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4년 전부터 일반적인 전투 능력과는 별도로 테러 수행 능력을 키워왔습니다. IS가 세계 곳곳에서 대형 테러에 성공할 수 있던 건 테러 역량을 별도로 관리해왔기 때문입니다.”
미국 수도 워싱턴에 있는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의 발리 나스르(56·사진) 원장은 최근 ‘동아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최근 IS가 이라크와 시리아 내 장악 지역을 잃었다고 해서 테러 역량이 약해진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IS가 한국 내 미군기지 두 곳을 공격 목표로 정하고 한국인 여성 한 명을 테러 대상으로 지목한 상황에서 나스르 원장의 경고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이란계 미국인인 나스르 원장은 미국 학계와 외교가에서 손꼽히는 중동 문제 전문가다. 터프츠대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고,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정부의 외교 관련 자문에 활발하게 참여해왔다. 특히 리처드 홀브룩 전 국무부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 특별대사의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며 미 정부의 중동정책 수립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 하버드대, 조지타운대, 터프츠대 등과 함께 미국 국제관계학 분야의 최고 명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SAIS를 2012년 7월부터 이끌고 있다.
그는 “IS의 영향력 확대와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로 중동 정세에는 향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한동안 ‘머리 아픈 상황(headache)’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음은 나스르 원장과 일문일답.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가 가져온 파장
▼ IS의 테러지역이 중동 외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올해 라마단 기간(6월 6일~7월 5일) 중 미국, 터키, 방글라데시,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 여러 지역에서 대규모 테러가 터진 건 IS가 여전히 막강한 국제적인 조직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양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 IS의 영향력 확대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IS의 확산을 막으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한가.
“아랍 국가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IS가 자신들의 땅에서 인력 모집, 모금, 선전전을 진행하는 것에 더욱 강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아랍 국가들은 이미 IS를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있는 이란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 이란과 아랍 국가 간 협력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은데….
“맞다. 둘은 오랜 기간 갈등관계였기 때문에 협력관계를 구축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IS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나아가 IS를 완전히 제거하려면 이란과 아랍 국가들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 오히려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로 중동 정세가 혼란스러워지는 것 아닌가.
“올해 초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가 결정된 뒤부터 사우디를 중심으로 아랍 국가들의 견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는 아랍 국가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란이 국제사회로 완전히 복귀하고 중동정세가 이런 변화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이란과 아랍국가 간 크고 작은 갈등이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 갈등이 폭력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보나.
“아주 심각한 전면전 형태로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이 ‘우리와 경제협력을 확대하려면 이란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식의 조건을 제시하는 딜레마 상황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 양측 모두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나라들에게는 꽤 머리 아픈 상황이 될 것이다.”
▼ 수출과 석유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 같은 나라에게 그런 상황은 특히 곤란하게 느껴질 것이다.
“다행인 건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게 아랍 국가와 이란은 중요한 수출시장이면서 석유 확보처라는 점이다. 특히 한국, 일본, 중국, 인도 같은 아시아 경제 강국은 모두 비슷한 처지다. 이는 이란과 아랍 국가 간 문제가 발생할 때 아시아 주요국이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한중일의 경우 최근 외교적으로 협력하기 어려운 점이 많지만, 중동정세와 관련해선 충분히 협력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본다.”
▼ 이란의 성장세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가 가까워질까.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이미 올해 초부터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 정보 공유 활동이 늘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에는 넘어야 할 벽이 너무 많다. 특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을 해결하는 건 지금 상황에서는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이 문제(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전면적인 관계 개선 내지 정상적인 외교관계 수립은 불가능하다.”
주변국 모두 북한 변화 바라고 있어
▼ 미국 대통령선거(대선)에서도 최근 중동 정세가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정치인은 불안정한 중동정세를 이용해 무슬림 차별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이민까지도 제한하려 한다.“내가 살고 있는 워싱턴은 다양한 종교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사는 글로벌 도시다. 워싱턴 같은 곳에서는 무슬림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기 어렵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지 않는 지역, 특히 트럼프 지지율이 높은 곳에서는 워싱턴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질 것이다. 무슬림에 대한 미국 내 편견이 과거보다 강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 이란계로서 걱정이 더 많을 것 같다.
“전혀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지금 주장하는 내용들을 그대로 정책으로 추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미국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나라다. 무슬림에 대한 대대적인 이민 제한과 대(對)이란 정책의 전면적 수정 등이 현실이 되는 건 쉽지 않다는 뜻이다.”
▼ 이란 핵협상의 모델을 북핵 문제 해결에 적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충분히 가능하다. 어떤 면에서 북핵 문제 해결은 이란 핵협상보다 수월할 수 있다. 이란 주변국들(아랍 국가들)은 이란이 과거처럼 고립돼 있기를 원했다. 그들은 당시 상황이 바뀌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 협상하는 나라들(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은 모두 북한이 변화하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잘 잡는다면 상황은 빠르게 개선될 수도 있다.”
▼ 이란의 국제사회 복귀와 IS 테러로 한국에서 중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란은 아랍 국가들과 인종, 문화, 언어, 역사가 다르다는 점도 이제 많이 알려졌다.
“이란 사람 앞에서 이란을 아랍 국가라고 표현하는 건 실례다(웃음). 이란을 아랍 국가로 오해하는 건 중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점이 개선되고 있다는 건 한국이 더욱 글로벌한 국가로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SAIS에서도 많은 한국 학생이 공부하고 있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비롯해 SAIS를 졸업한 한국 정부 관료와 학자도 많다. 앞으로는 중동을 비롯해 아프리카, 중남미 등 다양한 지역을 기반으로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는 한국 학생이 늘어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