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통합앱, 다운받아 줄 고양? 열심히 만들었는데 잘 써줄고양? 안 지울고양?”
커다란 눈망울의 고양이가 ‘고양체’로 말을 건넨다. 경기 고양시가 ‘통합앱’ 홍보를 위해 만든 광고 내용이다. 이 고양이의 이름은 ‘고양고양이’. 시명(市名)이 그대로 캐릭터가 된 사례다. ‘일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후한 이미지를 갖고 있던 ‘고양’은 이 캐릭터 개발 후 순식간에 젊은 도시가 됐다. 현재 고양시 공식 인터넷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는 ‘고양시는 소셜소셜해’라는 문구와 함께 앙증맞은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본격 시작된 후 도시브랜딩 작업을 해온 모든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꿈꾼 게 어쩌면 이런 효과일 것이다. 이를 위해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지자체 BI(Brand Identity)와 슬로건, 캐릭터 등이 개발됐다. ‘한국·일본의 지자체 캐릭터’를 연구한 허영화 씨의 한양대 박사학위 논문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전국 지자체의 88%가 캐릭터를 개발, 보유 중이다. 문제는 ‘고양고양이’ 정도를 제외하고 대중의 기억에 남은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시가 2008년 개발한 캐릭터 ‘해치’가 한 사례다. 서울시는 당시 해치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해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등 이 캐릭터를 서울의 상징으로 키우려 노력했다. 홍보비로만 50억 원 이상을 썼다. 하지만 현재 서울에서 찾을 수 있는 해치의 흔적은 ‘꽃담황토색’ 택시 겉면에 붙은 스티커 정도가 전부다.
차별화되지 않은 비전, 지속불가능한 슬로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만든 도시 상징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일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청정수에서만 사는 수달을 형상화해 개발한 강원 인제군 캐릭터 ‘수달이’는 또 다른 청정수의 상징이자 지역 축제 주인공인 빙어의 천적이라는 이유로 대표 캐릭터 자리에서 밀려났다. 인제군은 빙어를 주인공으로 한 캐릭터를 지난해 새로 만들었다.
전남 장성군이 1997년 개발한 후 20년째 사용 중인 ‘홍길동’ 캐릭터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사이 캐릭터 모양이 네 번이나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홍길동은 개구쟁이 꼬마에서 든든한 청년으로 바뀌는 등 오락가락했다. 브랜드 컨설팅업체 브랜딩리드의 최낙원 대표는 “장성군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한 홍길동 캐릭터의 변천사를 보면 이름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모양이다. 바람직한 캐릭터 관리라고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자체가 브랜딩 작업을 하는 이유는 해당 지역의 고유성과 매력을 극대화해 대중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스위스 제네바, 미국 뉴욕,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의 사례에서 보듯 잘 만든 도시 브랜드는 막대한 경제산업적 효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46쪽 기사 참조). 이 때문에 지자체가 캐릭터, BI, 슬로건 등을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이를 잘 유지, 관리하는 일이라는 게 대체적 견해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자체는 애초부터 차별화되지 않은 비전, 공허한 슬로건 등을 바탕으로 지역 상징을 만들고 이를 수시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경남은 지난해 6월 지역브랜드 슬로건을 ‘필 경남(Feel Gyeongnam)’에서 ‘브라보 경남(Bravo Gyeongnam)’으로 바꿨다. 하지만 양자 모두에서 경남만의 개성과 매력이 드러나지 않고 교체 이유도 알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4년 슬로건을 ‘녹색의 땅 전남’에서 ‘생명의 땅 전남’으로 교체한 전남 역시 같은 지적을 받고 있다. 전남의 슬로건은 충북이 계속 사용해온 ‘생명과 태양의 땅 충북’과 유사하기도 하다. 심지어 ‘울산 포유’와 ‘김해 포유’처럼 서로 다른 도시가 아예 똑같은 슬로건을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지자체 BI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상당수 지자체가 ‘일류’ ‘청정’ 등 유사한 이미지를 내세우고 ‘아름다운 자연’을 표현하는 해, 산, 물 등의 모티프와 파란색, 초록색 등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2007년 국민대 디자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장동석 씨는 논문 ‘지방자치단체 아이덴티티 디자인 연구’에서 ‘경쟁적으로 도입된 지자체들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은 (이처럼 서로 구별되지 않고 지역 이미지에 대한 혼란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여러 한계를 노출했으며 오히려 많은 역기능과 부작용을 낳았다’고 평했다.
완성도 떨어지고 차별성 없는 서체
2000년대 이후 지자체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서체 개발과 관련해서도 쓴소리가 나온다. 현재 시중에는 서울의 서울남산체와 서울한강체, 제주의 제주한라산체와 제주명조체, 제주고딕체, 부산의 부산체 등 여러 지자체가 개발한 다양한 서체가 배포되고 있다. 서울 성동구가 성동명조, 성동고딕을 내놓는 등 기초단체가 서체 개발에 뛰어든 사례도 있다.
이 중 ‘강직한 선비정신과 단아한 여백, 한옥의 열림과 기와의 곡선미’ 등을 표현했다는 서울서체의 경우 시내 도로표지판뿐 아니라 모바일 게임과 TV 프로그램 자막, 제품 포장 디자인 등에 널리 사용되는 상태다. 반면 전라북도체, 김제시체처럼 해당 지자체 홈페이지에서조차 사라진 서체도 적잖다. 정유경 씨가 2012년 학술지 ‘브랜드디자인학연구’에 게재한 논문 ‘지방자치단체의 한글 전용 서체에 대한 조형성 고찰’에는 ‘2000년대 이후 지방자치단체가 개발한 전용서체에서 완성도의 미흡함과 차별성 부족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 서체 디자인 전문가는 “일부 지자체의 경우 디자인과 개성만 강조해 글씨의 균형감과 가독성이 떨어지는, 사실상 사용하기 어려운 서체를 내놓았다. 사용하기엔 편리하나 기존 서체와 뭐가 다른지 알기 힘든, 평범한 서체를 ‘자체 개발’이라고 포장해 내놓는 지자체도 있다. 양쪽 다 충분한 고민과 준비 없이 서체를 만들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며 “한글 서체는 알파벳 26개만 디자인하면 되는 영어와 다르다. 초성, 중성, 종성의 조합을 고려해 쓸 만한 서체를 만들려면 최소 2350자, 최대 1만1172자를 디자인해야 한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작업인 만큼 지자체가 사용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접근하면 좋겠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