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2008)는 영국 출신 감독 스티브 매퀸의 장편 데뷔작이다. 매퀸은 ‘노예 12년’(2013)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흑인 최초로 작품상을 받아 스타가 된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이미 데뷔작으로 칸영화제에서 최우수 신인에게 수여하는 ‘황금카메라상’을 받으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말하자면 ‘헝거’는 진작 국내에 소개됐으면 하던 작품이다.
뒤늦게 매퀸의 데뷔작이 우리에게 소개된 데는 주연을 맡은 마이클 패스벤더의 인기도 한몫한 것 같다. 패스벤더는 지난해에만 ‘스티브 잡스’ ‘맥베스’ ‘슬로우 웨스트’ 등 세 편의 문제작에서 경력의 절정으로 내닫는 행보를 보여줬다. ‘헝거’에서 패스벤더가 맡은 배역은 아일랜드공화국군(IRA) 리더 가운데 한 명인 보비 샌즈다.
샌즈는 1981년 교도소 내 IRA의 정치범 지위를 요구하며 영국 감옥에서 66일간 단식투쟁(hunger strike)을 벌이다 사망했다. 영국은 그를 비롯한 IRA 군인을 테러리스트 범죄자로만 취급했다. 북아일랜드의 복잡한 문제는 아일랜드 섬 북쪽이 남쪽과 달리 독립국가가 되지 못한 데 있다. 영국 정부는 북아일랜드에 자국민이 다수 거주한다는 이유로 철수를 거부했다. 북아일랜드의 IRA는 남아일랜드와의 통일을 원하며 투쟁을 벌였다. 독립을 원하는 IRA의 요구는 점점 강렬해졌고, 자국 영토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이들을 제압하려는 영국 정부의 탄압은 더욱 잔인해졌다. 투쟁과 탄압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영국인 감독 매퀸이 이 작품에서 영국을 가해자로, IRA 소속 샌즈를 희생자로 바라봤다는 점이다. ‘헝거’는 더 나아가 샌즈를 정신적 가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처럼 추앙한다. 영화 전반부는 감옥에서 정치범 지위를 요구하는 샌즈와 동료들의 투쟁을 묘사하고, 중반부는 샌즈가 단식투쟁을 시작하겠다고 성직자에게 전달하는 과정, 후반부는 그가 단식을 벌이다 죽는 과정을 다룬다. 말하자면 영화는 투쟁, 단식, 죽음이라는 3단계로 진행된다. 그런데 샌즈가 일반 범죄자용 죄수복을 거부한 까닭에 화면에서는 주로 반나체 차림으로 나온다. 그럼으로써 그의 행위에 종교적 숭고함까지 배어든다.
수난(Passion)을 그린 숱한 종교화들을 떠올려보라. 영국 정부의 탄압에 저항하던 샌즈는 분노하는 청년에서 어느덧 자신의 몸을 죽음의 제단에 바치는 희생자로 변해간다. 벌거벗겨진 채 영국인 경찰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두들겨 맞는 샌즈의 몸은 죄 없이 맞던(Flagellation) 청년 예수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화면에 굶어 죽어가는 그의 바싹 마른 몸만 제시될 때, 이는 ‘헝거’가 샌즈에게 보내는 최고의 헌사처럼 보인다. 그것은 청년 예수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탄(Lamentation)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잔인한 정치영화가 어느 순간 숭고함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것은 희생된 샌즈의 몸에 대한 카메라의 경건한 태도 때문일 테다. 그가 생명으로 지키려 했던 가치, 곧 독립, 자유, 존엄은 어느덧 세속을 넘어 숭고의 차원에 이른 것이다.