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한 사람은 평양에서 생을 마쳤고, 다른 한 사람은 먼 길을 돌아 서울에 묻혔다. 한 사람은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이고, 다른 한 사람은 평범한 가장으로 살다 남보다 조금 일찍 세상을 떠난 우리 이웃 같은 이다. 북으로 간 이는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박태원(1909~86)이고, 남으로 온 이는 교사생활을 하다 만학도로 약학을 전공하고 서울 변두리 이문동에서 약국을 하다 마흔세 살에 세상을 떠난 김필목(1923~66)이다. 같은 해 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각각 책으로 펴냈다. 박태원의 장남 일영이 쓴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과 김필목의 장남 창희가 쓴 ‘아버지를 찾아서’다.
1909년 경성부 다옥정 7번지(현 서울 중구 다동)에서 태어난 박태원은 경성제일고보 재학 시절부터 꾸준히 시, 평론 등을 발표했고 일본 도쿄 유학 후 귀국해 이상,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조용만, 이효석과 함께 구인회로 활동하며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을 썼다. 50년 6·25전쟁 중 북쪽 종군기자로 활동했고 그해 9월 22일 ‘남조선문학가동맹 평양시찰단’ 일원으로 북쪽으로 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김필목은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지만 방랑벽이 있는 아버지를 따라 신의주, 평양 등지를 거쳐 초등학교는 중국 하얼빈에서 다녔고 중학교는 봉천(현 선양)에서 나왔다. 만주에서 살 때 결핵에 걸려 평생 고생하게 되는데, 1938년 신병 치료차 한국으로 돌아와 평양 대동강변에서 살다 46년 연희대 물리학과 입학을 계기로 남한으로 왔다. 하지만 김필목은 지병인 결핵이 도져 중도에 대학을 포기하고 충남 계룡산 자락에 있는 경천고등공민학교 교사로 부임했고, 이후 경남 통영으로 이동해 59년까지 교사생활을 하다 다시 상경했다.
아버지 박태원에 대한 일영의 기억은 열한 살 때로 끝난다. 이후 월북한 아버지의 이야기는 전해 듣거나 기록으로 본 것뿐이다. 김창희도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가장을 잃은 집안의 고생은 말로 다할 수 없을 터. 그러나 그가 복원하고자 한 것은 자신이 기억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그의 기억 속에 없는, 하지만 큰 트렁크 한 개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의 메모와 필름에 담긴 아버지 김필목의 삶이다.
아들이 쓴 아버지의 이야기는 남다르다. 여느 평전과 달리 “내가 들은 희미한 기억으로는”(박일영), “역시 그랬구나” “확신하건대 아버지가 통영에서 처음 본 것은 밤바다였다”(김창희) 같은 문장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또 하나는 아버지와 짝을 이루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삶을 복원하다 보니 사실 ‘아버지의 냄새’를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의 삶이 함께 복원된 것이다. 김창희는 독자에게 ‘남의 아버지’ 이야기를 읽는 데 그치지 말고 ‘나의 아버지’에게 말을 건네보라고 권한다. “우리 아버지들은, 생존해 계시건 돌아가셨건, 무엇인가 우리에게 답할 준비를 하고 계시므로.”
검색, 사전을 삼키다
정철 지음/ 사계절/ 252쪽/ 1만3000원
‘사전, 죽었니 살았니’라고 묻는다면 쉽게 ‘죽었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무엇이든 모으고 분류하는 것이 취미였던 소년은 지난 10여 년간 웹사전 기획자로 일하면서 사전의 몰락과 변신과정을 지켜보며 이 책을 썼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검색엔진이 곧 사전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 “좋은 사전이 좋은 검색을 만든다”는 말은 곧 가장 순도 높은 정보를 압축적으로 정리한 사전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뜻한다.
맛의 천재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윤병언 옮김/ 책세상/ 576쪽/ 2만3000원
피자, 스파게티, 마카로니, 샐러드처럼 오늘날 보편성을 획득한 음식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서 통보리로 만든 접시로 등장한 납작한 빵이 ‘피자헛’이 되기까지 피자의 변천사,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탐식가이자 요리사이며 다양한 요리 기계 발명자였다는 새로운 사실 등 이탈리아의 맛을 이해하는 17가지 방법을 인문학적으로 정리했다.
