 ‘신라 금관’처럼 황금을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호에 맞춰 금으로 된 선물이 많았다. 2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선물한 황금 삐삐(무선 호출기)나 이시바 시게루 전 일본 총리가 준 황금 사무라이 투구가 대표적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10월 28일 미·일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사용했던 퍼터와 골프 메이저대회 우승자 마쓰야마 히데키가 사인한 황금 골프공을 선물했다. 천문학적 가격인 선물도 있다. 카타르 왕실은 5월 트럼프 대통령에게 4억 달러(약 5770억 원)로 추산되는 보잉 747기를 선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퇴임 시 이 화려한 선물들을 마러라고 리조트로 가져가기는 어렵다. 미국 대통령이 받은 선물은 원칙적으로 미국 국민에게 주는 것으로 간주돼 국가 자산으로 귀속된다. 미국 연방조달청(GSA)은 외국에서 480달러(약 70만 원)를 초과하는 선물을 받으면 60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 액수를 초과하지 않은 선물만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 퇴임 후에는 국가기록보관소로 이관돼 대통령 도서관의 소장품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받은 금관은 금값만 1억 원이 넘어 이 역시 연방정부가 소유권을 갖게 된다. 이는 1966년 만들어진 ‘외국 선물 및 훈장법(Foreign Gifts and Decorations Act)’에 대통령 등 연방 공직자는 외국 정부나 외교관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 29만 달러(약 4억 원) 상당의 선물 117점을 신고하지 않았다가 이후 감사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국가원수로서 받은 선물이 국고에 귀속되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시진핑 중국 국가수석은 11월 1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에게 삼성전자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샤오미 스마트폰을 선물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스마트폰을 살펴보면서 “통신보안은 잘 되느냐”고 물었고, 시 주석이 “백도어(후문)가 있는지 한번 보라”고 답하는 등 뼈 있는 농담이 오가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통신보안 문제와 별개로 이 제품 역시 이 대통령이 사용하지는 못할 전망이다. 



    세종 대통령기록관 전시관에서는 역대 대통령이 각국 정상과 외교사절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직접 볼 수 있다. 대통령기록관 제공

    세종 대통령기록관 전시관에서는 역대 대통령이 각국 정상과 외교사절로부터 받은 선물들을 직접 볼 수 있다. 대통령기록관 제공

    가격 평가 후 대통령기록물로

    대통령이 다른 나라 정상이나 외교사절로부터 선물을 받으면 공직자윤리법과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수령 기록을 남기고 가격 평가 과정을 거친다. 대통령과 그 가족이 국가적 차원의 공무와 관련해 외국 또는 외국인에게서 받은 선물 중 10만 원 이상이나 100달러(약 14만4800원) 이상인 것은 국고에 귀속된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받은 샤오미 스마트폰은 출고가 기준 169만9000원으로 이 역시 대통령기록물이 된다. 

    1983년 공직자윤리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대통령이 받은 선물은 국고에 귀속되지 않았다. 이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물건이 청와대에서 발견돼 곤란을 겪었다는 일화도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측은 전직 대통령들이 남겨둔 권총을 발견했는데, 정확한 소유자를 알기 어려워 골머리를 앓았다는 후문이다.

    현재 대통령기록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수령한 선물 약 1만6000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중 4000여 점은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다. 선물명, 증정인, 증정 국가와 증정일 외에 수령 경위, 규격, 특징 등 상세정보가 선물 이미지와 함께 나와 있다. 세종에 있는 대통령기록관 전시관에서는 선물 중 일부를 직접 볼 수도 있다. 기존에는 청와대 사랑채(옛 효자동 사랑방)에 대통령이 받은 선물들을 전시했으나 2016년 대통령기록관이 개관하면서 기획 전시만 이뤄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이 받은 선물 중에는 천마총 금관처럼 고가인 물건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한 앤디 워홀의 판화 ‘시베리안 호랑이’(1983)가 대표적이다. 200여 점 제작된 이 작품의 다른 판본은 현재 온라인 미술거래 플랫폼에서 30만~45만 달러(약 4억3000만~6억5000만 원)에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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