한국의 자수성가 부자들
윤선희 지음/ 한스미디어/ 244쪽/ 1만3800원
‘재벌닷컴’이 선정한 대한민국 400대 부자 중 스스로 부를 일군 사람은 148명. 서울 종로에서 작은 약국을 운영하다 제약회사를 설립해 성공한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샐러리맨 신화를 이룬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주식투자 실패로 전 재산을 잃었다 재기한 우오현 SM그룹 회장 등 맨손으로 부를 일군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연합뉴스’ 증권부 차장인 저자가 ‘부를 만드는 생각의 법칙’을 8가지로 정리했다.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북하우스/ 349쪽/ 1만6000원
“내가 읽고 있는 글에 내 감정을 들이밀어보는 일, 가끔 읽기를 멈추고 한 줄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 화자의 상황에 나를 적극적으로 대입시켜보는 일”이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천천히 책 읽기’다. 오독이라도 괜찮으니 자신만의 해석을 해보고, 나만의 한 문장을 찾아내 그것으로써 자기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독서의 진짜 목적이다. 여덟 차례 진행한 인문학 강독회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미디어 숲에서 나를 돌아보다
이창근·강준만·조흡·원용진 지음/ 인물과사상사/ 256쪽/ 1만3000원
30여 년 전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캠퍼스에서 만났고 한국으로 돌아와 언론학 교수로 재직해온 네 사람이 자기 인생을 오롯이 물들였던 TV, 라디오, 신문, 영화, 음악에 대한 추억을 털어놓았다. 이창근의 ‘미디어 타임라인 위의 나’, 강준만의 ‘신문과 나’, 조흡의 ‘오디오파일의 영화 연구’, 원용진의 ‘문화연구자의 미디어 운동 분투기’는 그 자체로 한국 언론과 미디어의 역사다.
천명 1, 2
이병주 지음/ 나남/ 1권 414쪽, 2권 440쪽/ 각 권 1만3800원
홍길동의 실제 모델을 놓고 국문학계에 여러 주장이 있으나 작가 이병주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홍계남 장군(1564~97)을 지목했다. 조선시대 우찬성 홍자수와 노비 옥녀 사이에서 태어난 홍계남은 전쟁에서 뛰어난 무공을 세워 서출임에도 영천군수에 오르는 등 출세하지만 역모죄를 뒤집어쓴다. ‘정몽주’ ‘정도전’ ‘허균’에 이어 홍계남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로, 출간 당시 원제는 ‘유성(流星)의 부(賦)’였다.
괜찮은 내일이 올 거야
이시다 이라 지음/ 이규원 옮김/ 작가정신/ 405쪽/ 1만3000원
집도 없고 차도 없는 데다 여자친구는 물론, 이제 일자리도 잃었다. 한날한시에 해고된 청년 4명이 일본 야마가타현 쓰루오카시를 출발해 도쿄까지 600km를 걸어서 여행한다. 우발적인 행동으로 시작된 ‘루저들의 행진’은 인터넷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정치적 이슈로 발전하고, 어느새 그들은 ‘오리지널 포’라는 이름의 스타가 돼 그들을 추종하는 거대한 무리와 함께 걷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이토 아사 지음/ 박상곤 옮김/ 에쎄/ 216쪽/ 1만3000원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각지대가 없다. 자신의 시점에서 사물 형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상관관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입체적으로 사고하고 이해할 수 있다. 저자가 시각장애인과 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들의 공간 인식, 신체 사용법, 의사소통 방법, 생존 전략으로서의 유머 등을 분석했다. 한마디로 보이지 않는 사람의 ‘보는 방법’에 관한 책.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1909년 경성부 다옥정 7번지(현 서울 중구 다동)에서 태어난 박태원은 경성제일고보 재학 시절부터 꾸준히 시, 평론 등을 발표했고 일본 도쿄 유학 후 귀국해 이상,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조용만, 이효석과 함께 구인회로 활동하며 대표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을 썼다. 50년 6·25전쟁 중 북쪽 종군기자로 활동했고 그해 9월 22일 ‘남조선문학가동맹 평양시찰단’ 일원으로 북쪽으로 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김필목은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지만 방랑벽이 있는 아버지를 따라 신의주, 평양 등지를 거쳐 초등학교는 중국 하얼빈에서 다녔고 중학교는 봉천(현 선양)에서 나왔다. 만주에서 살 때 결핵에 걸려 평생 고생하게 되는데, 1938년 신병 치료차 한국으로 돌아와 평양 대동강변에서 살다 46년 연희대 물리학과 입학을 계기로 남한으로 왔다. 하지만 김필목은 지병인 결핵이 도져 중도에 대학을 포기하고 충남 계룡산 자락에 있는 경천고등공민학교 교사로 부임했고, 이후 경남 통영으로 이동해 59년까지 교사생활을 하다 다시 상경했다.
아버지 박태원에 대한 일영의 기억은 열한 살 때로 끝난다. 이후 월북한 아버지의 이야기는 전해 듣거나 기록으로 본 것뿐이다. 김창희도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가장을 잃은 집안의 고생은 말로 다할 수 없을 터. 그러나 그가 복원하고자 한 것은 자신이 기억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그의 기억 속에 없는, 하지만 큰 트렁크 한 개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의 메모와 필름에 담긴 아버지 김필목의 삶이다.
아들이 쓴 아버지의 이야기는 남다르다. 여느 평전과 달리 “내가 들은 희미한 기억으로는”(박일영), “역시 그랬구나” “확신하건대 아버지가 통영에서 처음 본 것은 밤바다였다”(김창희) 같은 문장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또 하나는 아버지와 짝을 이루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삶을 복원하다 보니 사실 ‘아버지의 냄새’를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의 삶이 함께 복원된 것이다. 김창희는 독자에게 ‘남의 아버지’ 이야기를 읽는 데 그치지 말고 ‘나의 아버지’에게 말을 건네보라고 권한다. “우리 아버지들은, 생존해 계시건 돌아가셨건, 무엇인가 우리에게 답할 준비를 하고 계시므로.”
검색, 사전을 삼키다
정철 지음/ 사계절/ 252쪽/ 1만3000원
‘사전, 죽었니 살았니’라고 묻는다면 쉽게 ‘죽었다’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무엇이든 모으고 분류하는 것이 취미였던 소년은 지난 10여 년간 웹사전 기획자로 일하면서 사전의 몰락과 변신과정을 지켜보며 이 책을 썼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검색엔진이 곧 사전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 “좋은 사전이 좋은 검색을 만든다”는 말은 곧 가장 순도 높은 정보를 압축적으로 정리한 사전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뜻한다.
맛의 천재
알레산드로 마르초 마뇨 지음/ 윤병언 옮김/ 책세상/ 576쪽/ 2만3000원
피자, 스파게티, 마카로니, 샐러드처럼 오늘날 보편성을 획득한 음식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서 통보리로 만든 접시로 등장한 납작한 빵이 ‘피자헛’이 되기까지 피자의 변천사,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탐식가이자 요리사이며 다양한 요리 기계 발명자였다는 새로운 사실 등 이탈리아의 맛을 이해하는 17가지 방법을 인문학적으로 정리했다.
한국의 자수성가 부자들
윤선희 지음/ 한스미디어/ 244쪽/ 1만3800원
‘재벌닷컴’이 선정한 대한민국 400대 부자 중 스스로 부를 일군 사람은 148명. 서울 종로에서 작은 약국을 운영하다 제약회사를 설립해 성공한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샐러리맨 신화를 이룬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주식투자 실패로 전 재산을 잃었다 재기한 우오현 SM그룹 회장 등 맨손으로 부를 일군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연합뉴스’ 증권부 차장인 저자가 ‘부를 만드는 생각의 법칙’을 8가지로 정리했다.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북하우스/ 349쪽/ 1만6000원
“내가 읽고 있는 글에 내 감정을 들이밀어보는 일, 가끔 읽기를 멈추고 한 줄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 화자의 상황에 나를 적극적으로 대입시켜보는 일”이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천천히 책 읽기’다. 오독이라도 괜찮으니 자신만의 해석을 해보고, 나만의 한 문장을 찾아내 그것으로써 자기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독서의 진짜 목적이다. 여덟 차례 진행한 인문학 강독회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미디어 숲에서 나를 돌아보다
이창근·강준만·조흡·원용진 지음/ 인물과사상사/ 256쪽/ 1만3000원
30여 년 전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캠퍼스에서 만났고 한국으로 돌아와 언론학 교수로 재직해온 네 사람이 자기 인생을 오롯이 물들였던 TV, 라디오, 신문, 영화, 음악에 대한 추억을 털어놓았다. 이창근의 ‘미디어 타임라인 위의 나’, 강준만의 ‘신문과 나’, 조흡의 ‘오디오파일의 영화 연구’, 원용진의 ‘문화연구자의 미디어 운동 분투기’는 그 자체로 한국 언론과 미디어의 역사다.
천명 1, 2
이병주 지음/ 나남/ 1권 414쪽, 2권 440쪽/ 각 권 1만3800원
홍길동의 실제 모델을 놓고 국문학계에 여러 주장이 있으나 작가 이병주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홍계남 장군(1564~97)을 지목했다. 조선시대 우찬성 홍자수와 노비 옥녀 사이에서 태어난 홍계남은 전쟁에서 뛰어난 무공을 세워 서출임에도 영천군수에 오르는 등 출세하지만 역모죄를 뒤집어쓴다. ‘정몽주’ ‘정도전’ ‘허균’에 이어 홍계남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로, 출간 당시 원제는 ‘유성(流星)의 부(賦)’였다.
괜찮은 내일이 올 거야
이시다 이라 지음/ 이규원 옮김/ 작가정신/ 405쪽/ 1만3000원
집도 없고 차도 없는 데다 여자친구는 물론, 이제 일자리도 잃었다. 한날한시에 해고된 청년 4명이 일본 야마가타현 쓰루오카시를 출발해 도쿄까지 600km를 걸어서 여행한다. 우발적인 행동으로 시작된 ‘루저들의 행진’은 인터넷과 매스미디어를 통해 정치적 이슈로 발전하고, 어느새 그들은 ‘오리지널 포’라는 이름의 스타가 돼 그들을 추종하는 거대한 무리와 함께 걷는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이토 아사 지음/ 박상곤 옮김/ 에쎄/ 216쪽/ 1만3000원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사각지대가 없다. 자신의 시점에서 사물 형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상관관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입체적으로 사고하고 이해할 수 있다. 저자가 시각장애인과 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들의 공간 인식, 신체 사용법, 의사소통 방법, 생존 전략으로서의 유머 등을 분석했다. 한마디로 보이지 않는 사람의 ‘보는 방법’에 관한 책.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